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경찰이 故 손정민씨 친구의 휴대전화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서울 한강공원에서 술을 마신 뒤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22)씨 사건을 두고 각종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온라인상에서 끊이질 않고 있다.
심지어 증거를 교묘하게 왜곡하는 행위도 벌어지고 있었다. CBS노컷뉴스가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 SNS 등에서 떠돌고 있는 가짜뉴스를 팩트체크 했다.
◇"한 달 가까이 지났는데…낚시꾼 일행 갑자기 나타나""4월 25일 새벽 4시 40분쯤 현장 인근에서 낚시하던 일행 7명이 불상의 남성이 한강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제보가 있어 본 건(손정민 사건) 관련성 여부를 확인 중에 있다."
서초경찰서에서 지난 18일 밝힌 내용이다.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제 와서 목격자가 나타났다니 못 믿겠다', '사람이 강물에 들어가는데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게 말도 안 된다'는 등의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친구A보호모임'이라는 곳에서 목격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나타난 것을 두고는 '경찰과 A가 목격자를 매수했다'는 등의 음모론이 확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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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이 같은 주장은 '대부분 거짓'인 것으로 확인됐다. 손씨가 최초 실종된 시점은 지난달 4월 25일이고, 시신으로 발견된 날은 닷새 후인 30일이다. 경찰은 이날부터 '실종'에서 '변사' 사건으로 수사를 전환했다. 이날이 금요일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주말이 지난 뒤인 3일부터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달 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경찰은 실종 시간대 한강공원에 출입한 차량 154대의 명단을 확보해 차량 소유주들한테 일일이 전화로 확인하던 과정에서 12일 처음 낚시꾼들의 존재를 파악했다. 변사 사건으로 전환한 지 12일 만이다.
경찰은 이틀에 걸쳐 7명 일행을 전부 불러 진술을 확보했다. 뒤늦게 이를 발표한 이유는 목격자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17~18일 이틀에 걸쳐 잠수부를 동원해 목격한 내용대로 현장 재연을 진행했다. 실종 당일보다 날씨가 더 흐렸지만 8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목격할 수 있었고, 소리도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낚시꾼들이 해당 남성을 보고 신고하지 않은 건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낚시하러 여기 아닌 다른 곳도 다니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의 장면도 봐왔다고 한다"며 "해당 남성은 너무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갔고, '수영하는가 보다'라고 느끼는 정도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살려달라'고 구호를 요청했거나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본인들이 112나 119, 또는 자신들이 직접 들어가서라도 구해줬을 텐데 그런 상황을 전혀 못 느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12일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서 한강경찰대가 故 손정민씨 친구의 휴대폰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낚시꾼, '친구A보호모임' 일원이더라"반면 '친구A보호모임'에 당시 목격자로 추정되는 이가 들어 온 것은 사실이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친구A보호모임'의 대화 내역에 따르면 'ocn movies'(추후 '피카소'로 변경)라는 닉네임을 쓰는 한 네티즌은 17일 '일행 7명이 낚시를 하고 있었고, (어떤 남성이) 혼자 물 들어가는 걸 봤다. 현장 검증만 3번 했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그는 "지금 민물장어철이라" "낙시하고잇어음" "기사나옴화긴하세요 못믿겠으면" "128000원받앗읍니다" "참고진술이랑 현장증언비용으로 경찰서에서" "참고인 조사니가요" 등의 글도 남겼다. 경찰 발표 전에 정확한 내용을 아는 것으로 봐서는 실제 목격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친구A보호모임 회원이 거짓 진술을 했다', '맞춤법이 틀리는 것을 보니 중국인 목격자를 매수한 것', '사건 당사자와 이렇게 가까운 목격자는 처음이다' 등 목격자를 믿지 못하겠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해당 대화방은 검색만 하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었고, 해당 네티즌은 방이 만들어 진 지 한참 후인 그날 오후 10시 44분에 최초로 참여했다.
경찰 관계자는 "목격자 매수는 말도 안 된다"며 "참고인 조사를 하면 원래 교통비 등을 지불한다"고 말했다.
유튜브 화면 캡처
◇"현장에서 손정민 혈흔 발견돼"'한강실종의대생 손정민 타살 의혹! 현장에서 혈흔장면 포착!!', '혈흔발견 장소와 손정민 군 뛰어가던 방향이 일치합니다', '[충격]손정민사건. 혈흔자국 국내 언론은 어찌하여 보도하지 않았나?'
