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새벽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위기에서 벗어났다. 법원은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소명됐다"면서도 구속 필요성은 현 단계서 인정되지 않는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의 향후 수사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일 새벽 2시쯤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 전 부회장에 대해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하여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면서도 "이 사건의 중요성에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최지성 옛 삼성 미래전략실 전 실장(왼쪽), 김종중 옛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전 전략팀장이 9일 새벽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
이 부회장과 함께 영장이 청구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과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같은 이유로 기각됐다.
이는 검찰의 1년 7개월 넘게 이어온 수사가 성과가 있었다며 검찰에 어느정도 힘을 실어준 모양새다. 다만 현 단계에서 구속 필요성은 소명되지 않았으며 구체적인 혐의에 대해서도 향후 기소 후 정식 재판에서 다뤄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의 신병확보를 목표로 하던 검찰도 수사에 어느정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검찰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그리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처리가 이 부회장이 최소 비용으로 삼성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진행된 조직적인 불법 행위라고 보고 있다.
그간 검찰은 이 부회장 조사에 앞서 최지성 전 실장을 비롯해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김종중 전 전략팀장 등을 소환하면서 막판 혐의를 다지는 '속도전'을 계속해왔다.
이후 이 부회장을 지난달 26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소환조사한 뒤 약 일주일 후인 지난 4일 구속영장 청구를 결정했다. 검찰이 이처럼 전격 부회장에 대한 신병확보에 나선 데는 혐의가 어느정도 입증됐다고 보는 자신감이 뒷받침됐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실제로 검찰은 특히 최지성 전 미전실장과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으로부터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검토·진행됐다고 지목된 사안들을 이 부회장에게도 일부 보고하고 승인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새벽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
하지만 법원이 구속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거침없이 진행됐던 수사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또한, 이재용 부회장 측이 지난 2일 기소의 타당성을 판단해달라며 신청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개최 여부 또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수사심의위는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대검찰청 산하 자문기구로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의 수사와 구속 그리고 기소 등의 적절성을 검토한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상태에서 오는 11일 열릴 예정인 부의위원회가 수사심의위의 개최를 결정한다면 관련 절차에 따라, 수사도 예상보다 길어질 수도 있다.
다만 수사심의위가 불기소로 판단하더라도 이는 권고의 효력만 있을 뿐 수사팀이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검찰은 이날 이 부회장 구속 영장 기각 후 입장문을 통해 "본 사안의 중대성,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자료 등에 비추어 법원의 기각결정을 아쉽게 받아들인다"면서도 "영장 결과와 무관하게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