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립니다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 박재홍> 금요일 한판승부가 자랑하는 한판클라스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얼마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 사저로 돌아왔죠.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에 대한 촉각이 곤두세워져 있고 또한 대선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사면 얘기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한판클라스에서는 박근혜, 이명박 정권을 한번 되짚어보는 시간 준비했습니다. 우리들의 역사 선생님, 역사학자 심용환 작가님 나왔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심용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박재홍> 아프셨잖아요. 코로나. 괜찮으세요, 이제?
◆ 심용환> 남의 질병을.
◆ 진중권> 우리 인사이더입니다.
◇ 박재홍> 우리 진 작가님도 한 번 걸리셨어요.
◆ 진중권> 인사이더고.
◆ 심용환> 그렇구나. 안 걸리셨나요?
◆ 김성회> 저는 아웃사이더.
◇ 박재홍> 저희는 방송 끝나면 바로 집에 가기 때문에.
◆ 진중권> 요즘 그런 말이 있잖아요.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는 분, 사교성에 문제가 있거나 이런 분들이.
◇ 박재홍> 저희 두 사람은 성찰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작가님 그동안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했는데 최근에 화제의 드라마 애플TV 드라마 '파친코' 역사드라마에 참여하셨다면서요.
◆ 심용환> 그게 사실 한 2년 반 전에 한 거여서 꽤 된 이야기인데 최근에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화제가 되는 바람에 어떻게 하다 저까지 얘기가 돼서… 그래서 한 2년 반 전에 작품 초기에 대본이 나왔었을 때 대본 의뢰가 들어와서 대본 8회분 대본 검증을 했죠. 초기 대본을 제가 다 보고.
◆ 진중권> 드라마 내용을 먼저 아는 거 아니야.
◆ 심용환> 보안 서약서를 썼기 때문에 2년 반 동안.
◆ 진중권> 얘기를 못하고?
◆ 심용환> 자랑도 못하고 혼자만.
◆ 진중권> 솔직히 누구한테 얘기했죠? 한 사람이라도?
◆ 심용환>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질문의 수준이 높았어요. 그래서 미국에서 만든 작품이지만 제대로 된 한국 문화를 반영하고 싶어서 꽤 디테일한 질문들. 한국의 감독들이 그렇게 물어보는 경우가 없는데 물어봤고요. 그리고 또 나중에 이번에 나온 작품을 보니까 그런 걸 또 잘 반영하고 만들어서 이런 맛에 자문을 하는구나 약간 이런 재미를 느꼈습니다.
◆ 김성회> 대본만 보고 자문을 하신 건가요? 나중에 촬영을 한 다음에 영상도 보면서 자문이 되나요?
◆ 진중권> 소품까지 직접 체크하셨다는 말이.
◆ 심용환> 아니요, 아니요. 이게 얘기가 와전이 되면서 더 커진 것 같은데 항상 이런 게 문제입니다. 정확히 제가 역사왜곡 하면 안 되고요. 저는 대본 자문이었고 촬영 도중에 연락이 와서 장면 신. 예를 들면 지금 제사를 지내는데 무덤을 짓는데 옛날에 조선 민족들이 비석을 썼으니까 어려운 질문인데 따져보니까 비석은 재산 있는 사람들이 썼던 거여서 그건 아닙니다 식으로 포인트 포인트 지적을 했고 또 미술 자문해 주신 분이 따로 있고 저 혼자 한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했는데 초기에 했던 그 나름의 공, 보람 그런 게 있습니다.
◇ 박재홍> 겸손하게 말씀해 주시고 계시는데 역할을 최소화하면서.
◆ 진중권> 일종의 고증 아니에요?
◆ 심용환> 고증을 했죠.
[애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박재홍> 고증. 그래서 호평을 받고 있고. 일본에서도 일부 극우성향 분들은 드라마에 대해서 목소리 많이 내고 있다고 하던데.
◆ 심용환> 사실 우리 보도 관행의 문제라고 생각을 하는데.
◇ 박재홍> 보도 관행?
◆ 심용환> 일종의 일본 네티즌들의 비판이라고 하는데 역사왜곡 문제라는 것은 네티즌들이 어떤 대표성을 띠는지 저는 조금 이해가 안 되고요. 왜냐하면 일본 학자들이 비판하거나 일본 정치권에서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면 그건 큰 문제잖아요. 그게 아니라 그냥 어떤 사람이 그걸 보고 댓글을 달았는데.
◇ 박재홍> 그걸 또 대표성 있게 얘기를 하고.
◆ 심용환> 저는 그런 보도 관행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 진중권> 그렇죠. 일본에 보면 투채널 보면 그냥 거의 말종들이거든요.
◆ 심용환> 우리나라랑 비슷한가요?
◆ 진중권> 우리나라의 일베 비슷한.
◆ 김성회> 아마 거기 가서 퍼왔을 거예요.
◆ 진중권> 거기서 퍼왔겠죠.
◆ 심용환> 그런 보도 관행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 박재홍> 최근에 또 일본에서 역사왜곡 교과서 문제도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 부분은 그래도 어떤 교과서 문제기 때문에 작가님도 다르게 바라보실 것 같은데.
◆ 심용환> 그렇죠. 그건 오래된 문제고 지금 맨 처음에 왜곡 얘기가 나올 때는 극우적 흐름이라기보다는 일본 내 극우적 경향과 아닌 경향이 있었을 때 새역모나 이런 단체들 중심으로 극우 교과서 나왔던 거라면 그 부분은 지나가고 일본의 보편적 교과서가 이런 내용으로 되어 가는 걸로 정착이 되는 거니까 큰 문제고 여기에 최근에 어떤 일본인들과 한국인 사이에서 큰 갈등, 누적된 갈등과 혐한 이런 것들이 섞이니까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솔직히 저도 되게 막막한 것 같아요.
