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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업]故 정유엽 아버지 "靑까지 380Km 왜 걸어가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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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뉴스업]故 정유엽 아버지 "靑까지 380Km 왜 걸어가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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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의료 공백으로 희생된 故 정유엽 군
    고열 시달리던 중 병원 찾았으나 링거도 거부
    K방역 이면에 공공의료 취약한 부분 많아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공공의료에서도 소외

    ■ 방송 : CBS 라디오 <김종대의 뉴스업> FM 98.1 (18:25~20:00)
    ■ 진행 : 김종대 (연세대 객원교수)
    ■ 대담 : 정성재 (故 정유엽 아버지) ※ 전화연결

    ◇ 김종대> 지난해 3월이죠. 대구에서 코로나 환자 폭증할 때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로 병원에 실려갔지만 코로나 검사만 13번 받고 사망한 17살 고등학생 정유엽 군 기억하십니까? 코로나로 인한 응급의료공백으로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해서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고 정유엽 군의 아버지가 22일부터 청와대를 향해 380km의 도보 행진을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정성재 님 전화로 연결해서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정성재 님 나와 계십니까?

    ◆ 정성재> 안녕하세요.

    ◇ 김종대> 건강 상태도 안 좋다고 저희가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지금 얼마나 안 좋으십니까?

    ◆ 정성재> 지금 제가 직장암 3기였어요. 그리고 수술을 3번을 받았습니다. 3번을 받는 중에 항암을 12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지금 항암 후유증이 조금 남아 있어서 손발이 많이 저린 상태거든요. 그런데 유엽이 보내고 1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유엽이 일에 대해서 외면과 침묵로 일관하는 관련 병원이나 정부로부터 좀 책임 있는 답변을 듣고 싶어서 그래서 도보 이것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 김종대> 출발을 경산의 중앙병원으로 하셨다고요. 그 이유는요?

    고 정유엽 학생사망사건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토론회 사진 (사진제공=정유엽사망대책위원회)

    ◆ 정성재> 유엽이 사망의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곳이라는 의미가 있고요. 아직도 열이 나는 환자를 진료하지 않고 거부하는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개선을 바라는 마음에서 정했습니다.

    ◇ 김종대> 평소에 굉장히 건강했던 유엽 군으로 말씀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아드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 걸까요.

    ◆ 정성재> 마스크 5부제 시행 둘째 날이었거든요. 그때 항암을 마친 지 얼마 안 된 저를 위해서 마스크 2장을 구해 주기 위해서 비 오는 날 찬바람에 3시간가량 줄을 섰었거든요.

    ◇ 김종대> 약국에 가서요.

    ◆ 정성재> 그렇죠. 그때 그날 저녁 이후로 계속 열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는데 그때 당시는 정부 지침이 3~4일 지켜보다가 선별진료소에 연락하라는 그런 지침을 그때 내렸었거든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이제 해열제 먹이고 감기약 먹고 이렇게 열이 오르고 내리고 반복하는 그 주기를 거쳤는데. 12일이 되니까 열이 내리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부랴부랴 이렇게 체온계 찾아서 측정을 했더니 41. 5도가 나오는 거였어요.

    ◇ 김종대> 굉장한 고열입니다.

    ◆ 정성재> 그래서 선별진료소를 늦게 한다는 경산의 병원을 찾아갔는데 6시에 마감을 한 상태라서 응급실에 가서 좀 체온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좀 링거라도 맞게 해 달라고 했는데 거부를 당했죠.

    ◇ 김종대> 거부당하시고요. 그래서 그날은 그냥 돌아오신 겁니까?

    ◆ 정성재> 그때 저희들이 의사분한테 여쭤봤죠.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게 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하니까 아무것도 없다고. 그다음 날 이제 자기네 병원 선별진료소에 와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고. 그거 하면서 항생제 한 알, 해열제 한 알 해 준 게 다였죠.

    ◇ 김종대> 경산 중앙병원에서 지금 벌어진 일 말씀하고 계시는 거죠?

    ◆ 정성재> 네.

    ◇ 김종대> 그래서요?

    ◆ 정성재> 그래서 그다음 날 애엄마가 밤새도록 소파에서 애를 열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이마를 닦아가면서 했는데 열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병원의 의사분이 그때 하신 말씀이 열이 더 안 떨어지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라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유엽이가 열이 자꾸 오르니까 열 떨어뜨리기 위해서 샤워하려고 들어갔는데. 벽을 의지해서 샤워했던 그 모습이 아직도 좀 많이 남네요.

    ◇ 김종대> 천천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때 일이 자꾸 떠오르시네요.


    ◆ 정성재> 그래서 그다음 날 아침에 선별진료소 문이 열기를 기다렸다가 또 진료를 했는데 폐렴이 그때 확인이 됐었거든요. 그런데도 애가 열이 너무 나니까 수액을 좀 맞게 해 달라고 하니까 또 거부를 당해서.

    ◇ 김종대> 또.

    ◆ 정성재> 네. 우리 차 안에서 맞을 테니까 좀 놔달라고 하니까 그때서야 이제 수액을 맞았다 말입니다. 그래서 열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도 의사 분이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에 가서 또 기다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왔는데 이제 열이 오후에도 계속 40도가 넘어가니까 이거 큰일 나겠다 싶어서 1339에 연락하니까 1339에서는 경산보건소로 연락하라고 했고. 또 경산보건소에서도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면서 다시 경산중앙병원으로 다시 연락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랬더니 이제 경산 중앙병원에서 그 담당했던 여자 의사분이 오전에 소견서를 써줄까 말까 고민했다고 하면서 빨리 오라고 그러더라고요. 유엽이하고 급하게 병원에 갔더니 세 분의 의사가 같이 나오시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병원장이라고 소개하신 분이 유엽이 오늘 저녁 못 넘길 거라고, 넘기기 힘들 거다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진짜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는. 그러면서 3차 병원을 빨리 가라고 하는데 갈 수 있는 병원이 어디인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병원장님이라고 하시는 분한테 빨리 소개를 해 달라고. 그랬더니 영남대병원으로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 김종대> 영남대병원.

