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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누구든 어느날 국가보안법 재판을 받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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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B컷]누구든 어느날 국가보안법 재판을 받게 되면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북측과 IT 사업 협력하다 국보법 위반 기소된 김호씨
    2013년 내사 사건, 돌연 2018년에 긴급체포
    "주지의 사실" "자명해" 증거보다 확신 앞선 공소사실
    오는 25일 1심 선고…기소 3년 만

    ▶ 2021.11.1. 사업가 김호 국가보안법 1심 결심공판 검찰 최종의견
    "북한으로부터의 해킹과 사이버테러 위험이 증가하고 있음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UN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 법무부 등 세계 주요 보안단체들은 사이버공작의 테러 배후로 북한을 지목했고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이버 공격의 58%가 러시아이며 23%가 북한 소행입니다. 북한이 배후인 사이버 공격이 만연해 있다는 것은 전세계적인 공지의 사실입니다. … (북 개발자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우리 군에 납품하려 했다는 것 자체로 너무 위험합니다. … 여러 번 설명할 필요 없이 위험성이 인정된다는 것은 자명할 것입니다."
    사실상 사문화됐다며 일반의 관심에서 멀어져가고 있지만 2022년 현재도 국가보안법은 살아있는 법입니다. 그 말인즉슨 대한민국 국민 누구든 어느 날 갑자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법정에 서게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누구든', '어느 날' 이처럼 어려운 조건이 성립되기가 다른 범죄보다 특히 쉽다는 것이 국가보안법의 특징입니다. 지난해 진행된 한 국가보안법 재판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났는데요. 북한 IT개발자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국내 기관·기업에 판매하거나 군 기밀정보 등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업가 김호씨의 사건입니다.
     
    2018년 긴급체포 후 구속기소된 김씨는 지난 3년간 1심 재판을 받고 작년 11월 1일 드디어 결심공판이 진행됐습니다. 검찰은 이날 김씨에게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 김씨와 함께 기소된 동업자 이모씨에겐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구형했습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검찰의 공소사실을 보면 김씨의 혐의는 매우 위험해 보입니다. 국내 기관과 기업에 프로그램의 개발주체가 북측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고 판매를 했고, 군 기밀정보를 전달하거나 프로그램 판매대금을 건네며 북측에 이로운 일을 했다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러한 중대한 혐의를 입증할 물적 증거보다는 검사의 서술어, 즉 심증을 강하게 드러내는 표현들이 공소장은 물론 재판 과정에서 검찰 주장의 상당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공지의 사실이다" "주지의 사실이다" "너무 위험하다" "자명하다" 등입니다.

    ▶ 2021.11.1. 사업가 김호 국가보안법 1심 결심공판 검찰 최종의견
    "(누출된 정보들이) 반국가단체에 알려지면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 군의 시스템에 허가받지 않은 북한 업체가 제작한 프로그램이 설치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지 않다고 도저히 주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 피고인이 누설한 군사상 정보는 기밀임이 확실합니다."

    '북한 개발자와 동업을 하는 것이 정상이냐'고 눈살을 찌푸리실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개성공단을 비롯해 여러 남북 합동 사업들이 활발히 이뤄졌었죠. 김씨 역시 2002년부터 대북경협사업을 했고 2008년 IT 사업 초기엔 통일부에 정식으로 북한접촉 신청을 내 허가를 받고 북측 IT개발자와 중국에서 만나기도 했습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얼굴인식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인건비는 비교적 싼 편인 북측 IT개발자에게 프로그램 개발 하청을 주고, 김씨는 기관들로부터 사업을 수주하고 판매하는 역할을 맡는 식이었습니다.
     
    김씨의 사업이 범죄행위가 되려면 북측 IT개발자들과 공모해 국내 기관이나 기업에 대한 사이버테러나 정보유출을 목적으로 한 프로그램을 고의적으로 판매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그러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게 김씨 측 입장입니다. 북측에 전달됐다는 군 기밀 자료는 김씨의 사업체가 군 사업에 공모하는 과정에서 받은 제안요청서일 뿐, 기밀이라고 볼만한 내용이 전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특히 해당 입찰에서 김씨의 업체는 탈락했습니다.

    ▶ 2021.11.1. 사업가 김호 국가보안법 1심 결심공판 변호인 진술
    "공소장에 적시된 것이 다 북한의 사이버테러라고 합니다. 아이피가 동일하다면서요. 동일 아이피를 사용하고 그게 북측 지역이고 중국이라면 북한의 해커다. 기존에 북한 해커들이 썼던 악성코드다. 이걸 입증이라고 하신겁니까? 아이피 위조가 가능한 것이야 말로 공지의 사실입니다. … 정체를 알 수 없는 탈북자가 증인으로 나와 이야기하거나 미국에서 '저것이 북한의 소행이라 누굴 기소했다'라고 하면 우리가 그것을 믿어야 합니까? 그것이 공지의 사실입니까? … 오로지 공안기관이 가진 편견과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악용한 사건이고 사법부가 담당하는 엄격한 증명원칙도 훼손하려는 악질적인 사건입니다."

    검찰은 판매된 프로그램 일부에 악성코드가 있는 것을 주요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김씨 측은 "어떤 악성코드인지 성격이 중요한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트로이바이러스"라고 밝혔습니다. 수십 년 전부터 너무나 흔하게 유포된 파일인데, 검찰 주장대로 북한 정보기관이 뛰어난 사이버테러 역량을 가지고 있다면 트로이바이러스를 공격 수단으로 선택할 리가 있냐는 겁니다.
     
    변호인단은 김씨의 사업이 굳이 사법적으로 책임을 따져야 할 일이 있다면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형사재판이 아니라 제조물 책임에 관한 민사재판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 2021.11.1. 사업가 김호 국가보안법 1심 결심공판 변호인 진술
    "이 사건 기저에 있는 것은 한마디로 공포입니다. 사이버테러가 북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는 공포에 의해 기술적인 증명 부분이 마비돼 있습니다. … 이 사업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사이버테러를 위한 것이라면 사업가 본인들의 이익에도 당연히 위험이 됩니다. … 결국 재판은 수사 결과로, 증거로 증명돼야 하는데 '그것이 알고싶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특히 이번 사건의 주요 증거인 김씨의 이메일은 2013년도에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고 당시 별다른 문제 없이 내사가 끝났습니다. 그간 정상적으로 사업을 해왔던 김씨는 2018년에서야 돌연 군사기밀 자진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긴급체포·구속된겁니다.
     
    김씨와 이씨의 사업이 실제로 북측을 이롭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인지에 대해 법원은 오는 25일 1심 선고를 합니다. 증거에 따라 재판부가 어떤 결정을 하게 되든, 국가보안법을 자신들이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말로 만들어 휘두르는 수사기관의 행태에는 선을 그어야 하지 않을까요. 수사기관이 "주지·공지의 사실" "자명한 위험"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그게 정의가 된다면, 선량한 당신도 어느 날 국가보안법의 선을 넘게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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