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풍력발전. 연합뉴스전국에서 추진 중인 해상풍력 발전사업에 대해 어민들이 잇따라 반발하고 있다.
발전사업 심의하는 전기위원회가 사업의 직접 이해당사자인 어민들을 배제한 채 허가 승인을 내준 게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막가파식 해상풍력발전 허가'…인천 어민들 전기위원회에 탄원서 제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는 인천 옹진군 덕적·이작·소이작·소야·문갑·승봉·백아·자월·율도 등 10개 어촌계와 인천해상풍력상생협의회가 제출한 항의서한을 접수했다고 22일 밝혔다. 해당 어촌계들은 한국남동발전㈜(이하 남동발전)이 덕적도 인근 해상에 추진하는 해상풍력 발전사업으로 조업에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의 어민들이다.
어민들은 서한문을 통해 남동발전이 신청한 덕적 해상풍력 발전사업 허가를 보류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발전단지 대상 해역들은 전국 꽃게 생산량의 절반이 넘는 덕적도 서방어장, 초치도어장, 굴업도어장 등 법정구역어장"이라며 "단순히 금전 보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들은 "(해당 해역에서 발전사업을 추진하는 건)어민들의 바다와 생계를 강탈하는 행위"라며 "법정 조업어장구역 내 해상풍력 발전사업은 절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어민들이 이같은 항의서한을 보낸 건 남동발전이 인천 앞바다의 주요 수산물인 꽃게어장에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인천연안해역 어장도 및 한국남동발전의 해상풍력 발전사업 예정지. 사진 인천시 제공남동발전은 용유·무의도와 덕적도 인근 해상 두 곳에서 각각 300㎿규모의 해상풍력발전 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연간 56만 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규모로 2023년 착공해 2026년에는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하는 게 목표다.
남동발전은 지난달 15일 사업구역 두 곳 가운데 용유·무의 해상풍력사업의 발전사업 허가를 먼저 얻었다. 애초 전기위원회는 해당 허가 심의에 대해 한 차례 보류하는 등 남동발전이 주민과 소통하라고 권고했지만 재신청하자 허가를 내줬다.
당시에도 주민들은 전기위원회에 항의서한을 보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전기위원회는 해당 서한이 주민 대표성을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동발전은 용유·무의도 인근 해상풍력 발전사업 허가를 승인 받은지 2주 뒤 덕적도 인근 해상에도 발전사업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섬 주민들이 이번에는 각 어촌계장 명의를 포함해 재차 항의서한을 보낸 것이다.
주민들은 서한문에 "지난 탄원서와 이번에 보내는 항의서한은 (어민들의) 공식입장으로 지역 이장협의회·주민자치회·발전위원회 등 주민자치기구와 인천바다 해상풍력 시민대책위원회 참여 시민단체의 의견을 거친 문서"라고 강조했다.
주민들은 전기위원회가 남동발전의 용유·무의도 해상풍력 발전사업 허가를 내준 게 '매우 나쁜 사례'라고 평가하고 있다. 주민 동의를 얻지 않더라도 전기위원회만 잘 설득하면 사업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인상을 다른 해상풍력 발전사업자들에게 심어줬다는 것이다. 인천 앞 바다에서는 남동발전을 포함해 10여개의 사업자가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수용성 무시했으니 책임져라' 지적에…전기위원회 '난색'
인천 어민들이 전기위원회를 규탄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어선에 부착한 모습. 독자 제공어민들은 2018년 국회 법사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국회의원 등 10명이 발의해 지난해 본회의를 통과한 전기사업법을 전기위원회가 수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당 법은 태양광·풍력 발전사업을 허가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당 사업에 대한 사전고지 제도를 통해 지역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항의서한을 접수한 전기위원회는 난색을 내비쳤다. 어민들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전기위원회에 묻는 데다 2주 내에 서한문에 대해 회신해 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전기위원회가 직접 이해당사자인 어민과 섬 주민들의 동의가 없는대도 남동발전의 발전사업을 허가한 만큼 이로 인한 갈등과 물리적 피해, 사회적 비용 등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어민들은 전기위원회의 회신문을 향후 국정감사, 법적 대응 등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서한문 발송에 참여한 강태무 자월면 주민자치위원장 역시 "전기위원회가 어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남동발전의 발전사업을 또다시 허가한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태가 커지자 전기위원회는 오는 26일 예정된 제259차 전기위원회에서 남동발전의 덕적도 인근 해상풍력 발전사업 허가 신청을 심의 보류하기로 했다. 인천시와 옹진군,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 다수의 관계기관이 해당 사업에 대한 의견을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다.
전기위원회 관계자는 "남동발전 측은 주민 공고 등으로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나오는 건 반대여서 주민의견을 최대한 수렴한 뒤 재신청하라고 요구했다"며 "다른 사업자들도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사업 허가 심의를 신청하라고 안내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멸치 황금어장 사라진다"…남해 어민들 정부 상대 소송 제기
같은 시기 경남 통영 남해 앞바다에서는 어민들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벌이고 있다. 전국 멸치 어획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어장에서 어민들의 의견은 배제한 채 해상풍력 발전사업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멸치 권현망 해상풍력발전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와 멸치 권현망 수협은 최근 문승욱 산업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내용은 통영 욕지도 인근에서 추진되는 해상풍력 발전사업 허가를 취소해달라는 것이다. 해당 해역이 전국 멸치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황금어장인데 이해 당사자인 어민들의 의견을 배제한 채 발전사업 허가를 내줘 이를 무효화 해달라는 취지다. 해상풍력 발전사업과 관련해 정부기관을 상대로 법적 소송이 제기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해당 해역에서는 욕지풍력㈜와 현대건설㈜ 등 2개 업체가 발전사업 허가를 받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남동발전도 사업 추진을 위한 사전 단계로 풍황 계측기 설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발전사업의 규모는 총 계획면적만 약 150㎢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50배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위는 이미 허가를 받은 2개 업체가 욕지도 주민들에게는 동의서를 받았지만 정작 직접 해당 해역에서 조업하는 어민들은 배제했다고 주장한다. 해상풍력 발전시설 입지와 주 어업지가 겹친다면 어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고 허가를 준 만큼 무효라는 것이다.
조현근 인천바다 해상풍력 시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은 "현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주민 수용성을 충족해야 한다고 법을 제정했는데 정작 심의 땐 이를 지키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특히 해상풍력 발전사업에 있어 주민 수용성은 어민 생계 문제뿐만 아니라 국내 수산업 지형 변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애초 취지에 맞게 발전사업 허가를 심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