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윤 타투유니온지회장. 연합뉴스"우리 졌어요!"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타투유니온지회장 김도윤(41)씨가 서울 종로구 잉크트월 스튜디오에 들어서며 외쳤다. 작업 중이던 다른 타투이스트가 고개를 들고 씁쓸하게 웃었다. 지난달 31일, 김씨는 헌법소원 심판 선고 기자회견을 앞두고 위헌, 기각, 각하에 해당하는 3가지 입장문을 준비했다.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그는 가장 읽고 싶지 않았던 '기각' 입장문을 꺼내들었다.
이날 헌재는 의료법 27조 1항과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보건범죄단속법) 5조가 헌법상 기본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등 내용의 헌법소원을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기각했다. 타투(Tattoo·문신) 관련 자격과 요건을 법률로 정하지 않아 입법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내용 또한 각하됐다.
1992년 대법원이 문신시술을 의료 행위로 판단한 이후 타투이스트들이 의료법 위반 등으로 처벌을 받는 것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헌재는 2007년 의료법상 처벌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처음 판단하고 이 결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에도 같은 결정을 내리면서 '보건 위생'을 이유로 들었지만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재판관 다수 의견은 바늘로 피부를 찌르는 문신 시술이 '의료 행위'이며, 의료인만이 문신 시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심판 조항이 합헌이라는 것이다. 재판관들은 "문신 시술에 한정된 의학적 지식과 기술로는 현재 의료인과 동일한 정도의 안전성과 의료 조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문신 시술 관련 법률 규정도 "국회의 영역"이라고 못 박았다.
반면 반대 의견을 낸 이석태·이영진·김기영·이미선 재판관은 "문신 시술은 치료 목적 행위가 아닌 점에서 다른 무면허 의료 행위와 구분되는 만큼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관점에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의료인 자격까지 요구하지 않고도 안전한 문신 시술에 필요한 범위에서 규제를 통해 안전한 시술을 보장할 수 있다"고 했다.
연합뉴스선고 전 "위헌 심판이 나오면 물구나무서며 나올 것"이라며 기대를 표했던 대한문신사중앙회 회원들은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됐지만 이 나라 법관들은 오랜 경험과 상식조차 거부했다"며 "부당하고 잘못된 법 적용에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타투유니온 또한 "모두가 직립보행을 하는데 사족보행에 머물러 있는 헌재는 92년 궤변에 앞발을 들어준 격"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회장 김씨는 기자회견에서 "헌재는 '입법부가 법을 만들면 합법'이라는 요지로 입법부에게 책임을 전가시켰다"며 "문화적 소양과 사회적 통찰을 갖추지 못한 자들에게 너무 많은 판단의 권한을 주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의료법 27조 1항은 의사 면허가 없는 비의료인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를 어기면 보건범죄단속법에 따라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고, 100만원 이상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도 같이 선고될 수 있다. 30년 전 판결에서 타투가 의료 행위로 규정돼 타투이스트들은 '무면허 의료 행위자'로 취급받고 있다.
법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타투이스트들은 직업의 자유와 예술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불법 행위'로 인한 신고·단속이 두려워 자신이 입은 범죄 피해를 밝히지 못하거나 협박을 받는 상황에 놓인다고 호소해왔다. 의료법 외엔 문신 관련 법적 제도가 없기 때문에 제도적 공백으로 소비자들 또한 자유롭고 안전한 시술을 받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대학에서 만화를 전공하고 웹디자이너로 회사에서 일하다가 타투 일을 시작한 정재훈(27)씨는 타투 제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타투를 공부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타투이스트들한테 돈 뜯어내는 흔한 방법'이라는 게시글이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제도 밖에 있다는 불안함 때문에 타투유니온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직업처럼 노동을 통해 세금을 내고 일반 직업으로 인정이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타투이스트들이 세금을 못 내는 이유는 납세 행위 자체가 '불법 의료시술로 영리를 취했다'는 증거가 돼 처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타투를 보는 시각 차이가 법적 공백을 부른다. 법원은 1992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문신시술 과정에서 감염, 화상, 피부염 등 증상이 발병할 위험이 있으므로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지만 타투를 받는 일반 대중은 타투를 '예술 행위'로 바라본다.
정씨는 "의사들처럼 의료 수준을 지켜서 작업을 할 수 없다고 재판관들이 말했는데, 의사들이 저희처럼 예술적이거나 손님들이 만족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는지도 물어봐야 한다"며 "타투는 자유로운 표현을 보여주는 표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한형 기자
이날 잉크트월 스튜디오에 타투를 받으러온 김곤요(28)씨는 문신 시술이 '불법인 게 이해가 안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타투를 처음에 받을 때는 불법인지 몰랐고, '왜 당연한 게 당연하지 못한가' 의문이 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가 하는 타투는 받고 싶지 않고 예술가에게 받고 싶다"며 "타투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그림 선물 받는 걸 좋아하는데 타투는 스스로에게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몸이라는 캔버스에 그림을 새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씨의 몸엔 꽃과 동물 등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타투가 많다.
헌재 판결에서 보듯 '보건 위생'은 타투의 위험성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타투유니온지회장 김도윤씨는 "그러니까 법제도 안에서 위해가 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며 "'합헌 판결'이 오히려 소비자의 안전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한편 타투 합법화 움직임은 꾸준히 있어왔지만 관련 법안은 의료계 반대로 매번 폐기됐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16일 "문신 시술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와 피시술인의 개성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국회에 계류 중인 문신 관련 입법안들에 대한 신속한 처리가 필요하다"고 국회의장에게 의견을 표명했다.
김씨는 앞으로도 타투 합법화를 위해 사법 투쟁, 공백 없는 입법 진행 준비 등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그는 "이미 국민 정서상 '충분히 됐다'는 생각을 해 걸림돌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양을 갖추지 못한 높은 결정권자들이 국민의 삶의 수준을 떨어뜨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