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24일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하며 남측이 적대적이지만 않다면 관계 회복을 논의할 용의까지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2월 방남한 당시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국립중앙극장에서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의한 종전선언에 대해 "흥미 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평가한 데 이어 남북연락사무소 재설치와 남북정상회담까지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김여정 부부장은 전날 담화에 이어 이날 다시 북한의 대외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담화를 발표하고 "공정성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가 유지될 때만이 비로소 북남(남북)사이의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의의 있는 종전이 때를 잃지 않고 선언되는 것은 물론 북남(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재설치, 북남(남북)수뇌상봉과 같은 관계개선의 여러 문제들도 건설적인 논의를 거쳐 빠른 시일 내에 하나하나 의의 있게, 보기 좋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여정 부부장은 "(어제) 담화가 나간 이후 남조선 정치권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며, "나는 경색된 북남관계를 하루빨리 회복하고 평화적 안정을 이룩하려는 남조선 각계의 분위기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지금 북과 남이 서로를 트집 잡고 설전하며 시간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며, "남조선이 북남 관계회복과 건전한 발전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말 한마디 해도 매사 숙고하며 올바른 선택을 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례로 우리를 향해 함부로 '도발'이라는 막돼먹은 평을 하며 북남 간 설전을 유도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한번 명백히 말하지만 이중기준은 우리가 절대로 넘어가 줄 수 없다"며, "우리의 자위권 차원의 행동은 모두 위협적인 '도발'로 매도되고 자기들의 군비증강활동은 '대북 억제력 확보'로 미화하는 미국, 남조선식 대조선 이중기준은 비논리적이고 유치한 주장"이라고 주장했다.
김여정은 이어 "(남조선은) 조선반도 지역에서 군사력의 균형을 파괴하려들지 말아야 한다"며, "공정성을 잃은 이중기준과 대조선 적대시 정책, 온갖 편견과 신뢰를 파괴하는 적대적 언동과 같은 모든 불씨들을 제거하기 위한 남조선 당국의 움직임이 눈에 띄는 실천으로 나타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강조하는 이른바 '공정성을 잃은 이중기준'과 '적대시정책'을 철회하고 '적대적 언동'을 자제하는 남측의 실천을 조건으로 남북연락사무소의 재설치와 남북정상회담(수뇌상봉) 등 남북관계 개선의 여러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김 부부장은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라는 점을 꼭 밝혀두자고 한다"고 덧붙였다.
김 부부장은 이어 "남조선이 정확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권언은 지난 8월에도 한 적이 있었다"며, "앞으로 훈풍이 불어올지, 폭풍이 몰아칠지 예단하지는 않겠다"고 말하면서, 우리 정부가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압박했다.
김여정의 담화는 결국 적대시정책의 철회라는 핵심적인 선결조건을 언급하면서도 이중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공정성과 상호존중을 주로 강조한 만큼 남북관계 복원의 문턱을 낮춘 것으로 볼 수 있다.
종전선언에 대한 언급도 전날 담화에서는 "현존하는 불공평과 그로 인한 심각한 대립관계, 적대관계를 그대로 둔 채 서로 애써 웃음이나 지으며 종전선언문이나 낭독하고 사진이나 찍은 그런 것"이라고 비판했으나, 이날은 '공정성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가 유지될 때 의의 있는 종전 선언이 가능하다'는 보다 완화된 입장을 보였다.
반면 김여정이 대북 적대시정책의 철회를 강조하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않고 또 '개인적인 견해'로 제한한 것은 대남유화정책의 신호를 주면서도 향후 불투명한 상황 전개에 대비해 여지를 둔 것으로 보인다.
보다 장기적으로 볼 때는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채택한 자력갱생의 정면돌파전에서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코로나19와 대북제재, 식량부족 등 3중고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자력갱생과 이에 따른 국경 봉쇄를 언제까지나 이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임을출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여정이 대북적대시정책의 철회라는 핵심적인 선결조건을 언급하면서도 공정성과 상호존중, 적대적 언동 자제를 주로 강조하는 유화적인 제스처로 남북관계 복원의 문턱을 사실상 낮췄다"며,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 복원을 열망한다는 점을 활용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임을출 교수는 "북한이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이후 유지해온 '정면돌파전' 기조에 대한 출구전략을 이제 모색하는 것"이고, "북미대화로 가기 위해 남북관계를 활용하는 의도인 만큼 향후에 한미가 더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후속조치를 제시할 경우 남북관계, 북미관계의 급반전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한 정권수립 73주년을 맞아 보낸 시진핑 중국 주석의 축전에 대한 답전을 보냈음을 이날 공개한 뒤 김여정의 한 발 더 나간 담화가 나왔다는 점에서 중국과의 협의가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중국 정부는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나 남북한이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고 있고, 북한도 언제까지나 국경을 폐쇄하고 고립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남북대화 재개를 진지하게 검토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남북 통신선 복원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에서 시작해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미중의 4자종전선언과 남북정상회담을 고려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이틀 연속 담화를 내고 남북정상회담까지 언급함에 따라,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남북관계 개선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반도의 시계가 다시 빨라질 조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