◇ 박재홍> 인수위에서 최근 반응을 내기도 했지 않습니까? 인수위의 반응은 적절했다고 보십니까?
◆ 심용환> 조심스러운 반응을 낸 것 같은데.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게 점점 이따 얘기 나오면 말씀드리겠지만 어떤 정권에서는 강경하게 일본한테 그것을 비판했던 적이 있었고 그리고 어떤 정권에서는 좋게 풀어보려고 하다가 안 됐던 적이 있는데 결론적으로 말씀드렸을 때는 그 2개가 다 성공하지 못했다 라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나라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사회 자체가 우경화가 굉장히 강화가 되고 있다라는 거잖아요. 그걸 자체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히 있고 또 최근에 와서는 일본의 경제 성장 같은 동력이 떨어지면서 더욱더. 그러니까 우리가 한국한테 밀리게 생겨서 이것이 갖고 있는 또 새로운 저항의식, 이런 게 섞여서 사실은 고민이 돼요, 저도.
◆ 진중권> 처제 남편이 있는데 굉장히 걱정을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안 그랬거든요. 최근에 그냥 혐한 콘텐츠를 그렇게 즐겨 본다고. 처제가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 박재홍> 참고로 우리 진중권 작가님의 사모님은 일본인이시기 때문에.
◆ 진중권> 그렇잖아요. 나랑 밥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이런 사람인데 그런 콘텐츠에 빠져 있다라는 것은 일본의 우경화라는 게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구나 이런 생각이 저는 그때 아, 깨닫게 되는 거죠.
◆ 심용환> 그래서 아까도 제가 보도 관행도 문제 삼은 게 관행 대표성인 거잖아요. 네티즌이 어떻게 얘기했다, 네티즌이 어떻게 얘기했다. 그러니까 그거에 대해서 역사학자가 대응해라. 이 문화가 우리부터도 조금은 교정돼야 되지 않을까.
◇ 박재홍> 알겠습니다. 오늘 주제를 그럼 바로 시작해 보도록 할게요. 오늘은 박근혜, 이명박 정부의 정책 어땠는가 얘기를 해 볼 텐데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 역사학자로서 두 전직 대통령 한마디로 표현을, 한줄평 듣고 이제.
◆ 심용환> 일단은 이 주제에서 나오기 싫었는데요. 보통 역사학이라는 건 40년이 지나야 연구한다는 원리가 있어서 이거 자체를 제가 역사적 평가라고 하기는 그렇고 다만 역사가들이 바라보는 전망적 시선에서의 이야기 정도로 보면 좋지 않을까 정도로 이야기하고 한마디로 평가한다는 건 너무 힘든 것 같고. 다만 분명한 것은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아마 진중권 씨는 그때 생생하게 저항책도 내시고 그랬겠지만 저는 외환위기 이후에 소위 말하는 조각지식을 주도했었던 박정희 열풍. 그 열풍의 결과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탄생에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 끝자락에 결국 박근혜 정권의 탄생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고. 이중적인 것 같아요. 그거 하나만으로 그 두 정권이 들어설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그렇다면 결국은 이 정권이 당위성을 갖게 되는 배경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서 노무현 정권 시대가 너무나 이념적이기 때문에 실용으로 가야 된다라든지 우리 식의 성장 논리로 가야 된다라든지라는 산업화에 대한 신화, 이런 게 되게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정권이지 않았나.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과연 그들의 그 어떤 저항세력이 아닌 그 사람들 찍어준 사람들의 환상대로 이 정권이 흘러갔는가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죠. 굉장히 장황하게 얘기를 했네요, 하다 보니까.
◆ 진중권> 저는 간단하게 이렇게 보는데. 사실은 보수가 자기 서사를 잃어버렸잖아요, 군사독재 정권 이후에. 산업화 서사라는 걸 잃어버는데 새로운 게 없으니까 그걸 리사이클링을 한 거예요. 그래서 MB같은 경우에는 고도성장의 신화를 재현하겠다고 해서 747 같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다가 망한 거고 박근혜 정권 같은 경우에는 경제적 토대가 아니라 상부구조, 정치적 상부구조. 왜냐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에서 이해한 것은 자기가 청와대 있을 때 그거거든요. 그래서 아마 지금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를 거라고 저는 믿어요. 그래서 그러다가 결국은 다 낡은 박정희 서사를 갖다가 리사이클링을 하다 망한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 박재홍> 진 작가님도 평가를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 김성회 소장님도 평가를 해 주셔야 될 것 같아요.
◆ 김성회> 저는 욕에 대한 얘기를 항상 하는데요.
◇ 박재홍> 욕?
◆ 김성회> 박근혜 씨는 권력욕 그다음에 이명박 대통령은 물욕. 그 두 가지에 집착하다 결국은 끝이 허망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 욕망을 추구하지 않았던 것이 지지자들과 반대자들 양쪽에서 답답함을 맺었던 것이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 아직 퇴임도 안 하셨는데 평가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 진중권>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아요.
◆ 심용환> 저는 조용히 있겠습니다.
◇ 박재홍> 알겠습니다. 두 분의 평가였고요. 박근혜 전 대통령 얘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최근에 퇴원하셨죠. 대구 사저로 복귀를 했고 지방선거에 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이 되고 있는데 오늘 유영하 변호사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이 될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굉장히 또 영향이 살아날 것인가 관심포인트입니다. 이분이 수식어에 '최초'라는 말이 또 많아요.
