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창촌은 불법이다. 전국 지자체들마다 폐쇄 작업이 한창이다. 경기남부 최대인 수원역 앞도 마찬가지. 한 달 전 문을 닫았다. 그로부터 이주 뒤, 한강 둔치에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수원역 성매매집결지 여성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혹자는 "시간을 많이 줬다"고 했다. 하지만 한 여성의 죽음은 그 시간보다 더 무겁다. 중요한 건 그 오랜 시간 우리가 그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무엇을 했느냐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
①"살 자신이 없다" 수원역 집창촌 폐쇄…길 잃은 여성들 (계속) |
지난 5월 31일 밤 12시, 그녀는 일자리를 잃었다. 비록 불법이었지만, 그녀가 번 돈은 할머니의 병원비로 가족의 생활비로 쓰였다. '생명줄'이 끊긴 셈이다.
이제는 공식적으로 문을 닫은 수원역 앞 집창촌 성매매 여성 A씨(30대)의 얘기다.
◇일터 상실 '가족 부양·생계' 부담, 통보식 지원책 '남 얘기'어려서부터 가족은 할머니뿐이었다. 유일한 피붙이인 할머니가 암에 걸리면서 들어갈 돈이 감당이 안 됐다.
"식당, 편의점, 카페 등 닥치는 대로 알바를 했지만 병원비까지 내기 힘들었어요. 그 정도 벌이로는 할머니를 돌볼 방법이 없었죠."
그렇게 그는 4년 전 수원역 앞 집창촌에 발을 들였다.
6월 1일부터 폐쇄 조치된 수원역 일대 성매매집결지의 모습이다. 업소 유리문에는 영업 중단에 따른 피해 등을 호소하는 문구가 적힌 홍보물이 붙어 있다. 박창주 기자
이제 그 일(성매매)마저 못 하게 됐다. 당장 '돈'이 걱정이다. 할머니 치료비만 매달 100만 원이 넘는다.
몇 달 전부터 업소 폐쇄 얘기가 들렸다. 그 전부터 말이 나오긴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길 건너 고층 아파트가 올라간 광경을 지켜보면서 다른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사장님(포주)이 12월까진 영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문은 5월을 넘기자마자 닫혔다. 그로선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다.
"업주들하고 협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와는 한 마디 상의도 없었어요. 난데없이 경찰이 들이닥쳐 불 끄라고 소리치니까 겁이 날 수밖에 없죠."
이미 지나버린 일을 돌이킬 순 없다. 선택의 시간이다. 또 다른 성매매집결지를 찾아갈지, 수원시가 지원해주겠다는 자활지원을 받아들일지.
폐쇄 소문이 나돌 때쯤 시민단체로부터 재활지원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주거비 800만 원에 맞춰 방을 구하기가 힘든 데다 월 생활비 100만 원으로는 가족 뒷바라지도 벅차다.
직업훈련비로 360만 원을 준다는 말에 직업을 바꿀까도 고민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녀는 자신이 없다.
"배운 게 도둑질뿐이라 이력서를 쓸 곳도, 받아주는 곳도 없어요."
제대로 도움을 줄지, 행여 신분이 노출되는 건 아닌지 확신이 서질 않는 것도 지원 신청을 망설이는 이유다.
"사람마다 사정이 다른데 실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여성들에게 직접 듣지를 않아요. 무시 받는 느낌이랄까. 폐쇄 일정도 막 바꿨는데 아가씨들 신상정보 보호가 잘 지켜질지…"
◇벗어날 수 없는 '빚의 굴레'…주거 불안·전업 애로도
폐쇄된 수원역 성매매집결지 내 일부 업소 건물은 소방도로 개설 사업과 관련해 철거가 진행 중이다. 박창주 기자
1일 수원시 등에 따르면 수원역 성매매집결지 폐쇄로 자활지원을 받고 있는 여성은 39명, 150여명으로 추산된 전체 여성 가운데 26% 수준이다.
A씨처럼 자활지원을 거부한 채 시를 상대로 보상책 마련을 촉구하며 업주들과 함께 거리로 나선 여성은 20여명. 나머지 대부분의 여성들은 또 다른 업소로 떠나는 등 자취를 감췄다.
10년 전 사업부도로 가족들 생계를 떠안게 된 B씨(40대) 역시 그렇다. 외동딸인 그는 암에 걸린 아버지와 혼자 거동을 못하는 어머니를 돌본다.
옷가게 점원, 일반 사무직 등 갖은 일을 해봐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채이자를 당해낼 수 없었다. 여기에 업소에서 빌린 돈에 방세, 병원비까지 더해져 다달이 고정지출만 300만 원이다.
"단기간에 돈을 벌려면 이 일 뿐이었어요. 그런데 일터가 갑자기 사라져 막막합니다."
그렇다고 지자체 도움을 받겠다고 나설 수도 없다. 탈성매매가 지원 조건인데 행여 지원만 받고 나서 생활고 때문에 다시 업소로 돌아오게 되지 않을까 망설여져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