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고(故)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진 지난 10일 오후 대전지법 서산지원 앞에서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기자회견을 하던 중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노동부는 11일 삼표산업 본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양주군 채석장에서 발생한 붕괴사고로 3명의 작업자가 매몰돼 숨진 것과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혐의를 확인하기 위한 사법절차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달 27일부터 발효됐다. 이 법이 발효된 이후 첫 번째 입건사례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 2018년 태안화력에서 발생한 김용균씨 사망사고를 계기로 노동자의 안전문제를 부실하게 관리한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법률이다.
그런데 이 법률을 제정하는 계기를 만든 김용균씨의 재판에서는 정작 사업주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내려졌다. 삼표산업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지기 하루 전인 10일, 대전지법은 김용균씨 사망사고에 대한 공판에서 원청 대표인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청업체와 김용균씨 사고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서 책임자들에게는 징역형이 선고됐지만, 모두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원청 대표인 김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사망원인인 컨베이어 벨트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하청업체와의 계약상 문제점을 구체적인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고(故)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진 10일 오후 무죄 선고를 받은 한국서부발전 김병숙 전 대표가 대전지법 서산지원을 나와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유족들과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김용균씨의 어머니이자 김용균재단 이사장인 김미숙씨는 "재판부가 죽은 사람은 있는데 책임져야 할 잘못한 사람은 없다고 판결했다"며 "참담하다"는 심경을 밝혔다.
재판부가 밝힌 무죄선고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발전소의 운영책임을 지는 대표가 '컨베이어벨트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으면서 '계약상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했다면' 대표자의 자격이 없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대표가 회사를 운영했다면 직무 책임을 다하지 못한 '배임행위'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생산 효율성 증대와 비용 절감을 위해 하청업체에 일감을 넘기고, 여기에 위험도가 높은 과중한 업무를 하도록 강제한 원청업체는 가장 큰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원청업체는 물론이고 하청업체를 모두 포함해 지금까지 산업안전법 위반으로 사업자나 관련자가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0.57%에 불과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바로 '김용균법'으로 일컬어지는 중대재해처벌법이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계기가 된 사고의 책임자는 정작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모순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중대재해처벌법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사고를 계기로 열악한 환경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법률이 만들어졌다면, 김용균씨 사망 사고는 그만큼 중대하고 치명적인 과실이 있다는 의미이고, 여기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산업현장에서는 여전히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11일 여수국가산단에서는 폭발사고가 발생해 4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채석장 붕괴 사고로 3명이, 성남 판교 건축현장에서는 승강기 추락사고로 2명이 숨졌다. 광주 아이파크 붕괴사고를 제외하더라도, 중대재해처벌법이 발효된 이후에 발생한 재해만 꼽아도 이렇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기준이 너무 가혹하다고 지적한다. 기업하기 힘든 세상이라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기업하기 좋은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하청에 하청을 주면서 비용은 줄이고 안전관리 책임은 지지 않고 노동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이윤만 챙기면 되는 세상을 의미하는가.
우리나라 건설근로자 10만명당 사망자수는 25.45명이다. OECD 평균 8.29명의 세 배가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