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신한은행 SOL KBO 리그 2021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두산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KT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3차전 도중 부상을 당한 박경수가 동료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노컷뉴스 박종민 기자
박경수는 한때 '북경수'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LG 트윈스 팬들의 염원이었다.
박경수는 2008시즌 5월부터 6월까지 47경기에서 타율 0.320, 5홈런, 27득점, 23타점을 올렸다. LG 팬들은 박경수가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에 발탁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북경수'라는 애칭을 만들었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우리말로 북경이라고 읽는다.
하지만 박경수는 국가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다.
박경수는 2003년 1차 지명을 통해 LG 유니폼을 입은 유망주다. 1990년대 LG 전성기를 이끌었던 류지현 현 LG 감독의 뒤를 이을 유격수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류지현 감독의 현역 시절 등번호 6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당시 6번은 아무한테나 줄 수 있는 등번호가 아니었다. 그만큼 기대가 컸다.
하지만 박경수에게는 항상 '만년 유망주'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LG에서는 성남고 시절에 보여줬던 폭발적인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박경수는 2015시즌을 앞두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LG를 떠나 KBO 리그의 막내 구단 KT 위즈에 새 둥지를 틀었다.
박경수는 이적 첫 시즌에 22홈런을 터뜨렸다. 다음 해인 2016년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3할 타율(0.313)을 기록했고 20홈런을 곁들였다. 박경수가 LG에서 몸 담았던 시절에 기록한 통산 홈런은 43개. KT 이적 후 2시즌 동안 때린 홈런은 42개다.
이렇게 박경수는 신생 구단 KT의 주축 내야수로 자리를 굳혔다. 2016년부터 3년 연속 주장을 맡았다. KT는 박경수를 신뢰했다. 2020시즌을 앞두고 계약기간 3년의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박경수는 2021시즌 들어 부상과 부진 탓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118경기에 출전해 타율 0.192에 그쳤다. 1984년생의 베테랑에게 세월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런데 2021시즌 정규리그가 끝난 순간부터 베테랑의 진가는 빛을 발했다.
박경수는 지난달 31일 대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1위 결정전에서 눈부신 수비 그리고 1대0 승리 이후에 흘린 눈물로 주목을 받았다. 이는 박경수가 연출한 한국시리즈 드라마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그는 두산 베어스를 상대한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결정적인 호수비로 팀을 구했고 3차전에서는 선제 결승 솔로홈런으로 팀 승리를 도왔다.
3차전 도중에 당한 종아리 근육 부상 때문에 4차전에 뛰지 못했음에도 박경수는 한국시리즈 MVP에 이름을 올렸다.
박경수는 LG의 '암흑기' 시절을 거쳐 신생 구단 KT의 성장 과정을 밑바닥부터 경험한 선수다. 그는 데뷔 19년 만에 한국시리즈 무대를 처음 밟았고 MVP까지 차지했다. 본인도 상상 못한 드라마다.
박경수는 지난 18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끝난 한국시리즈 4차전 기자회견에서 "행복한 걸 넘어서 오늘이 안 지나갔으면 좋겠다. 지금 이 기분을 계속 만끽하고 싶다"며 "솔직히 제가 MVP가 아니라 팀 KT가 MVP"라고 말했다.
박경수는 덕아웃에서 목발을 짚은 채로 KT의 창단 첫 우승을 지켜봤다. 우승 직후 팀 동료 유한준과 포웅하며 우승의 기쁨을 나누고 있을 때 동료들은 그라운드에서 박경수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경수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다. 다리가 안 좋아 천천히 나가려고 했는데 다들 나와 한준 형을 쳐다보고 있더라. 엄청 뭉클했고 후배들에게 감동 받았다"고 말했다.
박경수에게는 꿈만 같은 시즌이었다. 그는 "말년에 정규리그 1할 타율을 기록한 선수가 그해에 한국시리즈 MVP를 받을 확률이 얼마나 있을까"라며 본인도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올해 우승은 우여곡절이 많았던 박경수의 야구 인생에 강렬한 느낌표로 남을 것이다. 박경수의 이름 석자는 KT 구단의 사상 첫 한국시리즈 MVP로 역사에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