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범 B씨 텔레그램 방·전국길고양이보호단체연합(전길연) 제공'고양이가 할퀴었다, 그래서 계속 죽였다'.
이 모든 비극의 서막은 손에 생긴 작은 상처 때문이었다.
지난 2월부터 한 20대 남성은 온라인커뮤니티를 전전하며 고양이 혐오를 부추기는 글을 올리는가 하면, 텔레그램 방을 통해 지속적으로 동물을 학대하고 잔인하게 죽이는 다수의 영상과 사진을 공유했다.
이 텔레그램 방에 몰래 잠입한 제보자 A씨는 14일 CBS노컷뉴스 전화통화에서 "누가 봐도 동물 학대 정황을 포착할 수 있었다"며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이 아파서 우는 모습, 눈이 터져 피를 흘린 모습을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A씨에 따르면 학대범 B씨는 물고문을 하거나 다리를 부러뜨려 절뚝이는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 영상을 촬영해 공유하는가 하면, 죽은 사체 사진을 올려 "우리 집에 오면 거의 맞아 죽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또 고양이가 손을 할퀴었다며 "사형에 처해졌다"는 인증 사진을 올렸다.
B씨가 고양이를 학대한 뒤 올린 인증 사진. 제보자 제공'두부 마사지 냥이'라고 소개한 동물에게는 "두들겨 맞아도 사람 좋다고 따라 다닌다"며 자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부 마사지'란 후두부(머리 뒷부분) 학대를 뜻하는 용어로 동물학대범들의 은어다.
A씨는 무차별한 폭력으로 자지러지며 아파하는 고양이들을 보고 동공이 흔들렸다고 한다. 그는 "고양이들이 죽기 직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상태"라고 심경을 전했다.
'망치, 톱, 찜기…' 편의점 창고에서 나온 수상한 도구의 정체
학대범 B씨가 일하던 편의점 인근 범행을 벌였던 장소. '전길연' 제공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인 가해자 B씨의 학대 행위는 주로 그가 아르바이트로 근무하던 편의점 창고 및 거주지에서 이뤄졌다.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었던 A씨는 지난 9일 '전국길고양이보호단체연합(전길연)' 대표 C씨에게 해당 사실을 알린 뒤 학대가 이뤄진 장소인 편의점을 함께 찾아갔다.
현장에 동행했던 C씨는 "주변에 불빛 하나 없는 컴컴했던 그 곳에서 학대 정황으로 의심되는 핏자국은 명확했다"고 전했다. 편의점 창고에는 망치, 톱 등의 도구들이 나뒹굴었다. 현장에선 특이하게도 찜기가 발견됐다. 여기에 고양이를 삶았는지 버너에 찍힌 발자국이 선명했다는 게 C씨의 얘기다.
이들은 편의점 측에도 항의를 해봤지만 "모른다 나가라"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고 한다. 제보자 A씨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묻혀 있을지 모르는 고양이 사체를 찾기 위해, 가해자가 근무했던 편의점을 매일 방문하고 있다.
"직접 만나본 학대범, 감정이 없어…사이코패스 의심"
앞서 A씨는 지난달 22일엔 포항시 구룡포의 한 폐양식장에서 고양이 여러 마리를 잔혹하게 학대하고 죽인 20대 남성과 접촉한 적이 있다. 당시 범인이 느꼈던 '분노'라는 감정을 B씨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A씨는 말한다.
A씨는 "보통 학대범들에게는 '심하게 물려서' '시끄러워서' 등의 폭력이나 살해 목적이 있기 마련인데 그에게는 특별한 이유도, 분노나 좌절 등 감정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약 59건의 동물 학대 사건 고소를 진행했던 '전길연' 대표 C씨도 보통 학대범들을 만나보면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나름의 주장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관심을 유발하기 위한 목적이나 정신질환을 지닌 범인들의 경우가 대부분인데, B씨의 경우는 다른 학대범과는 전혀 상이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C씨는 "(B씨가) 특별한 이유 없이 고양이를 만지다가 살짝 할퀸 상처로 이 모든 범행을 시작한 것"이라며 "가학적인 행동을 했음에도 아무 감정 없이 무덤덤하게 범행 동기를 말할 때 사이코패스처럼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학대 정황…강제로 교미 시켜 '장애묘' 번식까지
고양이가 할퀴었다고 B씨의 손가락을 보여주는 장면. '전길연' 제공 A씨에 따르면 B씨는 고양이 번식을 목적으로 강제 교미를 시켜 '장애묘'를 탄생시키는 일에도 집중했다고 한다. 그렇게 태어난 고양이를 본인이 싫어하는 식당에 풀어놓는 게 범행 목적이라면 목적이었다.
밥을 챙겨주는 척 동물들을 유인해 교미를 시키는 과정에서 고양이들이 B씨의 손을 할퀴는 날이면, 그날은 곧 고양이가 생을 마감하는 날이 됐다고 한다.
B씨를 직접 만났던 A씨는 고양이가 할퀸 상처를 보여달라는 말에 무심하게 손을 내밀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손에는 자세히 봐야 겨우 보일 정도인, 살짝 긁힌 상처만 있을 뿐이었다.
"범행 장소에서 '80마리' 피해 고양이 발견…가족 공범 가능성도"
학대 당한 고양이들. 제보자 제공현재 해당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 화성동탄경찰서는 11일 길고양이 7마리를 학대해 죽인 혐의(동물보호법 위반)로 B씨를 불구속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화성시인 B씨의 주거지와 자신이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 창고 등에서 고양이 학대 범행이 이뤄졌다"며 "7마리 고양이를 학대해 죽였다고 자백했으며 범행 동기는 횡설수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최소 7마리를 죽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까지 A씨가 범행 장소 근처에서 발견한 피해 사체는 40구에 이른다. 다행히 구출된 고양이만 40마리, 즉 최소 80마리 이상의 동물들이 폭력을 당했거나 죽음을 당했단 얘기다.
B씨가 공유한 영상에 따르면 (B씨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고양이를 유인해 붙잡는 장면도 담겨있다. 이에 A씨는 단독 범행이 아닌 공범자나 혹은 가족이 학대를 방조한 혐의도 있다고 보고, 추가 고발을 준비하고 있다.
동물이 보호받을 권리, 어디까지 왔나
연합뉴스동물 학대는 갈수록 교묘해지고 그 수법 또한 잔혹해지고 있다. 학대 사례도 꾸준히 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최근 11년간 동물보호법 위반 관련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에 총 992건의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이 발생해 1014명이 검거됐다.
2010년부터 2020년 검거된 동물보호법 위반 사범은 총 4358명이었고, 이 가운데 63.1%(2751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이들 중 구속된 인원은 5명뿐이었다.
'전길연'에 자문을 해주고 있는 정희창 변호사는 "동물 학대는 '인간 범죄'로 옮겨 붙을 여지가 많기 때문에 가볍게 여길 사항이 아니다"라고 조언한다.
정 변호사는 "동물 학대 범죄자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매우 높다"고 지적하면서 "사람이냐 동물이냐, 그 대상에 집중하기보단 범행 수법과 잔혹성에 따라 엄중한 법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