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이재용(52) 부회장을 재판에 넘기면서 2년 가까이 진행해온 사건에 종지부를 찍었다.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 주도로 이뤄진 승계 작업에 이 부회장이 관여했다는 게 검찰의 최종 결론이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과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이 부회장을 1일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 2018년 12월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를 처음 압수수색한지 약 1년 9개월 만이다.
검찰은 최지성 전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사장, 김종중 전 사장 등 옛 삼성 미전실 임원 5명도 재판에 넘겼다. 삼성물산 최치훈 이사회 의장과 김신 고문, 김태한 삼성바이오 사장 등 사건 관계자 5명도 불구속 기소했다. 기소 대상자는 총 11명이다.
검찰은 삼성 미전실이 최소 비용으로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2012년 12월 승계 계획안이 담긴 일명 '프로젝트G'를 수립하고, 이를 치밀하게 진행해왔다고 판단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도 '프로젝트G'의 결과물이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2015년 5월 '1 대 0.35'의 비율로 합병을 결의했다. 제일모직 주식의 가치가 삼성물산의 3배였다. 당시 제일모직 지분 23.2% 보유했던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주식 없이도 두 회사 합병으로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에 올랐다.
동시에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06%의 지배력도 확보했다. 제일모직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삼성물산의 가치는 낮게 평가된 상태로 두 회사가 합병하면서 이 부회장이 자연스레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강화하게 된 셈이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검찰은 미전실이 이 과정에서 제일모직 주가는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는 고의로 낮췄다고 봤다. 합병 거래의 각 단계마다 △거짓 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자사주 집중 매입 등으로 부정거래와 시세조종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수사팀은 "미전실은 처음부터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 비율이 조성되도록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계획했다"며 "제일모직 주가는 높고 삼성물산 주가는 가장 낮은 시점에 '프로젝트G'대로 합병을 실행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같은 시세조종이 △이사회 △주주총회 △주주총회 이후 등 단계에 걸쳐 계획적으로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업 가치가 하락된 삼성물산의 주주들이 정당한 권리 행사를 침해당했다고 보고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수사팀은 "삼성물산 이사들은 회사와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업무상 임무가 있음에도 미전실의 지시에 따라 불리한 합병을 실행하며 기업가치와 주주가치 증대의 기회를 상실하는 등 재산상 손해를 가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수사의 발단이 된 삼성바이오의 고의적인 분식 회계도 이 부회장 승계 작업의 일환이라고 검찰은 판단했다.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려는 속셈에서 제일모직의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의 회계를 부정하게 처리했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는 2011년 설립된 이후 꾸준히 적자를 기록하다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있던 2015년 1조900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삼성바이오가 그해 12월 자회사였던 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회계 처리 기준을 바꾸면서다.
종속회사일 때 장부가액으로 평가했던 자산 가치는 관계회사로 바뀌면서 시장가액으로 계산됐다. 그덕에 바이오에피스는 장부가액 2900억원에서 시장가액 4조8000억원으로 기업 가치가 16배 뛰었다.
바이오에피스의 지분 90% 이상을 보유한 모회사 삼성바이오도 4년 연속 적자에서 1조9000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초우량기업으로 덩달아 탈바꿈했다. 증권선물위원회도 이같은 회계 기준 변경을 분식 회계로 보고 지난 2018년 11월 검찰에 고발했다.
수사팀은 "결국 미전실과 삼성바이오는 불법 합병을 은폐하고 완전 자본잠식을 모면하기 위해 회계기준을 위반해 불법적으로 에피스 투자주식을 4조5000억원 상당 과다 계상하는 분식회계를 자행했다"고 밝혔다.
(사진=박종민 기자)
검찰은 이같은 승계작업에 이 부회장이 적극 관여했다고 결론 내렸다. 일례로 2015년 5월 합병 발표 이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반대하자 이 부회장이 직접 미전실, 해외 자문사들과 모여 긴급 대응전략을 수립했다고 수사팀은 설명했다.
아울러 '프로젝트G'뿐만 아니라 미전실에서 생산한 상당수 문건들을 이 부회장에게 보고했다는 진술도 핵심 관계자들로부터 확보했다고 전해졌다. 수사팀은 "이 부회장 본인의 승계가 목적이었기에 보고가 안 되기는 어려운 성격"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6월 수사심의위의 이 부회장 불기소 권고에는 "취지를 존중하고 숙고해 현재까지 수사내용과 법리 등을 전면 재검토하고 점검했다"며 "외부 전문가와 부장검사 논의를 거쳐 기소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사건은 금융위원회의 고발로, 회계부정이라는 빙산의 일각에서 출발했지만 검찰 수사로 수면 아래 감춰진 불법합병의 실체와 이를 감추기 위한 조직적인 사법 방해 범행들을 밝혀낸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