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인천 흉기난동부터 서울 중구 오피스텔 스토킹·살인 사건까지 경찰이 시민을 지키지 못하는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총체적 난국'에 빠진 경찰의 대응 역량을 두고 그 배경에 갖가지 지적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우선 가장 중요한 '현장'에서 취약점을 보였다는 분석과 함께 '매뉴얼'이나 '대책'이 갖춰졌어도 이를 체득화하지 못하는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유사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내놓는 '태스크포스'(TF) 역시 매번 임시 방편에 그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장 대응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과 경찰 조직 내 팽배한 무사안일주의, 보신주의적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매뉴얼은 갖춰졌는데, 갈 길 먼 '현장 안착'
22일 경찰에 따르면 중구 오피스텔 스토킹·살인 사건 피해자 30대 여성 A씨는 올해 피의자 B씨에 대한 스토킹 등 신고를 총 6번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A씨의 첫 번째 신고는 지난 6월 26일 "B씨가 '짐을 가지러 왔다'며 집에 들어오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현장출동을 했고 B씨에 대해 격리 조치를 한 뒤 경고장을 발부했다. 두 번째 신고는 11월 7일로 A씨에 대한 신변보호가 진행됐으며 같은 달 8일, 9일(2번)에도 동행 요청 등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피의자 30대 김모씨에 대해 격리 조치와 경고장 발부 등으로 조치했으나, 수차례 유사한 신고가 들어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조금 더 강력한 사전 대응이 뼈 아프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경찰청은 지난달 21일 스토킹 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현장 경찰의 피의자에 대한 초동조치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마련한 바 있다. 해당 방안이 현장에 제대로 안착 되지 못했다는 점을 이번 사건이 방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경찰 관계자는 "신고 상황에 따라 피해자 보호 조치, 신변보호, 잠정조치 실시 등을 했다"며 "피의자에 대한 현행범 체포는 당시 요건에 맞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데이트폭력 피해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을 살해하고 도주했다가 검거된 30대 피의자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신변 보호의 주요 수단인 '스마트워치'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A씨는 지난 7일 데이트폭력 신변보호를 신청했고, 스마트워치를 지급 받았다. 사건 당시 A씨는 스마트워치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긴급호출을 했으나 경찰은 사건 현장인 주거지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으로 출동했다. 현재 스마트워치는 1차는 기지국, 2차로 와이파이와 위성(GPS)으로 위칫값을 찾는데, '오차'가 발생한 탓이다.
현재 경찰은 스마트워치 신고가 접수되면 즉시 기지국·와이파이·위성(GPS)으로 동시에 위치를 확인하는 새로운 위치확인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개발이 완료되면 오차 범위를 훨씬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같은 오차 범위를 사전에 인지했다면, A씨의 스마트워치가 가리킨 위치 외에도 주거지 등에 함께 출동하는 적극적인 조치 등이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그 부분은 저희 입장에서 제일 아픈 부분"이라며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최초에 그런 조치(주거지 출동)를 취했으면 좀 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라고 밝혔다.
경찰 내부에서는 신변보호 조치 건수는 나날이 늘어나는 가운데, 비상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호소도 나온다. 경찰청에 따르면 신변보호 건수는 2018년 9442건에서 지난해 1만4773건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6월까지 1만148건에 달한다. 이렇다 보니 '관행적인' 신변보호는 증가하지만, 내실면에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신변보호와 긴급 대응 등에 있어 갖가지 시뮬레이션과 교육으로 내실을 다질 필요가 있다"며 "적극적인 조치를 할 수 있는 조직 내 여건 마련과 함께 좀 더 정밀한 현장 지침이 마련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피해자 보호 조치를 강화하는 한편, 피의자에 대한 적극적 대응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스토킹 가해 이력이 많을 경우 스토킹처벌법상 명시된 최상위 조치인 잠정조치 4호(접근 금지 외에 유치장·구치장 유치 조치 조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부족한 '대응 역량'도 도마 위…"무사안일주의 조직 문화 바꿔야"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빚은 이웃 일가족 3명을 흉기로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 40대 A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지난 17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응 역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15일 인천시 남동구 한 빌라에서 가해자가 신고자에게 흉기를 휘둘렀지만, 출동 경찰관이 지원 요청을 이유로 현장을 이탈하면서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이다. 목 부위를 흉기에 찔린 피해자는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우선 마련된 '매뉴얼'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상자가 경찰이나 시민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할 경우 경찰은 경찰봉이나 테이저건 등을 활용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이를 놓친 셈이다. 출동 당시 경찰관들은 3단봉과 테이저건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흉기난동에 대해 경찰 내부에선 '잘못된 대응'이었다는 반응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다만 '시스템'의 문제보단 '개인 역량' 문제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도 읽힌다. 이에 전문가들은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등 개인 역량 문제도 있지만, 조직 문화에 대해서도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경찰 내부에서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조치했다가는 괜히 피해만 볼 수 있다는 분위기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며 "손해 보지 않겠다는 인식들이 그만큼 팽배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매번 내놓은 '땜질 처방' 보다는 조직 문화와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 필요하다"며 "무사안일주의, 보신주의 보다는 현장에서 적극적인 '경찰'이 가장 인정 받는 문화로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창룡 경찰청장. 연합뉴스한편 경찰 수뇌부는 연이은 '실책'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 21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경찰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자 소명인데도 위험에 처한 국민을 지켜드리지 못한 이번 인천 논현경찰서 사건에 대해 피해자와 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튿날에는 전국 경찰 지휘부 화상회의를 열어 현장 대응력 강화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기로 했다. 서울경찰청 역시 "스토킹범죄대응개선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최대한 빠른 시간 내 실효성 있는 대책을 수립, 유사 사례가 재발치 않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