유튜브에 '손정민 혈흔'을 검색하면 이 같은 제목을 가진 십여개의 동영상이 노출된다. 각 영상마다 조회수가 30만~60만회를 기록하고 있다. 한 언론사가 외국어 버전으로 올린 손정민 사건 뉴스에 현장 상황이 찍혔는데, 여기에 손씨 것으로 추정되는 핏자국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네티즌들은 이 영상을 편집해서 '손씨 혈흔'이라고 주장하며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해당 영상을 보면 경찰이 한강공원에서 빨간색 자국이 찍혀 있는 장소를 중심으로 폴리스라인을 친 뒤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빨간색 자국이 마치 혈흔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 영상은 친구 A씨가 편의점 앞에서 손씨 뒤통수에 손을 대는 CCTV 영상과 합쳐져 '친구 A의 살인설'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로 사용되고 있다. 편의점 앞에서 손씨가 A씨에게 가격을 당했고, 가는 길에 피를 흘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현장에서 사람의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다. 해당 장면은 핏자국으로 보일 뿐, 실제 혈흔은 아니었다.
경찰 관계자는 "잔디밭이나 A씨와 손씨가 이동했거나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 돌 사이 등 전체적으로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에서 나와 혈흔 반응 검사를 했다"며 "농밀 검사까지 했는데 누구의 것인지와 관계없이 혈흔 반응 자체가 아예 안 나왔다"고 밝혔다.
일부는 이 영상이 해당 언론사의 외국어 버전으로만 올라온 것을 두고 '한국방송에는 나오지 않고 영어방송에만 나왔다'며 국내 언론이 손씨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는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손정민 부친. 연합뉴스
◇"아저씨 골든건은 봐주자"…손정민 父 "음성 변조된 것, '아저씨'란 말 없어""아이 아저씨 골든건은 봐주, 봐주자"(손정민씨) "골든건은 어쩔 수 없어"(친구 A씨)
한 방송사에서 손정민씨 휴대전화에 찍힌 마지막 동영상 중 음성만을 뽑아 방영한 내용이다. 해당 음성은 마치 초등학생~중학생 정도 되는 어린 나이의 학생이 '아저씨'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후 각종 유튜브 및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 음성을 근거로 '사건 당일 중학생들이 동석했고, 이들이 손정민씨를 죽였다'는 주장이 퍼졌다. 특히 경찰이 한강 CCTV에 포착된 '뛰어가는 3명'에 대해 "사건과 관계없는 중고등학생들"이라고 발표한 것과 맞물려 '바로 이들이 음성의 주인공이며, A씨의 사주를 받아 손씨를 살해했다'는 음모론이 확산됐다.
기자 출신 유튜버 김웅씨는 CCTV 영상과 음성 등을 근거로 "A씨와 중고등학생 3명이 함께 손정민씨를 살해해 유기했다"는 취지로 방송을 진행했다. 관련 영상만 4개인데, 각각 조회수가 40만~70만회 이상으로 집계됐다. 이외에도 수많은 유튜버들이 비슷한 음모론을 펴고 있다.
하지만 해당 음성은 '변조 및 편집' 된 것이었다. 손정민씨의 부친 손현씨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방송에 나온 것과 실제 동영상을 비교해 들었는데, 방송에 나온 것은 음성 변조가 된 것"이라며 "내용도 편집됐다. '솔직히 골든건은 봐주자'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앞 부분이 편집되면서 '아저씨'처럼 들리게 된 것 같다. '아저씨'라는 내용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음성이 변조돼 어린아이 목소리 처럼 들린 셈인데, 이를 두고 어떠한 사실 확인 없이 '현장에 어린 사람으로 추정되는 이가 있었다'고 주장한 셈이다.
다만 흐릿한 CCTV 확대 영상을 근거로 '중고등학생 3명이 손씨를 부축해 어딘가로 끌고 가고 있다'는 주장도 확산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경찰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중이다. 거기 온 사람들 전체를 놓고 하나둘씩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살펴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 각종 음모론과 가짜뉴스에 이어 일부 시민은 '기자'를 사칭해 경찰에 전화를 거는 등 수사를 방해하기도 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어느 언론사를 사칭해 본인이 기자라고 하면서 (손정민 사건과 관련해) 쌩뚱맞은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래픽=김성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