◆ 심용환> 그렇죠. 최초의 여성 대통령 그리고 부녀가 최초로 대통령이 된 사례 이런 걸로 많이 지적이 되고 탄핵을 공식적으로 당해서 쫓겨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도 또 갖게 됐으니까 최초가 많죠. 조금 아쉬운 것은 어찌됐건 그 당시 생물학적 여성이냐 아니냐 이런 말이 많았는데 여하튼 여성 대통령이 됐었을 때 여성이라는 화두가 조금 더 과감하게 나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얼마 전에 무슨 강연을 했었는데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을 쫙 몇 십 명을 모아놓고 강연을 했는데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여전히 유리천장이 있구나. 한 80명 계시는데 그중에 서너 명 빼고는 다 남자. 그래서 되게 생생하게 느껴져서 이왕 이분이 계실 때 다른 건 몰라도 여성 부분에 대해서는 현격한 변화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는 이번에 준비하면서 관심이 들더라고요, 저는 솔직히.
◆ 진중권> 약간 박정희라는 남성 권력의 후광이잖아요, 사실은. 그 효과고.
◇ 박재홍> 그래서 박 전 대통령 리더십 부분부터 평가를 해 보겠습니다. 국회의원 시절에 선거의 여왕이라는 구호가 있지 않았습니까.
◆ 심용환> 그렇죠.
◆ 진중권> 선거 참 잘했던 것 같은데.
◆ 심용환> 잘했죠. 가장 인상적인 게 탄핵역풍 때 천막당사로 나오면서 완전히 무너질 거라고 생각했었던 정당을 지켜냈던 거. 가장 컸던 사건인 것 같고. 그런데 굳이 따지면 비판적으로 따지게 되면 사실 기억하시겠지만 그 당시 여권이죠. 여권의 지리멸렬함도 한 몫 했던 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게 좀 관계자시죠.
◆ 김성회> 괜찮습니다. 관계없습니다. 크게 관계없습니다.
◆ 진중권> 민감해해요.
◆ 김성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 박재홍> 편하게 말씀하세요.
◆ 김성회> 민감한 분은 우리 진 작가님이시고요, 저는.
◇ 박재홍> 편하게 말씀하세요.
◆ 심용환> 그런데 어쨌든 지금도 예를 들면 인물이 많은 것 같은데 대선 때가 되거나 시즌이 되면 인물이 없다, 이게 반복되는 정당의 특징인 것 같은데 이 당시 때도 기억하시겠지만 소위 말하는 유시민, 정동영, 손학규 이런. 대충 느낌이 오시죠, 그렇죠? 굉장히 내부적인 갈등이 심해지고 지방선거가 계속 작은 선거도 패배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초기 아까 말씀하셨던 천막당사를 만들고 했었을 때 강인한 이미지는 맞는데 당시 그 이후에 승리했던 과정이 이 박근혜의 지도력 때문이냐. 아니면 한쪽은 어느 정도 소위 말하는 이명박, 박근혜라는 테마와 캠프로 가진 상태에서 싸우는 우세점에 있어서 후자가 맞지 않냐 이런 생각이 저는 좀 드네요.
◆ 김성회> 저는 하나 딱 생각나는 것은 2012년 선거를 치를 때 제 기억으로는 보수진영에서 후보를 단일화해서 나온 거의 최초의 선거였다는 점에서는 그것이 박근혜 후보의 역할이든 박근혜 주변의 참모 역할이든 그런 정도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정치력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야 될 부분이 있다고 봤습니다.
◆ 진중권> 특히 대선 때 김종인 위원장 데려다가 경제 민주화를 막 추구하고. 사실 저는 그럴 때 이거 민주당에서 뺏겼구나. 아젠다를 뺏겼다고 생각하고 그때 놀랐던 게 뭐냐 하면 지금도 당색이 빨간색이잖아요. 세상에 어느 나라 보수정당이 색깔을.
◆ 심용환> 새누리당.
◆ 진중권> 심지어 저는 민주노동당, 정의당 이런 쪽인데 우리도 빨간색 못 썼어요. 주황색 쓰고 보라색 쓰고 이랬는데.
◆ 김성회> 그때 기억나는 게 광고업계에서 계셨던 프로페셔널이 오셔서 그 색깔을 바꿔서 완전히 당 이미지를 쇄신했던 기억은 나네요.
◆ 심용환> 맞아요. 사실은 그 배경으로 박정희라는 강력한 후광 그런 건 확실히 어드벤티지를 갖고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좀 해보고요. 왜냐하면 그렇게 하게 되면 내부반발도 있고 한데 나름대로 카리스마가 있기 때문에 그런 변화도 가능했던 건데 요즘 국민의 힘을 보면 그게 안 보여요. 불가능하죠.
◇ 박재홍> 그래요. 그러다 선거의 승리를 하고 대선까지 승리를 한 대통령이 됐는데 대통령 된 이후에 정권이 기울었던 건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을 것 같아요.
◆ 심용환> 아마 한국의 그 사건을 봤던 모든 사람은 다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죠. 그 당시 정부가 어디 있었는가 이 말을 잊지 못하는 거고. 저는 기억나는 거 어느 순간부터 노란 옷 있잖아요. 재난 점퍼를 입고 모두가 다 앉아서 어차피 옆에 다 쳐주는 사람이 있는데 대통령이 언론적인 이야기를 할 때 그걸 받아 적고 있는 참모들의 모습. 그건 정말 우리 역사의 흑역사의 한 부분인 것 같고 그 모습을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줬던 게 어떻게 야당 정치인들 여튼 여러 단점이 있더라도 저렇게 정치적 성공한 대통령이 돼서 이런 식으로 하지? 저는 지금도 이게 풀리지 않는 숙제. 나중에 하면 40년 지나서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새로운 문서들이 공개가 되면 뭘 좀 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스러워요.
◆ 진중권> 그게 상황에 대해서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게 그냥 방송을 통해서 공개가 돼버린 거잖아요. 이 부분에 국민들이 굉장히 화가 났던 것 같아요.
