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라임자산운용 사태' 지휘·감독권을 박탈한 근거였던, 이른바 '김봉현 옥중 폭로'를 검찰이 대부분 '거짓'이라고 판단했다. '검사 술접대'만 일부 사실로 드러났을 뿐, '짜맞추기 수사'나 '야당 정치인 범죄 은폐' 의혹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8일 서울남부지검 '검사 향응·수수사건 전담팀'(팀장 김락현 형사6부장)은 "검사 3명에 대한 술접대 사실은 객관적 증거로 인정된다"며 A검사와 김 전 회장, 자리를 주선한 검찰 출신 변호사 B씨 등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동석한 검사 2명은 향응 액수가 100만원을 넘지 않는다고 판단해 불기소 처분했다.
다만 검찰은 김 전 회장이 폭로한 '검사 술접대 은폐' 의혹에 대해선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김 전 회장은 지난 10월 16일 옥중 입장문을 통해 "담당 검사가 먼저 검사 비위 관련 사실을 물어 검사 술접대 내용을 제보했음에도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며 '술접대 의혹'을 검찰 측에서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의혹을 수사한 검찰은 "라임 수사 당시 위 검사 3명에 대한 술접대 사실을 수사팀이 인지하였다거나 상부에 보고한 사실은 인정하기 어렵다"며 "담당 검사·부장·차장, 검찰수사관 및 참여 변호인을 조사하고 관련 자료를 조사했으나 의혹을 인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결론냈다.
그러면서 "김 전 회장은 술접대 받은 검사를 구체적으로 특정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그 밖에 라임 수사팀이 술접대에 관한 제보를 받았다거나, (이 내용을) 서울남부지검 지휘부와 대검찰청이 보고받은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檢, '검사 접대 의혹' A 변호사·검사 기소 (이미지=연합뉴스)
더불어 검찰은 김 전 회장이 "전관 변호사 B씨가 '기동민도 좋지만 강기정 정도는 잡아줘야 한다'며 여권 로비 진술을 회유·협박했다"고 폭로한 부분에 대해서도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B씨와 수사검사 및 김 전 회당의 당시 변호인들을 조사한 결과 김 전 회장은 B씨를 접견하기 전에 이미 다른 변호인들과 '정관계 로비를 진술해 수사에 협조하고, 검찰이 일괄기소하면 만기보석으로 석방되는 전략'을 수립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달리 의혹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김 전 회장이 주장한 '짜맞추기 수사 의혹'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회장은 "정관계 로비 수사와 관련해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면담-보고-진술유도-조서 작성 순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중요 참고인을 부르거나 통화를 시켜 자신과 말을 맞출 시간을 주고 검사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술을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 전 회장은 자필 입장문에서 '양복비용을 1천만원으로 짜맞춘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했으나 수사 과정을 확인한 결과, 오히려 김 전 회장이 1천만원이라고 주장했고 당시 양복을 제작한 재단사 등의 진술을 통해 수사팀에서는 양복비용을 그보다 적은 200~250만원으로 특정한 사실이 있다"며 "김 전 회장이 사실과 달리 주장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전 회장은 변호인이 거의 대부분 참여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고, 참여 변호인들도 수사절차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한 사실이 없다"고 덧붙였다.
'야당 유력 정치인 관련 범죄 은폐' 의혹 역시 실체가 불분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김 전 회장은 "야당 유력 정치인을 통해 우리은행장에게 로비했다고 제보했지만 검사가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는데, 검찰은 "수사팀은 김 전 회장이 아닌 제3자로부터 사전에 해당 의혹을 이미 제보받아 수사에 착수했고 현재 수사 중에 있다"며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미지=연합뉴스)
검찰 수사 결과 김 전 회장이 옥중 입장문으로 폭로한 대부분의 의혹이 '거짓'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추 장관이 피의자 말만 믿고 검찰총장의 직무를 배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추 장관은 지난 10월 19일 '수사지휘권'을 발동, 윤 총장에게 라임 사건과 윤 총장 가족 관련 의혹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지시한 바 있다. 당시 추 장관은 김 전 회장의 옥중 입장문에 대한 내용을 기정사실화 하고 윤 총장도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의 폭로가 있은 지 불과 사흘 만이었다.
당시 법무부는 "16일부터 사흘간 라임자산운용 사건 관련 김 전 회장에 대한 직접 감찰조사를 실시했다"며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검사 및 수사관에 대한 향응 및 금품수수 비위', '검사장 출신 야권 정치인에 대한 억대 금품로비' 등 의혹에 대해 김 전 회장이 검찰에 진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직 검사들에 대한 향응 접대와 다수의 검찰관계자에 대한 금품 로비가 있었다는 구체적인 제보를 받고도 관련 보고나 수사가 일체 누락됐으며, 향응을 접대 받은 검사가 수사팀장으로 수사를 주도했다는 의혹 등이 일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라임 로비의혹 사건은 관련된 진상을 규명하는데 있어 검찰총장 본인 또한 관련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독립적인 수사가 필요하다"며 윤 총장의 지휘·감독권을 박탈한 이유를 설명했다.
추 장관의 이런 강공 '드라이브' 속에 라임 펀드 사기 사건을 수사하던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은 수사지휘권 발동 사흘 뒤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며 전격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하루 뒤 추 장관은 취임 첫 검찰 인사에서 본인이 직접 발탁했던 이정수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을 후임 남부지검장으로 임명하며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기 사건과 로비 은폐 의혹 등 현안 수사를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을 주문했다.
이 지검장은 최근 윤 총장에 대한 추 장관의 직무 배제 조치로 촉발된 '검란' 와중에도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김관정 서울동부지검장과 함께 징계 절차를 중단하라는 취지의 지검장 성명서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결국 추 장관 측 인사로 분류되는 지검장이 의혹 제기 50여 일 만에 내놓은 초라한 '성적표'가 추 장관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야당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옥중 폭로'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며 "추 장관은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서울남부지검의 수사결과와 근거없는 윤석열 총장의 수사 지휘권 박탈에 대한 입장을 국민께 소상히 밝힐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