    ◆ 정성재> 그렇죠. 그때 당시에는 퇴근시간이었고요. 제가 또 손발도 많이 저린 상태였고 갑자기 애가 오늘 저녁을 못 넘긴다고 하는데 떨려서 운전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제발 구급차 이용을 좀 할 수 있도록 요청을 하니까 거부를 당했습니다.

    ◇ 김종대> 그것도 거부당하셨어요.

    ◆ 정성재> 그래서 집사람이 유엽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차에 갔죠. 차에 가니까 애가 쓰러져서 계속 몸만 뒤척이면서 호흡도 제대로 못하는 거예요. 사설 앰뷸런스도 불러달라고 하니까 그것도 안 된다고 하면서 직접 운전해서 가라고 그러더라고요. 비상등을 켜고 달리기는 했는데 어떻게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도착을 했는데.

    ◇ 김종대> 영남대병원에 말씀이시죠.

    ◆ 정성재> 그렇죠. 그 음압카트에 스스로 발로 누웠었거든요. 음압카트 지퍼를 제가 닫아주면서 바라본 게 마지막 의식 있는 유엽이의 마지막 모습이었죠.

    ◇ 김종대> 임종도 못 지키셨어요?

    ◆ 정성재> 그렇죠, 그때. 그때 당시로는 모든 게 다 엉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 김종대> 그러면 제대로 된 치료를 단 한 번도 못 받아본 겁니다.

    ◆ 정성재> 그렇죠, 유엽이 같은 경우는 홍보에서부터 응급실 이용 그리고 구급차 이용 이런 전후관계 이런 것들이 전부 다 제대로 작동을 안 한 상태에서 그런 희생을 당한 거죠.

    ◇ 김종대> 거기에 대해서 해명도 못 들으셨고요.

    ◆ 정성재> 그렇죠. 아직까지도 정부나 병원으로부터 어떤 말도 들은 적이 없어요, 저는.

    ◇ 김종대> 그러면 결국 총체적인 의료공백, 의료실종의 희생자가 바로 아드님이다 이렇게 보시겠네요.

    ◆ 정성재> 그렇죠. 코로나19의 의료공백으로 인해서 피해보신 분들이 비단 유엽이뿐만이 아니고요. 대부분이 힘없이 사회적으로 약자인 분들하고 장애인들. 이런 분들이 공공의료에 의지해서 간신히 버티는 분들이 무척 많더라고요. 그런데 의료원 등 코로나 전담병원이 되면서 그 병원에 있던 사람들이 강제로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데 비용이 너무 비싸서 감당이 안 되는 겁니다.

    ◇ 김종대>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막상 코로나19가 닥쳐서 보니까 공공의료가 굉장히 취약한 나라라는 게 드러났거든요.

    ◆ 정성재> 그렇죠, 이게 진짜로 필요할 때에 이렇게 K방역 잘했죠, 잘했고 성과를 보였지만 또 K방역 이면에는 거기에 대해서 혜택 받지 못하고 배제되면서 희생당하신 분들의 눈물들이 녹아 있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과연 정부에서 이렇게 그분들의 마음을 이렇게 만져줄 수 있는 역할을 했는지. 그건 아니거든요.

    ◇ 김종대> 여러 군데 진상 규명을 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셨고 또 도움도 청하러 다니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반응들이 어떻든가요?

    ◆ 정성재> 처음에 저희들이 이런 유엽이가 황망한 경우를 당하고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간신히 힘을 내서 시의회를 찾아갔는데요. 그 시의회 의장으로부터 철저히 외면과 무시를 당했습니다.

    ◇ 김종대> 그렇군요.

    ◆ 정성재> 유엽이 기사 때문에 경산중앙병원의 환자 수가 감소했다라든지 경산의 중앙병원 이름을 떼면 탄원서에 서명해서 동참하겠다 이런 식으로 말을 했는데요. 이거는 정말 유족에게 해서는 안 되는 정말 제2차의 비통함을 느끼게 하는 그런 행위들인 것 같아요.

    2020년 3월 18일 코로나19 의료공백으로 숨진 고 정유엽 군 아버지 정성재(가운데)씨. (사진제공=정유엽사망대책위원회)

    ◇ 김종대> 알겠습니다. 정유엽 군이 아버님 드리려고 산 마스크 2장 아직도 간직하고 계신다고요.

    ◆ 정성재> 그때 유엽이는 3주간 외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또 밖에 나갈 일도 없었는데 그 때 제가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아픈 아빠를 위해서 마스크 2장이라도 이렇게 구해주기 위해서 비 오는 날 그때 찬바람 맞고 같이 마스크 2장을 구입을 했죠, 1시간 정도. 그때 오전에 사실은 7군데를 같이 다 돌아다녔는데 그게 다 판매가 되고 1군데가 저녁에 6시에 선착순으로 판매한다고. 그래서 거기에 공고가 붙은 약국이 1군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약국에서 이제 줄을 서서 기다렸죠. 그래서 2장을 겨우 이렇게 구입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 김종대> 지금 그거 보관하고 계십니까?

    ◆ 정성재> 그렇죠. 쓰지는 않았어요.

    ◇ 김종대> 어떻게 그 마스크를 쓰시겠습니까? 이제 청와대로 곧 출발하십니다. 내딛는 한 발 한 발에 어쨌든 희망이 실리고 또 우리 사회에 큰 의미를 주시기를 저희도 기원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정성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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