◆ 김성회> 저는 청문회 직접 참여했던 사람 중 한 사람으로 두 가지가 충격적이었는데 첫 번째는 1년 동안 수요일에 한 번도 일정을 잡은 적이 없다. 그냥 주4일 근무를 실천적으로 실천하고 계시던 분이었다는 게 저는 되게 충격이었고요. 수요일은 노는 날이었어요. 그다음에 두 번째는 그 참사가 벌어진 10시에 보고문건을 들고 말했던 대로 본관까지 자전거를 타든지 자동차를 타든지 뛰어가서 이 사람 자고 있으니까, 방에서 자고 있으니까 문을 두들겨서 깨울 용기를 낼 사람이 없어서 문 앞에다 서류를 고이 놔두고 나오는 장면. 그러니까 저쪽에는 국민들이 수백 명이 위기에 처해 있는데 문을 두들기고 들어가서 빨리 일어나세요라고 낚아채는 비서진이 단 한 명도 없는 정권이었다라는 것이 제가 파악한 바로는 그런데. 그건 정말 그 당시에 너무 큰 충격이었어요.
◆ 진중권> 해경인가 거기서도 그런 얘기했잖아요. 큰일났네, VIP에 보고해야 되는데. 애들을 구하는 게 아니라 보고하는 게 중요했던 거죠.
◆ 김성회> 영상 좀 보내라 이런 얘기도 있었고.
◆ 진중권> 그때 충격 받았어요.
◆ 심용환> 맞아요. 맞아요.
연합뉴스◇ 박재홍> 그때 이후로 어떠한 리더십 문제를 한국사회가 바라보고 뭔가 더 변화된 게 있었을까요?
◆ 심용환>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죠. 그런데 그 이후에 실제로 보면 그 문제에 대한 직접적 해결이라기보다는 국정교과서 강요라든지 아니면 많이 잊혀졌지만 통신법 개정이라든지 전반적으로 최후의 교육은 안 됐지만 그날도 기억하시겠지만 최순실 태블릿PC가 그날 저녁에 JTBC에서 공개가 됐는데 낮에도 이제 전국을 돌파한다고 했던 게 개헌이었거든요. 사실은 기억나시죠? 정권의 하반기가 개헌? 어떤 좀 권위주의 정권으로의 회귀 이런 걸로 많이 갔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하고 확실히 달랐던 것 같아요.
◆ 진중권> 처음에 이슈 덥기로 끊었다가 바로 얻어맞고 쓱 들어가버렸죠.
◆ 심용환> 맞아요, 맞아요. 만약에 그날 태블릿PC가 안 나왔으면 또 역사가 어떻게 갔을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지점 같아요.
◇ 박재홍> 그렇군요. 박근혜 대통령 당시에 경제정책 슬로건 여전히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창조경제였습니다. 이 창조경제 주류경제학자들은 있는 얘기 아니다. 뭔가 전혀 없는 얘기를 막 만들었다 비판도 있었습니다마는 창조경제 이 부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 심용환> 그러니까 이게 우리가 좀 툭 터놓고 여야를 뛰어넘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게 뭐냐 하면 맥락을 쭉 살펴보게 되면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이승만 정권은 특별한 경제적 업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일부 학자들이 주장을 하지만 실증적 근거는 아직 결여돼 있고 다만 이야기하면 제헌 국회 초기 때 농지개혁을 통해서 농업국가, 지주제 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가 그때 만들어지기는 하죠.
◆ 진중권> 그건 큰 겁니다.
◆ 심용환> 굉장히 크죠.
◆ 진중권> 남미에서 그게 안 돼서 그 모양인 거예요. 필리핀도 그게 안 돼서 저 모양인 거고요.
◆ 심용환> 맞아요. 그러고 나서 사실 이후에 10여 년 집권 때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그 이후에 우리가 알다시피 박정희 정권 때 산업화가 진행되고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 정권 때 IT 그리고 벤처로 들어가는 어떤 선순환의 그림이 있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그리고 김대중 정권 때 어떤 그런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되 복지나 노사정 위원회를 통해서 이렇게 노동제의 처우에 대한 포인트를 만들겠다, 거기까지는 사실 우리가 그림이 그려지는데 그다음에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이명박, 박근혜 같은 보수정권이 잡았을 때는 성장 이데올로기다. 실질적으로 성장점을 못 찾고 있는 것은 사실이잖아요. 창조경제 이야기하는데 모르겠습니다. 이게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원하느냐라든지 반대편으로 그러면 이번 사실은 이런 말 좀 조심스러운데. 이번 정권 기간 동안 반대편 얘기했을 때 분배에 의한 혹은 소득주도성장이 보이는 진보적 가능성은 뭐냐가 과연 지난 5년간 확실하게 국민들 사이에 각인됐냐, 그런 것은 아닌 상태가 된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이 와중에 52시간을 넘겠다라든지 우리는 죽었다, 이런 이야기가 나타나는 게 어디까지가 보수의 성장 논리냐. 어디까지가 진보의 분배와 어떤 그런 다른 형태의 성장의 논리냐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안 만들어지고 사실은 박근혜 정권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얘기가 흘러오고 있지 않나 하는 거.
◆ 진중권> 저는 이것의 의도 자체는 괜찮았다고 보거든요. 왜냐하면 우리가 산업사회가 아니라 디지털 사회로 가게 되면 상상력이 굉장히 중요하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떠올려서 그걸 현실에서 기술로 실현하는 그걸 하려고 했는데 문제는 뭐냐 하면 거기에 필요한 상상력을 키우고 또 그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것으로 만드는 쪽으로 갔어야 되는데 이게 정부에서 하게 되면 관료적으로 들어가게 되면 지금 기억나는 것은 뭐냐 하면 창조경제 하겠다라고 하니까 갑자기 정부에서 창조 자가 붙은 부서가 백몇 개가 생겨요.
◇ 박재홍> 미래창조과학부.
