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8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9620원으로 결정됐다. 박준식 위원장(왼쪽)과 근로자 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인사한 뒤 돌아서고 있다. 연합뉴스▶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은… |
2023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0% 오른 시급 9620원으로 결정됐습니다. 사상 처음으로 월급 환산액이 200만원을 넘었지만, 역대 정부의 집권 첫 해 기준으로는 외환위기가 있던 국민의 정부 이후 최저 기록이기도 합니다. 눈에 띄는 지점은 심의 속도입니다. 본격적인 최저임금 인상 논의의 시작점인 노사 최초 요구안을 제출한 후 보통 2주일 가량 걸리지만, 이번에는 겨우 1주일 동안 3번의 회의 만에 결정했습니다. 치솟는 물가가 임금에 반영될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는데요. 민주노총 측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각자 집단 퇴장한 파행까지 불사하며 속도를 높였던 최임위의 결론이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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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위원회가 2023년도 적용 최저임금을 시급 9620원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노사 양측 모두 반발하며 일부 위원들은 집단 퇴장까지 선택해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 5.0%, 정부 집권 첫 해 기준 '외환위기' 이후 최저 기록
연합뉴스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는 법정 심의기한인 지난 2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제8차 전원회의를 열고, 2023년도 적용 최저임금을 공익위원 단일안인 시급 9620원으로 표결 끝에 의결했다.
이를 올해 최저시급 9160원과 비교하면 5.0%(+460원) 인상된 결과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1주 소정근로 40시간을 근무한 것을 기준으로 유급 주휴를 포함해 월 209시간 근무할 때 올해보다 9만 6140원 오른 201만 580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최저임금 월 환산액이 200만 원을 넘어섰다.
다만 역대 정부의 집권 첫 해에 결정한 최저임금 인상률들과 비교하면 외환위기가 시작됐던 국민의정부의 1999년 적용 최저임금 인상률(2.7%)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임기 3년 내 최저시급 1만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16.4%)나 최저임금 제도를 사실상 처음 도입한 시절이었던 노태우 정부(1그룹 29.7%, 2그룹 23.1%)는 물론, 박근혜 정부(7.2%), 이명박 정부(6.1%), 참여정부(10.3%), 문민정부(7.96%)보다 낮은 인상률이다.
공익위원 측은 최저임금안의 근거로 국내 주요 기관의 올해 경제성장률 평균 전망치(2.7%)와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4.5%)를 더한 후, 취업자증가율 전망치(2.2%)를 빼 5.0%의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최임위는 최저임금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를 109만 3천 명~343만 7천 명으로, 영향률은6.5~16.4%로 추정했다.
그래픽=김성기 기자최초요구안 제시 1주일, 첫 수정안 제시 하루 만에 '속전속결' 결정
연합뉴스그동안 최임위에서 노사 양측은 최초요구안부터 시작해 총 4차례 요구안을 제출했다.
노동자위원들은 지난 23일 최초요구안으로 시급 1만 890원을, 전날인 28일 7차 전원회의에서 1차 수정안은 1만 340원을, 이날 회의를 시작할 때 발표한 2차 수정안으로는 1만 90원을 각각 제시했다.
사용자위원들은 최초요구안에서 현행 최저임금과 같은 동결안을, 1차 수정안은 9260원을, 2차 수정안은 9310원을 내놓았다.
이어 이날 회의를 진행하던 도중 3차수정안으로 노동자위원은 1만 80원을, 사용자위원은 9330원을 각각 제출했다.
2차수정안과 10원, 20원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상 양측이 입장을 더 좁히지 못한 요구안을 내놓자 공익위원들은 노사 양측에 내년 최저임금에 대한 '심의촉진구간'으로 시급 9410원~9860원을 제시했다.
이어 노사 양측에 구간 안에서 수정안을 제시하도록 요청했지만, 노사가 더 이상 수정안을 제출하지 않겠다고 거부하자 공익위원들이 목표치를 제시한 후 표결 끝에 통과된 것이다.
8년 만에 법정기한 지켰지만…사실상 회의 세 번 만에 결정한 최저임금
연합뉴스이처럼 최임위가 법정심의기한인 29일에 결론을 내리면서 2014년 이후 8년 만에 법정 심의기한을 준수해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문제는 정작 최임위가 최저임금 인상폭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거의 하지 못한 채 최저임금을 결정했다는 점이다.
최임위가 본격적으로 최저임금 논의를 시작하는 시점은 노사가 각자 최초 요구안을 제시하면서부터다. 최근 5년 동안 노사 양측이 최초요구안을 제출한 시점을 살펴보면 △2017년 7월 2일 △2018년 7월 5일 △2019년 7월 3일 △2020년 7월 1일 △지난해 6월 29일에 각각 노사 양측의 최초 요구안이 제시됐다.
그런데 같은 해의 최저임금을 결정한 심의의결일은 △2017년 7월 16일 △2018년 7월 14일 △2019년 7월 12일 △2020년 7월 14일 △지난해 7월 12일로 약 열흘에서 2주일 가량 간격을 두고 수 차례 회의를 가진 후 결정됐다.
