미래통합당이 또 비대위를 꾸리겠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벌써 4번째 시도입니다. 이번에는 정치원로 김종인 전 선거대책위원장을 모셔와 당의 혁신을 지휘하도록 맡긴다고 하네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정치를 알지 못하는, 일명 '정알못'인 분들을 위해 비대위가 뭔지, 왜 김종인인지, 내부에선 어떤 고민이 있는지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바른사회운동연합 주최 '21대 국회, 어떻게 해야 하나' 토론회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 윤창원기자
◇ "치욕스러워도 대수술 받아야"비대위, 풀네임은 비상대책위원회라고 합니다. 요즘은 대학 학생회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기구입니다. 학생회장을 뽑아야 하는데 후보자가 나오지 않거나 투표율이 기준에 못 미칠 수 있죠. 그러면 기존 학생회 중에서 경험 많고 목소리 큰 사람이 이 임시조직을 끌어간다고 합니다. 직선 투표로 뽑은 게 아니라 정당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조직을 관리하거나 의사결정을 내릴 사람은 필요할 테니까요. 주로는 나이 많은 예비역 복학생 선배가 감투를 씁니다.
21대 총선에서 참패한 통합당도 이 임시조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황교안 대표가 물러난 뒤 생긴 리더십 공백 때문입니다. 보통은 대표가 없으면 원내대표가 대신하지만 심재철 현 원내대표는 총선에서 패배해 힘을 잃었습니다. 지도부 다른 구성원들도 조경태 최고위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통합당은 오는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 즉 새 지도부 뽑는 당내 선거까지 그 빈 자리를 어떻게 채울까 고심하다가 비대위 구성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지난 6일 서울 종로에서 미래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 총선 선거 유세를 돕던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이한형기자/자료사진)
비대위를 맡을 적임자로는 김종인 전 위원장이 추대됐습니다. 어떤 사람이냐고요? 1940년생, 올해로 80세죠. 박정희 정부에선 경제학 교수로서 정책자문을, 노태우 정부에선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아 '실세'로 불렸습니다. 전부 비례대표긴 하지만 국회의원 경력만 해도 5선이고 심지어 현행 헌법을 만드는 데 관여했다고 합니다. '나이 많은 예비역 복학생' 컨셉에는 제격일 수밖에 없겠죠.
앞서 한나라당,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까지 위기 때마다 그에게 SOS를 치고 소방수 역할을 맡겼었습니다. 통합당도 복잡한 내부 사정을 단칼에 정리할 대안으로 그를 꼽은 겁니다. 이 정도 체급은 돼야 구성원들이 따를 수 있다고 본 거죠. '여의도 차르'라고 불릴 정도로 카리스마적인 그의 성격도 한몫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뒷맛은 쓰겠습니다. 어쨌든 외부인이잖아요. 자신들과 이념 성향에 차이가 있고, 따지고 보면 통합당이 그렇게 싫어하는 문재인 정권 탄생의 공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라는 목소리가 당내에선 더 많습니다. 타이밍을 놓치면 소생이 불가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대다수에 공유되고 있습니다. "지금 또 분열하면 정말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5선 정진석 의원)"거나 "치욕스럽더라도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4선 신상진 의원)"는 주장이 대표적입니다.
미래통합당 심재철 당대표 권한대행이 24일 오전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 뒤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윤창원기자
◇ 커지는 반발…홍준표, 저격 선봉으로이렇게 '김종인 비대위'는 출범 수순에 접어들었습니다. 심재철 원내대표는 전화로 현직 의원, 당선자들의 여론을 모아 지난 24일 김 전 위원장에게 제안했고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알렸습니다. '어라? 김종인 위원장이 안 한다고 하지 않았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여러 차례 그런 취지로 말했던 게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알 만한 사람들은 압니다. 정치권에서는 해당 발언을 '밀고 당기기' 혹은 '몸값 높이기'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총선 직전 사석에서 김 위원장 최측근에게 '비대위원장 안 하시냐'고 물었었는데요. "경쟁이라면 안 할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추대를 원한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함께 있던 사람들은 이해했습니다.
비대위의 주된 임무는 당의 혁신입니다. 이를 위해 일단 총선에서 폭망, 다시 말해 폭삭 망한 원인을 분석하는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입니다. 유승민 의원 말마따나 통합당은 '자멸'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비대위원으로는 벌써부터 김웅, 배현진 당선인이나 '830세대'로 불리는 당 안팎의 청년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830은 586세대에 빗대 지은 건데 1980년대생, 30대, 2000년대 학번을 말합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나아가 자신에게 '기한 없는 전권'을 줘야 한다며 치고 나왔습니다. 기선잡기죠. 권한을 명확하게 해놔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지난 2012년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경험하면서 깨달았다고 합니다. 아울러 다음 대선을 치를 발판을 자기가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적합한 후보로 그가 '70년대생 경제전문가'를 언급한 뒤에는 김세연 의원 등 구체적인 이름까지 오르내리는 모습입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윤창원기자/자료사진)
반발이 따르는 건 이런 배경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표적인 게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죠. 얼마 전까지 '궁여지책'이라며 우호적이던 홍 전 대표는 최근 비난의 선봉장으로 나섰습니다. 페이스북에 김 전 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지난 25~26일 이틀 동안 8개나 올렸네요. 김 전 위원장이 노태우 정부 시절 연루됐던 '동화은행 뇌물수수사건' 조사에 직접 참여했던 인연을 강조했습니다. 당내 '빅 마우스'인 조경태 최고위원이나 김태흠 의원도 그렇고, 유승민 의원도 부정적 의사를 피력했습니다.
물론 단순한 감정다툼은 아니겠죠. 이들은 먼저 대체로 비대위에 권한이 과도하게 몰려선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제대로 된 토론 없이 전화로 여론을 물어 대표자가 추천됐다는 점도 비판 근거로 제시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당권이나 대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정치권에서는 현 상황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력으로 당대표나 대선 후보가 되고자 했던 주자의 경우 '김종인 비대위'가 기한 없는 전권을 갖고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게 당연히 싫겠죠. 게다가 원내대표 출마를 위해 복당을 원하는 무소속 당선자들 입장에서도 '김종인 변수'가 달갑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조심스레 나오는 관측이, 28일로 예정된 전국위원회가 연기되거나 정족수가 미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김종인 비대위는 여기서 추인을 받아야 실제 권한을 가질 수 있거든요. 만약 정말 그렇게 되면 비대위 논의가 아예 날아가고, 전당대회를 앞당기자는 요구가 다시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아휴…. 복잡하죠. 벌써부터 이렇게 찌그덕대는데 김종인 전 위원장이 전면에 나선다고 진짜 혁신을 이뤄낼 수 있겠냐는 회의론도 여전합니다. 정치 9단으로 불리는 박지원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이 험한 꼴 당하고 쫓겨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댓글로 의견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