◆ 진중권> 심지어 그런 말도 있잖아요. 로봇사업을 진행하자라고 했더니 존재하지 않은 로봇 사업자가 갑자기 100여 명이 넘게 등장하고. 이게 다 보통 같은 사람들이 이름만 바꿔서 따먹고 이런 식으로 변질되어버린 거죠.
◆ 심용환> 그러니까 이런 거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길을 찾아야 될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이념이나 정당을 넘어서서 합의점이나 유형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되게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성장을 우리가 안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장만을 하기가 안 되는 시대도 아닌데 성장을 이야기하는데 그 성장이 뭐냐? 이게 사실은 이명박 정권 때부터 조금 흐트러지기 시작했고 박근혜 정권 들어와서 더더더 모호해졌고.
◆ 김성회> 그런 걸 다시 놓고 보면 노태우 대통령 때 북방경제가 그 당시에 종범이라 불렀던 나라랑 수교를 러시아, 중국이랑 터서 시장을 만들어놓고 그다음에 김대중 대통령 때 정보화고속도로라고 해서 인터넷, 인프라를 전국적으로 구축을 하고 노무현 대통령 한미FTA를 하고 이런 식으로 정권마다 굵직굵직한 업적들이 있었는데 그 뒤로는 제가 경제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예를 들면 삼성과 반도체, 하이넥스 이런 정도가 쭉 산업을 이끌고 와서 우리가 겉보기에는 되게 튼튼해 보이는데 그다음은 뭐지라는 질문에 대해서 아직 답을 못 내놓는 것 같아요.
◆ 진중권> 당시에 초이노믹스라고 있었는데 그 정체가 뭔지 기억이 안 나네.
◆ 김성회> 그건 부동산 대출을. 대출을 많이 해서 부동산 많이 사라.
◇ 박재홍> 빚내서 집 사라.
◆ 심용환> 그게 소위 말하는 단기 부양 효과와 집값 떨어지는 효과가 있었으나 지금이 딜레마인 거잖아요. 그걸 억제하니까 소위 말하면 집을 사고 싶어도 못 사게 되는 거고 지금 풀려고 하니까 우리나라 국가 경제 자체에 위기가 오는 상황이 되는 거니까 초이노믹스는 굉장히 비판받을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다만 창조성장이 뭐냐. 그 앞에서는 좀 더 진중한 고민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왜냐하면 한미FTA도 얘기했지만 사실 그랬던 게 한미FTA를 노무현 대통령 안에서 엄청나게 분열이 됐었잖아요. 정태인 수석 같은 경우 싸우기도 했고. 그런데 그걸 갖고 내부 분열이 있었고 그다음에 이명박 정부 때 개정됐었을 때 보면 한미FTA를 추진했던 사람들이 우리가 얘기했던 그게 아니다라고 하면서 여기 앉아 있던 분이 저쪽 가서 이명박 정권 때 한미FTA를 비판했거든요. 물론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국민들이나 어느 정도 보기에는 구별이 잘 안 되는 거죠. 뭐가 옳고 이 정권이 뭐가 차이가 있나. 이 혼선은 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서 새롭게 좀 풀어가야.
◆ 김성회> 그러면서 진보정당이 굉장히 위기를 겪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한미FTA 만들면 대한민국 망하고 미국의 식민지가 될 것처럼 이야기를 진보정당들이 그 당시에 굉장히 겁을 줬었거든요. 그런데 결론적으로는 아무 일 없이 그냥 살고 있으니까 저들이 잡은 아젠다는 뭐였지. 이런.
◆ 진중권> 그게 문제가 아니라 한미FTA 자체가 간 게 아니라 한미FTA를 하게 되면 부문별로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피해를 보는 부문과 이득을 보는 부문이 있는데 그 부문 간의 조정이 잘 되느냐 안 되느냐 거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거기에 대한 반발이었던 거고 그런데 사실 진보 일각에서도 이런 것만 나오면 무조건 그런 식으로 세계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버려야 될 거라고 봐요.
◇ 박재홍> 그래요. 외교정책 얘기 해 볼게요.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외교정책. 일단은 한일관계, 한중관계 짚어보면 좋을 것 같은데 제 기억에 한중관계는 굉장히 좋았다가 사드 때문에 힘들어졌죠?
◆ 심용환> 가장 힘든 주제고 여기로 가면 심각해지는 건데. 왜 우리가 많이 놓치는 게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에 임기를 시작했잖아요. 그런데 시진핑 주석의 임기가 2013년부터 시작이에요. 그러니까 2008년부터 부주석이 됐는데 2013년이 우리나라가 새로운 시작이지만 중국도 어찌됐건 후진타오 시대를 끝내고 시진핑 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이었고 그때 기억하시겠지만 저는 기억하는 게 하얼빈을 갔더니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딱 있는데 어떻게 만들어졌어요 하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그때 방중을 해서 여기가 그런 일이 있으니 기념비 정도 요청을 했는데 딱 들으니 지어 해서 박물관을 지어주는 통 큰.
◆ 진중권> 사회주의가 참 그런 것은 좋아.
◆ 심용환> 발언 위험한데요. 그리고 그때가 어떤 때냐면 오바마 집권이기 때문에 오바마가 소위 말하는 피벗 전략이라고 해서 아시아로 회귀를 한다고 하는데.
◇ 박재홍> 피벗 투 아시아.
◆ 심용환> 사실 회귀가 잘 안 되는. 지금도 회귀가 전혀 안 되잖아요.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미국의 외교정치에 갈팡질팡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우리가 중국과의 관계에서 시진핑이 손을 내밀 때 우리가 손을 잘 협력관계를 잘 구축하고 그 과정에서 미중관계에서의 중요한 가교역할을 했으면 사실 괜찮았죠. 문제는 거기서 사드배치라는 것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단숨에 이 상황이 바뀐 거기 때문에 이건 굉장히 큰 외교적인 실책?
