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검경 수사권조정과 경찰개혁 등 대변혁에 따라 신년 '국민체감 경찰개혁'을 선언한 경찰이 시작부터 조직 내 잡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법상 연대가 불가능한 경찰 직장협의회(직협)가 '전국 직협'을 꾸리며 불법 사조직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법을 수호해야 하는 경찰이 스스로 법을 어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경찰청은 "법령에서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섰다"며 강력 경고에 나섰다.
1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 본청은 이날 '공무원직장협의회 운영 관련 법령 준수 강조 지시'를 통해 "최근 일부 경찰관서 직장협의회간 연합협의회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확인되고 있다"며 "이는 법령에서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찰청은 "올해는 자치경찰 도입, 국가수사본부 신설 등 경찰조직 대변혁의 시기"라며 "수사권 개혁으로 경찰의 공정하고 엄정한 법집행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직장협의회는 법령에 근거해 설립되는 단체이며 경찰은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향후 법령에서 허용하지 않는 단체 명의로 활동하는 등 위반 사항이 확인될 경우 관련 법령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며 "직협법령 개정이 논의되고 있는 만큼 현행법령을 철저히 준수하며 활동해 줄 것을 다시 한번 당부한다"고 밝혔다.
경찰청의 이러한 경고는 여러 경찰서의 직협이 모여 전국 대표를 선출하고 조직을 세우는 등 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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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12월 공무원직장협의회법 개정에 따라 경찰은 지난해 6월 11일부터 직협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직협은 공무원의 근무환경 개선, 업무능률 향상, 고충처리를 목적으로 기관장과 협의할 수 있는 기구다.
직협법 제2조에 따르면 '협의회는 기관 단위로 설립하되, 하나의 기관에는 하나의 협의회만을 설립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즉 하나의 경찰관서에 하나의 직협을 설립할 수 있고, 직협 간 연대는 불법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경찰청 내 설립된 252개 직협 중 217개 직협 회장들이 투표를 해 경찰직협 전국대표를 선출했다. 대표는 충북 지역 한 경찰서 소속 경위급 A 경찰관이 맡게 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청은 '현행 직협법상 전국 직협 연합체 설립은 불가능하다'는 공문을 보내며 우려를 나타냈지만, 투표는 그대로 진행된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 직협 대표가 선출되고 조직을 꾸리기까지 그간 '불법'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전국 직협의 전신은 지난해 5월에 설립된 '직장협의회 발전위원회'(직발위)로, 직협법이 통과되고 연대가 금지된 상황에서 당시에도 연대 형식을 취한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참고기사 지난해 8월 12일자 CBS노컷뉴스-[단독]직협 출범했는데 직발위?…경찰 '사조직' 논란) 직발위는 이후 직협 비대위로 명칭을 바꿨고, 현재 전국 직협으로 탄생하게 됐다.
전국 직협 측은 연대 조직이 아니라 단순한 '소통 창구'라는 입장이다. A 경찰관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전국 일선 경찰관들의 의견이나 소통을 한데 모으는 활동을 할뿐, 조직이나 연대로는 볼 수가 없다. 제대로 된 활동도 하지 않았다"며 "회비도 걷지 않아 법상 문제도 없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조직 구성 등을 들여다 보면 실질적인 연대 조직을 목표로 한 것으로 파악된다.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조직도를 보면 전국직협회장 아래에는 대위원회가 있고 각 지방청 단위 직협으로 연결되어 있다. 전국 직협 하부 조직으로는 1부, 2부, 3부가 나뉘어져 △사무국 △기획국 △인권국 △현장지원국 △홍보국 △정책국 △조직국 △대외협력국으로 체계를 갖춘 것으로 드러났다.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조직도에 따르면 전국 직협은 체계적인 조직을 갖춘 것으로 드러났다. 독자 제공
전국 직협 고문으로는 국가공무원노동조합 경찰청지부 위원장, 경찰청주무관노동조합 위원장이 이름을 올렸다. 위원장들은 전국 직협과 접촉한 사실도 확인됐다. 정식 공무원 노조, 무기계약직 노조가 불법성 의혹을 받는 전국 직협과 함께 활동한 것도 논란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도 전국 직협의 전신 조직인 직협 비대위에서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을 접촉해 민원을 넣거나 직협법, 자치경찰제 법 개정 등을 요구한 것으로도 파악됐다.
지난해 11월에는 후원금 수천만 원을 걷어 국회의원 및 연대 기관과의 간담회 및 대외협력 비용, 행사 비용, 임원진 활동비 등으로 지급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전국 직협의 불법성 여부에 대해 직협법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는 '활동의 범위'를 면밀히 봐야 한다고 밝혔다. 행안부 관계자는 "직협은 노동조합과 달리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보장되지 않기에 이를 어기면 불법 소지가 있다"며 "조직의 행위, 사례 등을 모아 불법성 여부를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청은 행안부 자문도 구하는 중이다.
전국 직협 측은 사실상 경찰청장의 경고를 받고도 조직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A 경위는 "본청이 그렇게 나선다면 직권남용이자, 월권"이라며 "법적으로 맞설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공룡 경찰'의 탄생으로 조직 기강을 다잡아야 할 시기에 괜한 내부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직협 간 연대가 가능하도록 하는 법 개정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에 당장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본령을 지켜야 한다는 요구다. 국회 행안위 소속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연대를 가능하게끔 하는 직협법 개정안을 다음 달 발의 목표로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