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한 재정전략과 2020∼2024년 재정운용 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불을 끌 때도 조기에, 초기에 충분한 물을 부어야 빠른 진화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25일 청와대와 정부, 여당 주요인사들이 참여하는 최고위급 의사결정기구인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확대 재정 기조에 직접 힘을 실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지금의 경제 위기를 '화재'나 '전쟁'에 비유한 문 대통령은 재정 투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는 것을 수차례 강조했다.
"정부의 재정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더 과감한 재정의 역할이 필요하다", "재정이 경제 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 경제회복을 앞당기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에는 비장함도 느껴졌다.
이처럼 문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나서 확대 재정의 필요성을 부각한 이유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를 잠재우려는 의도가 크다.
보수 성향 언론이나 경제학계 등 일각에서 국가 채무가 늘어나고 1인당 국민 부담금이 늘어나고 있는 점을 근거로 정부의 확대 재정 기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각계 지적과 훈수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지금은 돈을 더 과감히 풀 때라고 판단한 근거는 무얼까?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한 재정전략과 2020∼2024년 재정운용 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첫째, 국가채무가 크게 늘기는 했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양호하다는 것이 문 대통령과 청와대 정책실의 판단이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마의 40%를 훌쩍 넘겨 45~46%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정도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괜찮은 수준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
청와대 관계자는 "국가채무비율 지표가 얼마나 거시경제에 유용한 지표인지에 대해서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이견이 있다"며 "특히 우리는 국가채무비율이 40%를 넘기면 큰 일이 날 것처럼 여기는데 다른 선진국들은 지수가 훨씬 높아도 오히려 돈을 풀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이날 "우리 국가재정은 OECD국가들 가운데서도 매우 건전한 편"이라며 "(국가채무비율은) 3차 추경까지 하더라도 110%에 달하는 OECD에 평균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둘째, 과감한 재정 투입으로 전체 GDP가 늘어나고 경제가 살아난다면 국가채무로 인한 부담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분자(국가채무)를 줄이기 보다 분모(GDP)가 크게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
"지금 과감한 재정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가까운 미래에 오히려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입장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세번째로 코로나19가 몰고온 현재의 경제 상황이 그만큼 긴박하다는 위기 의식이 깔려 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 같은 전례없이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 돈을 풀지 않으면 언제 풀겠느냐"며 "이런 상황에 대비해 평시에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오고 관리해해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확대 재정'이 청와대의 구상대로 효력을 보려면 풀리는 돈이 꼭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 고용율을 높이고 경제성장을 이끌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청와대는 '한국판 뉴딜'을 내세워 디지털 분야와 그린뉴딜로 인한 친환경 분야에 투자를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한편, 일각에서 제기되는 '증세론'과 관련해서는 청와대는 재정 여력이 있다며 선을 긋고 있다.
증세까지 가지 않아도 지출 구조조정 등을 통해서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여나가다보면 재정을 충분히 관리해갈 수 있다는 낙관적 시각이 청와대 내부에 깔려 있다. 또한, 청와대 주요 정책 회의에서 '증세'와 관련해 제대로 논의된 적도 없다는 전언이다.
오히려 설익은 증세론이 제기되면 국민의 반발이 커져 정부의 재정 정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 증세 논의를 차단하며 3차 추경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