◆ 진중권> 실책이라고 보는 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실은 중국 인민해방군 사열대에 올라가서 그 군대가 어떤 군대입니까? 6.25 때 우리 쳐들어와서 그 때문에 우리가 통일이 안 돼서 분단이 된 그런 군대인데. 사실은 놀랐지만 그래도 우리가 인정을 해 줬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기조를 그냥 가져가지 못하고 사드를 배치함으로써 엄청난 타격을 받은 거죠.
◆ 김성회> 그런데 그 중간을 보면 제 입장에서는 그런데 왜 그러면 사열대에 올랐을까를 생각해 보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서 북한 문제 특히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박근혜 정부의 믿음이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사열대까지 올라가서 시진핑 주석과의 관계를 돈독히 한 건데 거기 미국이 확 돌면서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하니까 갑자기 또 정책을 바꿔서 그럼 사드 놔줄게 하니까 중국 입장에서는 특히 중국의 지식인들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믿어왔던 한국이 우리에게 레이더를 들이대고 정찰을 해? 몹쓸 사람들이구먼 하면서 완전히 갈라진 것은 아닌 건지. 되짚어보면 그렇게 보이는데요.
◆ 진중권> 이게 원래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이 문제에 대해서는 NCND였잖아요. 왜냐하면 피해가자. 미국이 막 욕을 해도 대꾸 안 하고 넘어간다는 게 합의된 정책이었는데 이걸 확 뒤엎어버린 거고.
◆ 심용환> 애매성의 원칙이 적용이 됐어야 되는 부분이 안 된 거고. 이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아까도 노태우 대통령 얘기를 하셨지만 노태우 대통령 같은 경우 북방정책을 하잖아요. 그런데 북방정책을 그냥 헝가리나 중국하고 수교를 맺는다는 건 이건 보수이념에 위배가 돼요. 그리고 소위 말하는 노태우의 언어적 레토릭은 경제 영토 확장이었잖아요. 이런 식으로 사실 현실적으로 중국과의 경제 관계가 중요한데 그 양자를 어떻게 설득시켜나가느냐에 대해서 보수정권이 갖고 있는 항상 딜레마가 뭐냐 하면 이념적 반공성과 현실적 경제성 사이에서 충돌이 그 자기 분열인데 사실은 오히려 과거 정권보다도 박근혜 정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외교적 패착이 이어지지 않았나.
◇ 박재홍> 좋은 지적이시네요.
◆ 진중권> 사실은 이명박 정권이 처음에 그걸 표방한 거잖아요. 우리 이념에서 벗어난 실용정부가 되겠다라고 했는데 바로 그냥 배반해 버리더라고요.
◆ 심용환> 그게 사실 중요한 게 뭐냐 하면 그때 그러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갔었을 때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얘기했을 때는 후진타오가 그런데 너네 왜 한미동맹을 강행해라고 직설적으로 날리면서 비판을 많이 받았거든요. 박근혜 정부 때는 그게 없이 전제조건 없이 시진핑이 끌어당긴 거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계기가 됐는데 그게 바스라진 게 지금의 어떤 혐중 논란과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 박재홍> 그렇군요. 지금 이명박 정부 얘기를 하셔서 자연스럽게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역사학자 심용환 작가님과 함께하고 있는데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연합뉴스◆ 심용환> 아까 말씀하셨는데 실용이라는 얘기. 그러니까 저도 기억이 나는 게 아시다시피 서울시장을 하셨고 서울시장을 통해서 버스 또 청계천이나 시스템 기억이 굉장히 어필이 됐고 제가 대학로 앞에 있던 고가도로가 다 없어졌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소위 말하는 젊은층들도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이 아닌 그 노무현 정권기 때 어떤 그 전력난은 누구의 잘못인가 대해서는 다른 얘기겠지만 그걸 벗어나서 실용으로 가겠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게 저는 어필됐다고 생각하고. 문제는 뭐냐 하면 그리고 대통령이 된 다음에 잘 아시다시피 굉장히 빠른 이념경제성이 컸고 그리고 또 하나는 이런 거잖아요. 세월 지나면 모든 게 다 좋은데 박정희 정권 때 진짜로 살았던 때를 따지면 힘 있고 백 있는 사람들이 득 보는 건데 그런 것처럼 소위 말하는 정권 특유의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같은 것이 그 당시 굉장히 많이 문제제기가 됐잖아요. 꿈꿨던 기대와 이상과 현실이 특별히 달랐던 정권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 박재홍> 이명박 정부 시절 생각해 보면 가장 중요한 사업 중 하나가 4대강 사업이었는데 그게 사실상 운하였다, 대운하 사업이었다 이런 비판을.
◆ 심용환> 한반도 대운하.
◇ 박재홍> 한반도 대운하였다 얘기를 합니다마는 이것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고 정권교체가 되면서 새 정부는 또 4대강 관련해서 현 정부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 심용환> 그 전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은 지금 정권과 얘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게 뭐냐 하면 아시다시피 많은 환경단체들이 그 4대강이라는 것이 우리가 굉장히 비판했던.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이명박 정권기 때에 저항 문화에 보면 기존에 있었던 독재와 반독재가 아니라 어떤 그런 형태. 미국산 쇠고기라든지 4대강이라든지 이슈별 저항이 나타나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그 결과가 소위 말하는 정권이 바뀌었어요. 그럼 이제 4대강을 다 연다라든지. 그래서 결과의 차이. 봐라, 이건 잘못된 거다 이런 게 있으면 비교대조가 되면서 뭔가가 되는데 계속 지적하는 거지만 지금 문재인 정권 들어서 4대강 안 바뀌었잖아요. 이런 문제가 저는 좀 큰 부분이지 않나라는 그런 생각들이 좀 들어요.
