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연합뉴스"저는 꼭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돼야 한다고 본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발언이 연일 화제입니다. 탈모 치료를 건강보험수급비 대상 항목으로 지정해 탈모 치료의 부담을 완화해주겠다는 얘기 때문입니다.
이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신체의 완전성은 중요한 가치"라며 "정책 본부에서 (공약을) 검토중인데 빠른 시일 내로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유력 대선 후보의 이같은 발언에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등 네티즌 반응은 뜨겁습니다. '모(毛) 심은 곳에 표 난다'며 이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毛)퓰리즘'이라며 비판하는 네티즌도 있습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①현재 탈모 환자는 건보 적용 대상이 아닌가?
지금도 일부 탈모 환자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탈모 환자 중에서 병적 탈모, 그러니까 지루성 피부염에 의한 탈모나 스트레스성 탈모의 경우, 건강보험 적용 대상인 것입니다.
다만, 노화나 유전적 요인 등으로 인한 탈모는 대상이 아닙니다.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에 따르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에 대한 치료 등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사항은 요양급여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즉, 미용 목적의 탈모 치료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을 치료하는 것으로 판단해 비급여대상인 것입니다.
②탈모 인구 1천만 명?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탈모증' 환자는 23만 3천여 명입니다. 2016년 환자는 21만 3천여 명이었으니까, 5년 동안 9.9%가 증가한 셈입니다.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지난해를 기준으로 연령대 탈모 환자를 살펴보면, 30대가 5만 2천여명(22.2%)으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5만여 명(21.5%), 20대가 4만 8천여 명(20.7%)으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의 집계는 급여대상 탈모(지루성 피부염 탈모와 스트레스성 탈모) 환자만 국한한 수치기 때문에 실제로 탈모증상을 가진 사람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국내 환자 탈모증상을 가진 사람을 1천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2019년 한국갤럽에서 탈모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했던 내용에 따르면, 당시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22%가 "탈모 증상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를 현재 인구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960만 명이 탈모 증상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또 모발 전문가들의 계산법에 따르면, 국내 탈모 증상 인구는 7백만 명 안팎이 됩니다. 대한모발학회에서 발표한 국내 남성 탈모인 비율은 15~19%로, 388~411만 명 정도 됩니다. 여기에 최근 5년 동안 탈모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87만 6천 명 중 44%가 여성이었으므로, 그 숫자를 추산하면 305~323만 명 수준입니다. 결국 숫자를 합치면 693~734만 명 정도입니다.
③건겅보험 재정 괜찮을까?
아직 이 후보 측에서 구체적인 정책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여서 소요 재산을 추산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일단 전문가들이 추산한 탈모 인구(약 700만 명)를 기준으로, 대표적인 남성 탈모 치료약 프로페시아와 여성 탈모 치료약 미녹시딜의 가격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건보료를 기준으로 계산해봤습니다.
탈모 치료제는 비급여 약품이기 때문에 약국마다 가격 차이가 있으나, 프로페시아와 미녹시딜 모두 5~6만 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사용량은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1년 기준 프로페시아 12통, 여성은 3통 정도로 추산했습니다.
두 약품 가격을 중간 값인 5만5천원으로 산정하고 건강보험 적용 비율을 70%(통상적인 기준)로 정해 계산을 하면, 남성 치료에 소요되는 비용만 1조 8480억 원, 여성은 1조 3860억 원입니다. 모두 합치면 3조 2340억 원이나 됩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2020년 기준 건강보험공단 약품비 지급액은 19조 9천억 원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추산한 소요 예산이 증가하게 되면, 약품비가 16%나 증가하게 됩니다. 2016년 이후 가장 많이 약품비가 증가했던 2018년에도 증가율이 10%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계산은 700만명에 이르는 탈모인 전체가 1년 내내 치료약을 사용했을 경우를 가정한 것입니다. 통상 제약업계에서는 국내 탈모치료제 시장을 1200억원 안팎으로 추산합니다. 가장 보편적인 탈모치료제인 프로페시아를 18만 명이 1년 동안(월 5만5천원) 먹는 양입니다.
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지난 5일 관련 간담회에서 "현재 1년 탈모치료제 매출이 1100억원이고, 정부는 이중 770억원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건강보험 적용 후 현재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탈모약을 사용할 것을 고려하면 실체적 진실은 '3조원'과 '770억원'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④"탈모는 질환" vs "질병 의료비 부담 큰 나라"
형평성의 문제도 제기됩니다.
탈모에 보험 혜택을 주면, 비만이나 성형 등 다른 미용 진료에도 같은 혜택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또 희귀난치병이나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율을 더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 주사는 1회 투여가격이 25억 원이나 되고, 혈액암 치료 주사 역시 1회 가격이 5억 원 수준입니다.
제주대 이상이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5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최근 발표된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은 65.3%"라며 "OECD 국가들의 평균 건강보험 보장률인 80%에 크게 못 미치고 있고, 주요 질병으로 인한 직접 의료비 부담이 여전히 큰 나라"라고 비판했습니다.
반면 탈모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가는 추세인 만큼 질병으로 인정하고 국가가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민주당 김남국 의원은 CBS 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이제 탈모라고 하는 것은 질병이라는 인식이 넓어지고 있는 것 같다"며 "재정건전성 부분에 대한 우려가 없도록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유튜브 캡처⑤유례 없는 탈모 치료 혜택…李 캠프 실무자 고심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 혜택을 주는 나라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서양의 경우, 일반적인 탈모가 워낙 흔해서 그리 단점이나 약점으로 취급 받지 않아 이런 논의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탈모 분야 전문가인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피부과 조남준 교수는 "탈모를 치료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유럽 등 서양에서는 흔하지 않다. 백인 남성의 경우 60% 정도가 탈모를 겪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다이너마이트' 청년선대위 제공이재명 캠프에서 정책을 만드는 실무자들은 고심하고 있습니다. 후보의 철학을 현실에 맞게 만들어 내는 것이 그들의 임무인 만큼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입장입니다.
캠프 정책 실무자는 통화에서 "보장률을 얼마로 할지, 혜택 대상을 어느 수준으로 할지 등을 꼼꼼히 따지고, 제약 단가를 낮추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재정 건전성에는 크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다른 질병과의 형평성 문제도 함께 고려해 정책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