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속속 확인되고 있는 12일 서울 용산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외국인들과 시민들이 진단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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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세계적으로 창궐하면서 한국산 진단시약은 없어서 못팔 정도로 세계 각국으로부터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관세청 집계결과 지난달 코로나19진단시약 수출액은 2억 달러로, 지난 1월의 3400달러보다 무려 5만 8천배 가까이 늘며 'K-방역'이라는 브랜드까지 만들어냈다.
하지만 분자진단시약은 분자진단장비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국내 실시간 분자진단장비(RT-PCR장비)는 진단시약과 달리 국산이 손꼽을 정도로 외국산이 지배하고 있다.
실시간 분자진단방식인 RT-PCR 검진은 검체에서 바이러스의 DNA나 RNA를 추출한 뒤 이를 증폭시키고 형광물질로 염색해 여기서 나오는 빛의 강도로 바이러스의 양을 추정하는 방식이다.
코로나19바이러스를 이같은 RT-PCR방식으로 진단하려면 우선 감염자의 콧속이나 목젖에서 검체를 채취해야 한다. 이 검체에서 핵산추출시약과 핵산추출장비로 코로나19바이러스의 RNA를 추출하고, 이를 다시 진단시약과 진단장비를 이용해 증폭시키고 형광물질로 처리해 바이러스의 유무를 확인하고 그 농도를 간접적으로 측정한다.
진단시약은 전체 진단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는 진단시약보다는 진단장비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산 RT-PCR진단장비는 진단시약만큼 국내외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 감염관리 이사를 맡고 있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이혁민 교수는 최근 CBS노컷뉴스와 전화통화에서 "국내 장비 시장의 약 80% 정도는 외국산이 차지하고 있다"며 "국산은 아직까지 외국산에 비해 개선해야 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업체 가운데서도 분자진단장비를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는 업체가 있기는 하다. 바이오기업인 '바이오니아'가 대표적이다.
바이오니아는 최근 인도네시아에 코로나19진단시약과 자체개발한 진단장비, 핵산추출시약과 추출장비 등 총 68억원어치를 '턴키수출'(일괄수출)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 이억수 기획팀장은 CBS노컷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이미 루마니아, 칠레, 가봉 등에 국산 시약과 장비가 턴키로 수출됐다"며 "턴키수출이 확산된다면 국산 장비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체개발한 분자진단장비의 성능은 해외 유명 제품과 성능차이가 없다"며 "브랜드파워에서 차이가 날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에서 장비를 CE인증 받으려면 임상평가 결과와 함께 이미 인증을 받은 타사제품과 동등성 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우리 장비는 세계 유명 브랜드인 '로슈' 장비와 비슷하거나 뛰어난 성능을 나타냈다"며 "아시아권에서 분자진단장비로 CE-A리스트 인증을 받은 것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제 진단시약 기술은 점점 더 보편화되고 있다"며 "앞으로는 진단시약보다는 진단장비와 핵산추출장비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많이 사용하고 있는 '아날로그'방식의 RT-PCR보다 더 진전된 '디지털' 방식의 RT-PCR장비를 만드는 국내 업체도 있다. 벤처기업인 '옵토레인'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이 검체를 한덩어리로 증폭시켜 여기서 나오는 형광물질의 '강도'로 바이러스 양을 측정하는 간접적 방식이라면, 디지털 방식은 검체 속 유전자 하나 하나를 독립적으로 증폭시킨다.
만약 독립적인 입자에 바이러스 유전자가 있으면 '양성' 반응이 나타나고 없으면 '음성' 반응이 나타난다. 결국 양성 반응의 숫자를 세면 바이러스의 양을 직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디지털 방식의 감도는 아날로그 방식보다 50~60배 높아 적은 양의 바이러스도 검출할 수 있다.
옵토레인은 디지털 PCR방식의 진단시약과 장비를 개발해내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수출품목허가를 받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긴급사용승인도 조만간 신청할 방침이다.
이 회사 이도영 대표는 "검체 채취 현장에서 곧바로 쓸 수 있도록 장비를 소형화하고 간편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회사가 개발한 디지털PCR 분석장비는 1~2인용 아이스박스 크기 정도이며 카트리지에 검체와 시약을 간단하게 투입하면 1시간만에 분석이 끝난다고 한다.
이 대표는 "디지털PCR장비가 8천만원~1억 4천만원 정도 하는데 우리가 개발한 장비는 1천만원으로, 가격 경쟁력이 월등하다"며 "지급여력이 좋지 않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시장을 발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보건의료현장에서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소형장비에 관심이 많은 미국 시장에도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이혁민 교수는 "한국산 진단시약의 성능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과대평가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며 "국산화도 좋지만 성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건의료 시장은 굉장히 보수적"이라며 "성능이 한번 입증되면 계속 쓰지만 한번 실패하면 재진입하기 매운 어려운 곳"이라고 밝힌 뒤 각종 방역물품의 성능미달로 반품처리되고 있는 중국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국민건강을 보호하면서 수출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국산장비에 대한 평가를 엄격히 하고, 기업들이 엄격해진 평가를 따라갈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