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현대건설 본사 앞에서 열린 '2022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에서 산재사망 피해자 유가족이 건물 현판 앞에 영정과 국화를 놓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한 해 6명의 하청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현대건설㈜이 올해 노동계가 선정한 '최악의 살인기업'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또 광주에서 연이어 대형 참사를 일으킨 HDC현대산업개발㈜과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 및 시행 과정에서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최악의 살인기업 특별상'으로 뽑혔다.
민주노총과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가 모인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 캠페인단'(이하 공동 캠페인단)은 27일 현대건설㈜ 본사 앞에서 '2022년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열었다.
공동 캠페인단은 2006년부터 해마다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해 전년에 가장 많은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일어난 기업과, 노동자 산업안전보건 문제에서 주목할 만한 대상을 묶어 발표하고 있다.
이날 공동 캠페인단은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1년 중대재해 사고사망자 2명 이상 발생기업' 자료를 토대로 하청기업에서 일어난 사망사고까지 원청 기준으로 합산하여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한 결과를 공개했다.
그 결과 지난해 무려 6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목숨을 잃은 현대건설㈜이 최악의 살인기업 1위라는 오욕의 자리에 앉았다. 이미 현대건설은 2006년과 2012년, 2015년에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지정된 바 있다.
바로 뒤를 이은 ㈜대평에서는 화장품 원료를 생산하다 폭발사고로 5명의 노동자가 숨졌고, ㈜대우건설과 ㈜태영건설에서도 4명의 노동자가 사망해 공동 3위에 올랐다.
특히 이들 4개 기업에서 숨진 노동자들은 모두 하청노동자들로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3명의 노동자가 숨진 이일산업㈜, ㈜한양, 현대중공업㈜, SK TNS㈜, ㈜S&I건설은 공동 5위에 올랐다. 이들 역시 ㈜한양과 현대중공업㈜에서 원청노동자가 각각 1명씩 목숨을 잃은 사례를 제외하면 모두 하청노동자들이 숨졌다.
이와 함께 공동 캠페인단은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 특별상으로 HDC현대산업개발㈜을 지목했다.
HDC현대산업개발 본사 모습. 황진환 기자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6월 광주 학동에서 철거 작업 도중 건물이 무너져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은 인명 사고를 냈다.
이어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지난 1월에는 광주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까지 일으켜 노동자 6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현대산업개발의 안전보건 체계가 취약하다는 지적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부가 매년 발표하는 중대재해 발생 등 산업재해 예방조치 의무 위반 사업장 명단에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다섯 번 연속 포함됐을 정도다.
또 광주의 연이은 참사 직후 노동부가 현대산업개발이 시공 중인 대규모 건설 현장 12곳을 특별감독한 결과 636건의 법 위반 사항이 적발돼 8억 4천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특히 화정동 신축 아파트 붕괴 사고와 마찬가지로 대형 붕괴사고를 부를 수 있는 안전조치 위반사항도 19건이나 지적됐다.
공동 캠페인단은 "정몽규 전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광주 화정동 참사 이후 사고의 책임을 진다며 회장직을 사퇴했으나, 여전히 지주회사 HDC를 통해 현대산업개발을 지배하고 있다"며 "부실 공사에 책임이 있는 이사들 역시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중대재해법에 대해 줄곧 반대 입장을 드러냈던 경총에도 최악의 살인기업 특별상이 주어졌다.
공동 캠페인단은 "경총은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논의가 본격화 된 2020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법의 취지와 목적을 폄훼하고 무력화시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며 "경총 등 경제계 단체들과 보수 언론, 경제지들은 시행 100일도 되지 않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무용론을 쏟아내고 안전보건 관리 체계 구축에 필요한 예산은 비용으로 인식하면서 정부의 노동안전보건 정책 방향이 처벌에서 예방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뻔뻔한 거짓말만 늘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