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전 서울 성동구 덕수고등학교에서 교실에서 선생님이 개학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말 그대로 멘붕이죠. 현재 상태로는 학원의 중요성이 되게 커요. 안 다니는 애들이랑 격차가 더 벌어질 거에요."
서울 이태원 클럽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되고 고교 3학년 수험생의 등교 개학이 기존 13일에서 20일로 한 차례 더 미뤄지자 학생들은 망연자실 상태에 빠졌다. 1학기 수업일수의 대부분을 날린 고3 학생들은 "재수각(재수할 운명)이다" "9월 학기제라도 해야 한다" 등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다.
13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인 박모(18)양은 등교 연기 얘기를 꺼내자 "화가 난다. 이런 식이면 그냥 9월 학기제를 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며 입을 열었다.
박양은 "이미 1학기는 날아갔지만, 등교 연기를 또 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여름 방학까지 날릴까 두렵다"고 말했다.
예정대로 20일 등교를 해도 빠듯한 일정이 부담이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수험생 김모(18)군은 "애초 이번 주 목요일로 예정됐던 모의고사가 다음 주로 밀렸다고 들었다"며 "그 다음 주에 또 바로 중간고사가 있다. 수시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공부할 시간이 없어 멘붕 상태"라고 토로했다.
지난달 9일 오전 서울 성동구 도선고등학교 3학년 생물화학실에서 한 교사가 온라인으로 화학수업을 시작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수험생들은 매일 진행되는 온라인 원격 수업은 효과가 거의 없다고 못 박았다. 김군은 "집중을 전혀 할 수 없는 환경이다. 수업 효과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지적했다.
내신관리나 수능(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이 학생들로 붐비는 이유다. 서울 유명 입시학원들은 등교 개학 여부와 무관하게 지난 3월부터 학생들을 상대로 입시 준비를 진행 중이다.
상대적으로 학교 수업 등 공교육이 약화하면서 사교육의 영향력이 더 커진 셈이다. 코로나19로 학원을 다니는 학생과 다니지 않는 학생 간 교육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공부를 자기주도적으로 하는 학생들은 현재 상황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상위권과 중하위권, 공부를 하는 학생과 하지 않는 학생의 격차는 지금 상황에서는 분명히 더 벌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학생들은 이런 현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박양은 "코로나19가 핑곗거리가 돼 주변에서 공부를 안 하는 애들은 정말 자포자기로 더 안 하는 것 같다"며 "학원 다니고 안 다니고 격차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군도 "내 경우는 학원에서 이미 미적분을 두 바퀴씩 돌렸고, 세 바퀴째 돌리고 있다"며 "현재 상태로는 학원 중요성이 정말 크다. 차이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한 달에 200(만원)씩 주면서 과외를 시키는 친구도 있다. 다른 애들이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그런(고액 과외를 받는) 애들은 기회"라고 말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일부 수험생은 이태원 클럽 감염으로 등교가 연기된 것을 두고, 당시 클럽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한 수험생은 "겨우 등교가 결정되고 마음을 추스르던 찰나에 또 등교가 미뤄져 좌절되고 화가 난다"며 "친구들도 클럽에 간 사람들 욕을 많이 한다. 정부가 02년생을 상대로 입시 지원책을 발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커지는 학생과 학부모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교육부가 학사 일정을 하루라도 빨리 확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서울 목동 학원가에서 고3 학생들을 상대로 입시 상담을 하는 관계자는 "학부모나 학생 모두 불확실한 상태에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며 "특히 고3 수험생의 경우, 재수생이나 삼수생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학원 관계자는 "수험생들 동기부여가 없어지는 것도 큰 문제"라며 "학생이나 학부모 상담을 해보면, 현재 상황이 불안하지만 안 할 수 없으니 그냥 붙잡고만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