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러시아가 비우호국에 대한 원자재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국제유가가 연일 출렁이고 있다. G7은 러시아의 에너지를 단계적으로 배제하기로 약속하는 등 선제적인 대응에 나섰지만, 이 여파로 국내 물가상승 압력은 더 세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러 "안 팔아" vs EU·G7 "안 사"…경제패권 전쟁 심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합뉴스
러시아는 이르면 이번주 중 비우호국에 대한 원자재 수출금지와 관련해 구체적인 명단과 항목을 발표할 예정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3일(현지시간) 비우호국에 대해 자국의 제품과 원자재 수출을 금지하는 내용의 대통령령에 서명한 데 따른 조치로, 수출금지 대상에는 석탄·석유·천연가스 등 주요 원자재가 포함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의 수출금지 서명 다음 날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단계적인 수입 금지 방안을 논의하며 맞받아쳤다. 러시아산 원유는 6개월 내에, 석유제품은 연말 안에 수입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선제적으로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한 미국에 비하면 유럽은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커 유보적인 입장이었지만, 결국 강경 조치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여기에 G7(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도 지난 8일 러시아 석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거나 금지하기로 약속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의지를 다졌다.
유류비 인하 효과 1주 만에 도루묵…물가 고공행진
글로벌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당장 유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4월 한 때 100달러 이하로 내려가기도 했던 국제유가는 러시아와 EU, G7이 차례로 움직인 지난 3일부터 사흘간 연일 상승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유(WTI)는 배럴당 109.77달러로 마감해 지난 3월 25일 이후 처음으로 110달러 선에 근접했다. 그러나 9일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에 석유 판매 가격을 인하했다는 소식과 중국의 수출 지표가 악화 소식이 더해지며 원유 수요 둔화에 무게가 실렸다. WTI는 전날보다 6.1% 급락한 103.09달러에 장을 마쳤다.
수요 측면의 이슈로 유가 상승이 제한되고 있지만, 공급량 부족으로 인한 가격상승 요인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OPEC 역시 추가적인 증산을 하지 않고 당초 합의한대로 기존 증산 계획(43.2만b/d)을 유지하기로 한 상황이다.
5월부터 유류세 인하폭이 30%로 확대되며 잠시 하락했던 국내 휘발유 가격 역시 다시 상승하고 있다. 10일 서울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2001.40원으로 집계됐다.
유가 뿐 아니라 러시아의 원자재 수출금지 대상에 따라 석탄, 가스, 철강, 화학 등 산업계 전반의 피해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 5월 나프타 가격은 전년 동기보다 두 배 가까이 올랐고 철근과 합판 등 건설 현장 주요 원자재 가격도 1년 새 50% 상승해 부산의 일부 건설 하청업체들은 공사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무역업계의 한 관계자는 "새 정부가 전기요금에 연료비 원가도 반영하겠다고 하면서 하반기부터 기업들은 원자재 가격에 전기료 인상 등으로 채산성 악화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러시아의 수출금지 수위나 EU 내부의 반대여론 등으로 긴장국면이 다소 누그러질 가능성도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