◆ 진중권> 가장 대표적인 게 이 문제거든요. 디지털 시대로 넘어갔는데 아직도 산업사회 때 이분이 뭐라고 생각을 하냐면 SOC 사업을 하게 되면 국가에서 하게 되면 고용이 창출되고 일하는 노동자가 함박집도 있고 해서 경기진작 효과가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딱 지어보면 거기 가면 포클레인 딱 2대가 작업하고 있고 아무것도 없고. 결국은 이 낡은 사고방식이 사실은 22조의 국고 손실과 또 다른 환경파괴를 한 그런 작업이고 실제로는 이재오 고문께서 말씀하셨는데 솔직히 얘기하더라고요. 솔직히 그거 대운하 사업이었다.
◆ 심용환> 아예 공개적으로?
◆ 진중권> 21세기에 누가 물류를 갖다 운하로 날라요.
◆ 김성회> 대운하 사업이라고 보지도 않는 게 이명박 정부 시절은 전 국토의 수익사업화였는데 4대강에서는 포클레인이 번 거고 그다음에 지하철역에 깔았던 스크린도어도 광고판을 연 거였고 버스전용차선, 교통카드 업자 선정, 자원외교까지 다 해서 모든 것이 항상 수익과 연결되어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던 거예요. 그래서 일부분 성과도 있었지만 일부분은 필요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그런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진중권> 국가주도성장 시대에 그런 걸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국가에서 돈을 풀어서 고용을 창출하고 사업을 일으키고 하다 보니까 그 사업이 필요하냐 안 필요하냐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일단 돈이 돌아간다 이런 사고방식을 했던 거죠.
◇ 박재홍> 당시 대통령 선거할 때 정동영 후보와 엄청난 차이를 내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 심용환> 그때 정동영 후보를 찍으면 친구들이 비웃었죠.
◇ 박재홍> 그랬습니까?
◆ 심용환> 하하하 이러면서. 워낙 사실 정동영 후보를 뭐라고 그런 게 아니라 워낙 격차가 심했기 때문에 좀 투표율도 낮았고.
◇ 박재홍> 당시 747 공약이 이명박 전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었는데 경제성장의 7%,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선진국 도입 당시의 공약이었고 나중에 비판을 받았습니다마는 그런데 이번 대선을 보면 후보들이 또 비슷한 숫자로 공약을 설명한 게 많이 있어서 그 시절로 회귀한 거 아니냐 비판도 있었어요, 사실은.
◆ 심용환> 박근혜 대통령도 사실 474 주장을 했었고 뜻대로 안 된다라는 건 분명하게 이해하지 않을까요?
◆ 진중권> 7% 성장 이걸 이렇게 되려면 우리가 개발도상국으로 돌아가야지 가능한 숫자거든요. 아직까지도 이게 바로 뭐냐 하면 우리는 사실 사회복지니 이 모든 고통들을 성장으로 해결해 온 시스템이었는데 우리가 발전하다 보니까 저성장 시대로 들어갔거든요. 국민들의 불만들을 해소할 길이 없으니까 과거에 대해 향수를 하고 그걸 하려니까 4대강 가서 이런 것들이 필요했던 겁니다. 왜냐하면 70년대는 사실 사회간접자원을 만들게 되면 그게 사실 경제효과로 돌아왔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고속도로 다 깔리고 다 깔렸는데 할 게 없으니까 운하 파려다가 이렇게 된 거죠.
◆ 심용환> 이게 농담 삼아서 얘기하는 거니까 대운하는 중국에 있잖아요. 왜냐하면 올라가는 가로로 만들지만 한반도는 전통적으로 연근해안. 나라가 짧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필요 없는 지역 특징을 갖고 있었으니까 사실은 단순히 역사교과서로 보더라도 말이 안 되는 거고. 그런데 저는 아까도 지적하신 부분이 되게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게 그 과정이 그냥 적극적인 개발로 끝났으면 개발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될 텐데 그 과정이 결국은 이익환수, 정경유착, 사기 이런 게 굉장히 많았잖아요. 그렇게 되면 소위 말하는 한국의 보수정당은 부패정당이다. 한국의 보수정당은 도둑질 정당이다라는 엄청난 이미지가 각인된 거잖아요. 그러니까 아마 차기 정권 들어서 그걸 얼마큼 여기서 극복하느냐도 다음 정권의 과제가 아닐까.
◆ 김성회> 그런데 인수위원회가 대부분 이명박 정부 시절에 만들었던 분들이 다시 하셔서 물론 리더십이 바뀌었기 때문에 같은 형태로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 진중권> MB에게 평가해 줄 만한 버스전용차량 차선제. 저는 사실 약간의 기대도 있었거든요. 보수지만 실용으로 간다는 건 용인할 수 있었는데 4대강 사업한다는 말을 듣고 그때 나온 말이 뭐냐 하면 공약을 지킬까 봐 걱정되는 최초의 대통령이다.
◆ 심용환> 진짜로 할까 봐?
◇ 박재홍>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없었을까요? 이명박 정부 당시, 쭉 박근혜 정부 쭉 얘기를 했습니다마는 두 분에 대해서.
◆ 심용환> 두 분에 대해서? 갑자기 이런 얘기하면서 긍적적인… 이게 부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기보다는 그러니까 이러면서 사실은 지난 아까 얘기 처음으로 돌아가면 지난 그 시간 8년, 9년간의 기간이 박정희 씨는 아예 소실점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결국은 더 이상 과거의 어떤 신화에 의존된 정치가 불가능한 시대가 되는 거고 사람이 어떻게 되든 간에 문재인 정권도 그렇지만 윤석열 앞으로 들어설 정권 같은 경우도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식의 옛날에 우리가 했다 그걸 이번 정권에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 진중권> 노무현 정권 이전까지는 모든 정권들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개혁들 또는 과제들을 해냈어요. 하나씩이라도. 그런데 그게 그 이후부터 다 끊긴 겁니다. 이번에 MB 때부터 끊기고 그다음에 박근혜 때도 끊기고 이번에 문재인 정권도 도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고. 그다음에 이번에 들어설 윤석열 정부도 그렇게 될 것 같고, 느낌이.
