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기계만 설치하면 월 15~20만 원 드려요."
최근 이같이 '인터넷 모니터링 부업', '재택 알바' 등을 모집한다고 속여 거주지에 '전화번호 변조기'를 설치하게 한 뒤,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단순 아르바이트로 여겨 설치했다가 경찰 수사까지 받을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21일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달 16일부터 이달 10일까지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되는 '사설 중계기' 집중단속을 벌여 전국 52개소에서 161대를 적발·철거했다고 밝혔다. 중계기는 해외 인터넷 전화를 국내 휴대전화 번호(010)인 것처럼 변조할 수 있는 장치로, 대부분 보이스피싱 범죄에 쓰인다.
21일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압수한 '사설 중계기' 등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전자기기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이 같은 '사설 중계기'가 보이스피싱에 이용되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 등 명목으로 자신의 집에 설치했다가 수사를 받게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의심되는 경우 가까운 경찰서에 상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민선 기자
경찰은 단속 현장에서 관련자 13명을 검거했고, 이 중 혐의가 중한 A(26)씨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및 사기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다. A씨는 처음 알바모집 사이트를 통해 이를 접했다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포섭돼 중계기 설치·관리는 물론 현금 수거 역할까지 한 것으로 파악됐다.
나머지 12명은 재택 알바 또는 부업 등 광고를 보고 중계기를 설치했지만, 미필적으로나마 중계기가 범죄에 쓰인다는 점을 인지한 것으로 판단돼 입건됐다. 이들 중 일부는 친구나 지인의 주거지를 빌리거나 고시원 등을 빌려 설치한 경우도 있었다.
'사설 중계기'가 설치돼 있는 모습.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 제공
아울러 경찰은 중계기와 함께 범죄에 사용된 유심칩 203개, 대포폰 25개, 홈카메라 7대 등을 압수했다. 홈카메라는 중계기가 있는 방향으로 설치돼 있었는데, 중계기 작동이나 경찰 단속 여부 등을 감시하기 위해 쓰인 것으로 보인다.
혹여 광고에 속아 모르고 중계기 등을 설치했다고 하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이다. 전기통신 사업자가 아님에도 통신을 중개하거나 발신 번호를 바꿔주는 행위 등은 모두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이 같은 '사설 중계기'가 보이스피싱에 이용되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 등 명목으로 자신의 집에 설치했다가 수사를 받게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의심되는 경우에는 가까운 경찰서에 상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올린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글을 보고 '사설 중계기'를 설치했다가 검거된 중계기 관리인이 당시 조직원과 나눈 대화 내용. 조직원이 중계기 설치를 '어플 개발을 위한 것'이라고 속이고 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 제공
앞서 서울청은 지난해 11월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기존 전략과 대응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기 위해 '집중대응팀'을 신설했다. 최근 보이스피싱 발생건수가 크게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 금액은 계속 증가했기 때문이다.
검토 결과 각기 다른 대포폰과 계좌를 사용하는 등 시점과 장소, 수법이 달라 별개 범행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구체적 연관성이 있는 경우가 상당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경찰은 집중대응팀을 금융범죄수사대에 편입, 보이스피싱 '집중대응조직'으로 확대했다. 자체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개별 수사 과정에서 취득한 전화번호와 IP주소 등 범죄 데이터를 수집·분석했고, 이를 토대로 사설 중계기 위치를 특정해 단속했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사설 중계기 위치를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특정, 연중 지속 단속할 계획"이라며 "이외에도 범죄예방 및 차단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수사기법을 발굴해 지속 단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통신사 등 관계 기관과 협력해 범인 추적을 넘어 단계별로 끊어낼 것"이라며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범죄 피해가 올해 안에 대폭 감축될 수 있도록 집중대응조직을 중심으로 서울경찰의 역량을 결집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 지역의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피해액은 2228억 원으로 2017년(937억 원)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죄 건수 및 검거 인원은 모두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계속 늘어나다가 지난해 소폭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