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이 접종 대상자한테 접종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정부가 다음 달 1일부터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이상반응을 느낄 시 '백신 휴가'를 쓰게 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의사 소견서 없이도 최대 이틀까지 쉴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지만, 어디까지나 '권고사항'인 만큼 민간 부문에서는 '그림의 떡'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31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17~2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천 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들어 "정부는 기업의 협조를 끌어낼 계획이라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연차강요'로 이어질 게 뻔하다"고 밝혔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관련 직장에서 경험한 부당처우 중 '연차휴가 사용 강요'를 꼽은 직장인은 19.5%에 달했다. 여기에 '연차휴가 사용 불허'(10.1%)까지 더하면 '10명 중 3명' 꼴로 본인이 원할 때 연차를 쓰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몸이 아플 때 '쉴 권리'도 일터와 고용형태에 따라 엇갈렸다.
직장갑질119 제공
실제 열이 오르는 등 코로나19 의심증상을 비롯해 몸이 아플 경우 자유롭게 연차나 병가를 사용할 수 있냐는 질문에 24%는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특히 고용안정을 위협받는 비정규직(31.5%)은 휴가를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는 응답이 정규직(19%)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밖에 노동조합에 가입되지 않은 △비노조원(27%) △서비스직(35.8%) △'5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30.3%) △월 150만원 미만 저임금노동자(28.2%) 등이 노조원(16.7%), 사무직(17%), 공공기관(17.2%), 300인 이상 사업장(16.7%), 월 500만 원 이상 고임금노동자(10.8%)에 비해 연차·병가 사용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막상 사측에서 연차휴가나 무급휴직을 강압해도 일반 직장인이 적극적으로 거부의사를 밝히기는 어려웠다.
직장갑질119 제공
이같은 불이익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묻는 설문에 상당수 직장인은 '참거나 모르는 척했다'(21.5%), '회사를 그만두었다'(6%)고 대답했다. 부당한 상황이지만 이를 문제삼아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본인 선에서 무마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직장갑질119는 "코로나19 유행이 직장에서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열이 나거나 몸이 아프면 바로 퇴근해 접촉을 중단해야 하는데, 하루 일당이 사라지는 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며 "코로나 검사도 연차를 쓰라고 강요하는데, 백신휴가를 허용할 사용자가 얼마나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직장인은 코로나19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더라도 개인 연차를 쓰거나 무급으로 쉬어야 하기 때문에 접촉 사실을 회사에 알리지 않게 된다"며 "결국 직장인들은 백신 주사를 맞지 않거나, 주사를 맞고 이상증상이 있더라도 출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직장갑질119는 지금처럼 정부가 회사의 '자율'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직장 내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노동자의 건강을 지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직장인들이 회사 눈치를 보지 않고 백신휴가를 쓸 수 있도록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직장갑질119 대표인 권두섭 변호사는 "유급휴가, 상병수당제도가 모두 없는 국가는 미국과 한국이 유일하다. 그나마 미국은 몇몇 주와 워싱턴D.C.에서는 도입돼 있는 곳이 많다"며 "감염병 위기에 맞서는 사회 안전망으로 유급병가제도와 상병수당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