◆ 심용환> 벌써 그렇게 보시는 거예요?
◇ 박재홍> 아직 시작 안 했기 때문에 평가는 유보하셔도 될 것 같아요.
◆ 진중권> 그게 아니라 비전이라는 게 지금 없어 보이거든.
◆ 심용환> 그런 면에서.
◆ 김성회> 저는 역사학자 입장에서 일본 외교와 관련돼서 박근혜, 이명박 정부 얘기를 조금 들려주셨으면 해요.
◆ 심용환> 이게 사실은 간단한. 그러니까 저도 옛날에는 간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역사적인 도의성과 당위성을 따졌었을 때는 당연히 우리가 억울한 거고 잘못한 거고 그걸 정부가 사죄를 해야 된다라는 믿음이 있었죠. 그런데 이게 사실 역사를 따져보게 되면 그 이야기를 91년 김학순 할머니가 퍼뜨렸었을 때 그때가 공교롭게 일본에 3차 민주주의의 전성기잖아요. 그래서 호소카 내각이 들어섰을 때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우리가 터뜨렸었을 때 우리가 받을 수 있었고 그 당시 일본 여론조사를 보면 70% 이상이 이걸 우리가 배상을 해 주자. 보상을 해 주자 이런 얘기를 했다라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아시다시피 그 이후에 일본의 사회당이 몰락을 하게 되면서 고이즈미 총리 내각으로 바뀌고 그리고 그러면서 상황이 악화가 된 건데 그 이후에도 우리는 역사의 논쟁으로 가고 있는데 문제가 뭐냐 하면 이런 거죠. 일본 내에서 그러면 일본 안에서 일본 전쟁기 때 피해 본 사람들이 더 많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전쟁국가로서 일본이 잘못은 했지만 전쟁을 본인들이 일으켰으니까 전사자니 뭐니 엄청 많죠. 문제는 일본인들이 자국의 대상으로 피해 보상을 받은 적이 있냐? 단 한 건도 없거든요. 우리나라 같으면 5.18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민주주의 통해서 요구하고 특별법 만들고 다 챙겨나가는 문화가 있는데 일본은 자국의 국민에 대해서도 보상을 안 해 주거든요. 그러니까 그 당시 초기에 나왔던 게 우리나라 내의 정보가 없기 때문에 그러면 아시아 여성기금이라는 기구를 만들어서 간다. 건강기능식품 또 여성기금 만들 때 자민당 같은 보수정당의 눈치가 있으니 민간으로 해서 하는 걸 하고 편지에다가 총리의 사인을 넣자라는 식으로 굉장히 애매한 합의를 봤죠. 그때 사실은 저부터도 그랬고 한국의 역사를 좀 안다, 역사 문제 관심 있던 사람들은 완고했죠. 기억하시겠지만 지금 우리가 굉장히 칭찬하는 고노담화, 무라야마담화, 그 당시 나왔었을 때 다 비판받았고 최근에 우리가 돌아가자고 얘기했던 오부치 김대중 사업도 사실은 다 비판 받았었어요. 그러면서 지금 이렇게 흘러오는 시간이 커지고 거기다 내부적으로 이용수 할머니 사건 이후에 일종의 위안부 문제 자체가 우리나라 내에서도 진보, 보수화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 진중권> 윤미향 사건이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윤미향 사건으로 인해서 과연 우리는 옳았던 것인가. 우리 운동방식은 이런 데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됐는데. 어쨌든 일본. 이 문제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결되려면 일본 사람들 생각이 다 바뀌어야 되거든요. 그건 사실 현실적이지 않잖아요라고 한다면 이제는 현실적인 대안을 왜냐하면 한일관계 이렇게 나쁘게 계속 유지할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약간 실용적으로 생각을 해야 되고 그럴 필요가 있지 않나.
◆ 김성회> 그러려고 하면 교과서를 저렇게 만들어버리니 타협할 틈을 주지 않네요.
◆ 진중권> 그러는 보수 같은 경우에 한편으로는 박근혜 정권 때는 위안부 합의를 했잖아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 때 어떻게 했냐. 독도 방문을 해 버려요.
◆ 심용환> 사실은 그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사건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기억 못 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일본 내에서 결정적 사건. 그러니까 한일관계를 완전히 거꾸로 시킨 사건이 뭐냐라고 일본 국민들한테 물어보면 놀랍게도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고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사건이에요.
◆ 진중권> 그러니까 이런 문제거든요. 아니, 우리 대통령이 우리 땅 가는데 뭐가 문제야, 이런 거고. 하지만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건 엄청난 도발로 느껴지는 사건이거든요. 그 간극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 이런 문제라는 거죠.
◆ 심용환> 그런데 이걸 역사적인 문제로만 딱 해 버리면 상황은 단순해지는데 그렇게 이야기하기에는 양국이 붙어 있고 양국의 갈등이 심해졌을 때 피해가 우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협력해야 될 요소가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적당한 탄력 사업 그리고 어느 정도는 새로운 제고 이런 게 필요할 것 같아요.
◇ 박재홍> 오늘 작가님 모시고 두 정권을 한번 훑었습니다.
◆ 심용환> 벌써 끝났나요?
◆ 김성회> 2부로 할 걸 그랬어요.
◆ 심용환> 앞에 김동연 대표님께서 시간을 잡아드시더라고요 (웃음). 한 5분 더.
◇ 박재홍> 알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듣고요. 오늘 작가님은 보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역사학자 심용환 작가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심용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