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기대가 너무 커서였을까. 올 초 국내 도입 당시 코로나19 유행 판도를 뒤집을 '게임 체인저'라는 평가를 받았던 미국 화이자 사(社)의 경구용 치료제
'팍스로비드'(Paxlovid)의 사용 효과가 애초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이 나온다. 방역당국이 요양병원 확진자들의 투약 여부에 따른 중증·사망 감소율을 분석한 결과,
90%에 육박했던 화이자 측 임상보다는 다소 저조한 수치가 나왔기 때문이다.
당국과 전문가들은 일반 성인에 비해 중증 위험이 훨씬 높은 고위험시설의 특성과 처방 시 제한사항 등을 고려할 때 팍스로비드의 약효는 충분히 증명된 것으로 판단했다. 단지 애시당초
이 치료제 자체에 방역상황을 좌우할 영향력이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였다는 입장이다.
요양병원 투여결과 중증 51%·사망 38%↓…임상(88%)보다 저조
8일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이달 3일 기준 팍스로비드의 재고량은 총 48만 8955명 분(分)이다.
도입 물량 72만 7100여 명분 중 23만 8177명분이 쓰였다. 처방기관 별로 보면 재택치료 환자가 19만 7824명분으로 가장 많았고 △중등증 환자가 입원하는 감염병전담병원 3만 4755명분 △보건소 2120명분 △생활치료센터 1796명분 △기타(국방부 해외파병부대 등) 1682명분이다.
올 1월 14일부터 의료현장에 투입된 팍스로비드는 60세 이상 고령층과 면역저하자, 40대 이상 기저질환자 등에게 처방되고 있다. 정부는 고위험군에 속하는 경증~중등증 환자뿐 아니라 감염 취약시설인 요양병원·요양원 등에 대한 공급을 원활케 하기 위해 처방 경로를 확대해 왔다.
특히 요양병원에서는 담당약국을 통한 원외처방 외 치료제공급거점병원·보건소에서 직접 수령한 물량으로 '원내처방'도 가능해진 상태다. 요양병원은 상대적으로 경증이 많은 오미크론 변이의 우세종화 이후에도 위중증 환자 및 사망자가 속출한 요주의 시설이다.
방대본은 지난달 28일 국내 요양병원 5곳을 대상으로 팍스로비드의 실제 효과를 분석한 결과를 처음 공개했다.
지난 2월 이후 집단감염이 발생한 해당 병원들은 전체 구성원 2241명(입소자 1161명·종사자 1080명) 중 지난달 2일까지 총 1612명(입소자 914명·종사자 698명)이 코로나19에 걸렸다.
발생률은 71.9%로 원내 '10명 중 7명' 이상(입소자 56.7%, 종사자 43.3%)이 오미크론 변이에 노출됐다.
확진자 가운데서도 치료제를 투여 받은 인원은 44.73%(721명)에 그쳤다.
처방약의 86.82%는 팍스로비드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당국은 확진된 입소자 중 팍스로비드 투약군(623명)과 미투약군(196명)을 나눠 성별·연령·예방접종력을 보정한 후 중증 위험도를 비교 분석했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 제공 그 결과, 팍스로비드를 쓰지 않은 환자는 투여환자보다 중증화율이 2.04배, 사망률은 1.61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투약군 중 중증으로 악화된 환자는 3.69%(23명)로 미투여군(7.14%·14명)에 비해 51% 낮았고, 사망률은 3.53%(22명)로 약을 처방받지 않은 환자군(5.61%·11명)보다 38% 감소했다.
통계적으로는 분명 유의미하지만, 당초 작년 말 제약사인 화이자가 감염 닷새 이내 투여 시 입원·사망 위험을 88% 줄여준다고 최종 발표했던 것과는 꽤 간극이 있는 결과다.