반면 올해는 지난 23일 6차 전원회의에서야 노사가 최초요구안을 제시했고, 이어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바로 전날인 지난 28일 열린 7차회의에서 1차 수정안이 제출됐을 뿐이었다.
비슷한 사례로는 2019년 적용 최저임금을 정했던 2018년 최임위에서 한국노총 측 노동자위원이 1차 수정안을 제시한 직후 공익위원안으로 결정된 바 있다. 하지만 이 때는 당시 회의가 7월 14일에 열릴 정도로 논의가 길어진 끝에 사용자위원과 민주노총 측 노동자위원들이 집단 퇴장한 후 신속하게 결정됐던 사례여서 올해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심의 기간이 유독 짧았던 데 대해 공익위원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임위 박준식 위원장은 "위원장으로서 법적 논의 기간을 준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번 심의는 두 가지 중요한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고 주장했다.
공익위원 간사인 숙명여대 권순원 경영학과 교수는 "기간을 얼마나 길게 가져갔느냐가 심의의 깊이, 성실도 등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작년, 재작년에는 코로나19 때문에 현장 방문이나 토론회, 공청회 등을 원활하게 하지 못했지만, 올해는 연초부터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며 "올해도 전원회의를 예년과 마찬가지로 8차에 걸쳐서 진행을 했고, 그 과정에서 훨씬 더 심도 깊고 밀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물가 치솟는데 구닥다리 기준 들이댄 최저임금…高물가 위기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황진환 기자공익위원들의 해명에도 여전히 찜찜한 구석을 지울 수가 없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에서 최대 변수였던 물가 때문이다.
공익위원안의 근거 가운데 물가상승률 4.5%는 한국은행(4.5%), 한국개발연구원(KDI, 4.2%), 정부(4.7%)가 내놓은 전망치의 평균치다.
그런데 한은과 KDI의 전망치는 지난 5월에 나온 전망치인 반면, 정부 전망치는 지난 16일 발표돼 시차가 있다. 특히 한은의 경우 지난 21일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08년 수준(4.7%)을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 최임위에서 1차 수정안이 제출됐던 28일에도, 한국은행 이승헌 부총재는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 넘어설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으며 상황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에 5월(5.4%)보다는 높아질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날이 갈수록 물가 관련 통계 결과와 전망치가 치솟자, 최저임금 심의가 길어질수록 임금 인상 압력이 강해지면서 노동계에 유리하고, 경영계에 불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주를 이뤘다. 실제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우려대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면 내년 최저임금이 이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결정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노동계 관계자는 "사용자위원은 물론, 박준식 위원장과 공익위원들도 반드시 법정시한 안에 최저임금을 결정하자고 전례없이 압박 수위를 높였다"며 "28일 7차 회의에서도 노사 양측이 1차 수정안을 내놓자 곧 2차 수정안을 제시하도록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심의촉진구간을 설정하는 등 최종 결론을 내리도록 서두르겠다는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첫 노사 대화부터 노사 양측 집단 퇴장 결말 맞은 尹정부
지난 29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표결을 거부하고 퇴장한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를 비롯한 사용자 위원들이 승강기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최임위는 단순히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자리로서만 의미가 있지 않다. 비록 독립적인 공익위원이 한 축을 맡지만, 정부가 깔아놓은 대화 테이블에 경영계와 양대노총이 한 자리에 모이는 '유사 노사정 대화'의 성격도 갖는다.
지난 민주노총 화물연대 파업으로 노동계와 첫 일전(一戰)을 벌였던 윤석열 정부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노사가 머리를 맞대는 최임위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느냐 역시 정부의 향후 노정 관계를 가늠할 척도로 주목됐다.
이런 기대가 무색하게, 이번 최임위의 최종 국면에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민주노총 측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공익위원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회의장에서 집단 퇴장했다.
노동자위원인 민주노총 박희은 부위원장은 "공익위원이 제시한 안은 실질적으로 물가 인상률에도 못 미치고, 결국 임금이 인상되는 것이 아니라 동결을 넘어서서 실질임금이 삭감되는 수준"이라며 "예전과 달리 법적 심의 기간을 계속 준수할 것을 요구하면서 졸속적으로 심의를 진행한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분노스럽다"고 비판했다.
사용자위원 간사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류기정 전무는 "권고안 5%(인상률)은 중소영세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이 한계 상황에 도달했기 때문에 상당히 불만을 갖게 됐다"며 "그 부분 때문에 표결에는 최종적으로 참가를 안 하고 (회의장을) 나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최임위 재적위원 27명 중 퇴장한 민주노총 측 노동자위원 4명을 제외한 23명이 출석위원으로 처리됐다.
이어 퇴장한 사용자위원 9명은 기권 처리된 가운데 남은 공익위원 및 한국노총 측 노동자위원들이 표결을 진행한 끝에 찬성 12표, 반대 1표, 기권 10표로 공익위원안이 최종 확정됐다.
표결에 참여했던 노동자위원 간사인 한국노총 이동호 사무총장은 "올해 엄청난 물가 상승률로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낮은 인상률은 저임금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 것"이라면서도 "표결 불참도 고려했지만 그럴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저임금 노동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표결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