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하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언론이나 시민단체, 국제사회에서 이런저런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충분히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미국 순방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동행한 기자들에게 언론중재법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에 대해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국(OHCHR)이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등 표현의 자유 위축을 우려하는 국제사회 비판이 거세지자 문 대통령이 당을 향해 "충분한 검토"를 요구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이같은 여론 수렴 당부에도 불구하고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다시 기한을 넘기지 않겠다는 이유로 여당의 단독처리를 주장하면서 청와대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윤창원 기자송 대표는 29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언론중재법에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본회의에 단독처리 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부 최고위원들이 단독처리의 명분도, 실익도 떨어진다며 반대하면서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이날 오후 최고위원회의가 다시 열렸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의원총회로 넘어간 상태다.
송 대표는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도 "언론들이 '여당 단독처리하나'라고 기사를 쓰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며 "국회가 토의해서 찬반 논의를 하고 표결하는 것을 단독처리라고 하는게 이상하다"는 식의 논리를 폈다.
송 대표의 일방통행에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불과 며칠전에 교통정리를 한 사안에 대해 당 대표가 정반대 행보를 보이자, 당청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법 통과시 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각계에서 제기되는 마당에, 징벌적 손해배의 틀이 그대로 담긴 언론중재법이 단독으로 처리된다면 청와대로서는 정치적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이 지난 28일 국회 의장실에서 여야 원내대표와 기념촬영을 마치고 자리를 권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 의장,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이날 박 의장은 여야 원내대표와 언론중재법 개정안 상정을 논의했다. 윤창원 기자
문 대통령은 초반에 당의 입장을 고려해 공개적인 발언은 자제했지만, 청와대 내부 회의에서는 여러차례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부분을 참모들에게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0일에도 당에 문 대통령의 반대 뜻이 명확히 전달되면서 민주당은 강행처리를 멈췄고, 이에 문 대통령이 곧바로 환영하며 사회적 소통과 열린 합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시간을 한 달 전으로 되돌리는 듯한 송 대표의 행보에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법안의 시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에 충분한 합의가 이뤄졌는지가 중요하다"며 "의견수렴을 위해 구성한 8인 협의체가 합의안을 이끌지 못한 상황에서 당이 의석수로 논란의 법을 단독처리하는 것은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