"고위험시설 감안하면 상당 효과 입증"…'제2의 타미플루'는 무리
당국은 화이자 측 임상시험과 분석 대상이 달랐던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화이자의 임상3상은 고령·비만·기저질환 등 위험요소를 지녔으나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확진자들을 상대로 실시된 반면 방대본이 모니터링한 요양병원 입소자들은 위험도 차원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방대본 박영준 역학조사팀장은 "화이자의 임상시험은 18세 이상 성인인 비(非)입원 코로나19 확진자 중 투약·비투약군을 무작위 배정해서 확인 변수에 차이가 좀 있다"며 "그에 반해 저희는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입소자를 대상으로 해, 보다 고위험군이고 대부분 기저질환을 보유했단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과변수에 있어서도 저희는 위중증·사망을 평가지표로 봤다. 일단 (이미) 입원한 상태라 '입원했냐, 아니냐'로 (효과를) 평가할 수 없었다"며 "연구대상을
다른 연령대·건강한 성인·타 시설 등으로 확대해도 효과가 유사하게 확인되는지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확진자의 위험도 반경을 좀 더 넓힐 경우, 결과값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망자를 정의할 때 '확진 후 28일 경과자'를 포함시켜 다른 원인에 의한 사망은 별도 구분하지 못한 점, 기저질환이나 확진 당시 상태를 보정하지 못한 것도 한계다.
전문가들은 우선 현실 세계에서 임상연구와 같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짚었다.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실제 현장에서의 효능(field effectiveness)은 '절반 정도'일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이미 예상했다"며 "(임상대로) 88% 중증·사망을 예방하면 좋겠지만
투약시기와 기저질환, 면역상태의 다양성을 감안할 때 50% 정도면 선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증의 간장애·신장애가 있는 확진자들은 처방이 불가하고, 병용금기 약물이 28개(국내 유통 품목 23개)에 달한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엄 교수는
"간 기능이나 콩팥 기능이 나쁘면 이 약을 쓸 수 없는데 연세가 많고 요양병원에 계신 분들 중 상당수가 그런 문제를 갖고 있다. 약 여섯 가지는 기본이고, 많은 분들은 열 몇 가지씩도 드신다"며 "(팍스로비드와) 상호작용이 있는 약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기존 약 복용을 중단하고 12시간 이상 지나 투약해야 하는 사람들은 투여시기가 늦어졌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즉, 가장 치명률이 높은 고위험시설에 제한된 데이터다 보니 여러 한계점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3월 중순 도달한 유행 정점의 후폭풍이 이어지던 지난달 초까지 팍스로비드 공급·처방이 순조롭지 못했던 상황도 일부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엄 교수는 "지금은 절차 상 불편한 문제는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고 언급했다.
당국과 전문가들은 지금도 팍스로비드가 가장 효과적인 대응수단 중 하나란 데엔 이견이 없다. 다만, 5일분 기준 우리 돈으로 약 63만원(미화 530달러)의
고가인 데다 처방에도 전문성이 요구되는 만큼 복제약 출시 이후 대중적 보급에 성공한 타미플루(신종플루 치료제)의 노선을 밟기는 어려워 보인다.
엄 교수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팍스로비드 도입 당시 '게임 체인저'라는 의견에 대체로 동의하지 않았다. 치료에 일정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약이고, 딱 그 정도 효과가 나는 것"이라며 "지금 상태에선 새로운 변이에 의한 유행 재증가까지 확진된 고위험군에게 항바이러스제를 최대한 빨리 투여하는 것 말고는 사망률을 낮출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세포에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후 코로나19 치료제를 농도별로 처리해 세포 내 바이러스 증식이 50% 억제되는 약물 농도(IC50)를 측정한 결과, 팍스로비드 등이 오미크론 세부계통 변이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 제공 한편, 질병청 국립보건연구원에 따르면
팍스로비드와 머크앤컴퍼니(MSD)의 먹는치료제, 라게브리오(성분명 몰누피라비르)는 오미크론 세부계통 변이에 대해서도 바이러스 증식 억제효능이 유지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른바 '스텔스 오미크론'이라 불리는 BA.2와 BA.1.1 등이다.
당국은 선행 우세종이었던 델타 변이와 비교할 때 0.7~2.4배 정도 차이가 있으나 항바이러스 기능은 유효한 것으로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