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조태임 > 한 주를 팩트체크로 정리하는 '모아모아 팩트체크'입니다. 오늘도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 뉴스톱 선정수 기자와 함께 합니다. 오늘은 어떤 팩트체크가 준비돼 있나요?
◆선정수 > 오늘의 팩트체크 주제는 '대한민국은 인신매매 2류 국가, 사실인가?' 입니다.
조태임 > 우리나라가 인신매매 2류 국가라고요? 80년대도 아니고 인신매매가 지금도 횡행하고 있다고요? 봉고차에서 괴한들이 내려서 사람 납치해서 팔아먹는 그런 것 말인가요?
◆선정수 > 네 그것도 인신매매는 맞는데요. 딱 그것만 인신매매는 아닙니다. UN 인신매매방지의정서에 따르면 '인신매매란 성착취나 강제노동 등 착취를 목적으로 폭행, 협박, 기만, 권력의 남용, 취약한 지위의 악용 등을 통해 사람을 모집, 이동, 은닉, 인계 또는 인수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쉽게 정리하면 피해자가 원치 않는 노예 상태에 빠지거나, 성매매에 이용되거나, 강제로 노동하는 등의 경우 미 국무부가 정의하는 '인신매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19일 세계 188개국의 인신매매 근절 노력을 평가한 <2022년 인신매매 보고서>를 발표했는데요. 2002년부터 줄곧 1등급으로 분류됐던 우리나라는 20년 만에 2등급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조태임 > 미국 국무부가 매년 그런 걸 발표하는군요. 일단 1등급 나라는 어디인가요?
◆선정수 > 1등급에는 미국을 비롯해 독일, 영국, 프랑스, 스웨덴, 벨기에, 캐나다, 칠레, 핀란드 등 30개국이 포함됐습니다. 아시아 국가로는 대만, 필리핀, 바레인이 꼽혔습니다.
◇조태임 > 대만, 필리핀, 바레인도 1등급인데 우리나라는 왜 2등급으로 내려갔다고요?
◆선정수 > 미 국무부는 보고서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는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완전히 충족하지 못했다"고 밝힙니다. 그 이유로는 ▲인신매매 범죄 기소 건수 감소 ▲외국인 성매매 피해자 추방 등 불이익 ▲성매매 관련 업자 조사 없음 ▲외국인 선원 대상 노동착취 방기 ▲관계 당국의 피해자 확인 지침 미활용 ▲법원의 솜방망이 판결 등을 꼽았습니다.
◇조태임 > 인신 매매 범죄 건수가 늘어서 강등됐다기보다는 인신매매를 방지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를 다하지 못해서 등급이 내려간 것같은 인상을 주네요.
◆선정수 > 그렇습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는)검사들을 위한 새로운 훈련 과정을 만들고, 선원근로감독관에게 인신매매와 관련된 교육을 실시하고, 새로운 피해자 확인 지침과 국가적인 인신매매 방지 행동 계획을 입안하는 과정을 시작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면서도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노력은 이전과 비교하면 진지하지 않았고 지속적이지도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조사는 2021년 4월부터 2022년 3월까지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를 대상으로 평가했습니다.
◇조태임 > 정리를 해보면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가 인신매매 방지를 위한 노력이 충분치 않았다' 이런 것이군요. 구체적인 사례를 좀 짚어봐야 확실히 감이 올 것 같은데요. 미국 국무부가 지적한 사례들을 알아보죠.
◆선정수 > 미 국무부는 보고서에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인신매매 사례를 자세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아동 대상 성 착취 입니다. "인신매매범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피해자를 모집하고 강제로 상업적 성행위에 가담하도록 만들고 상업적 성 구매자와 통신하도록 해 인신매매를 촉진했다. 채팅방 운영자는 아동 성매매 피해자를 포함한 한국 여성과 어린이를 모집하고 포르노 자료 제작에 참여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신체 사진을 공개하겠다고 위협한다"고 기술했습니다.
◇조태임 > 채팅방에서 만난 미성년자에게 용돈 준다고 유인하고, 신체사진을 넘겨받아 이걸 공개하겠다고 위협해서 성매매를 강요하는 행태, 뉴스에 많이 보도되는 사건 유형인데요. 이런 것도 인신매매에 포함되는군요.
메신저 텔레그램에 '박사방'을 운영하며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유포한 혐의를 받는 조주빈씨가 지난 2020년 3월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선정수 > 그렇습니다. 두번째는 외국인 여성을 상대로 취업시켜 준다고 사기쳐서 입국시키고는 성매매를 시키는 유형입니다. 보고서는 "인신매매범들은 미국을 포함한 해외 여성들을 마사지 가게, 살롱, 바, 레스토랑에서 성매매를 하게 한다. 인신매매범들은 주로 중국, 태국, 러시아,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모로코 및 아시아, 중동, 남미 출신의 남성과 여성을 강제 노동과 성매매로 몰아넣는다"라고 적었습니다.
◇조태임 > 네 이건 굉장히 고전적인 수법이죠. 외국 여성들에게 가수로 무대에서 노래나 춤을 출 수 있다고 하고, 예술흥행 비자를 발급받게 해서 입국시킨 다음에 성매매를 시키는 것들, 예전부터 지적이 많이 됐었는데 아직도 뿌리를 뽑지 못했나 보네요.
◆선정수 >답답한 일이죠. 세번째로는 장애인 강제 노동인데요. 보고서는 "인신매매범들은 신체적 또는 지적 장애가 있는 일부 한국 남성들에게 어선과 양식장, 염전, 가축 농장에서 일하도록 강요했다"고 지적합니다.
◇조태임 > 네, 사실 몇 해 전에 보도되면서 충격을 줬었잖아요. 장애인 염전 노예 사건. 이후에도 비슷한 보도들이 있었구요. 이런 것도 인신매매에 포함이 되는 거군요.
◆선정수 > 장애인에 대한 강요된 노동이죠. 대가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요. 악질입니다. 네번째는 외국인 농업노동자 인권 침해가 지적됐는데요. 보고서는 "이주 노동자, 특히 베트남,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몽골 출신의 이주 노동자들이 강제 노동에 연루된다. 이주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수수료를 부과해 때로는 수천 달러의 빚을 지게 된다. 한국 정부의 고용허가제에 고용된 약 20만 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어업, 농업, 가축, 식당 및 제조업에서 일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이 부문에 고용돼 있지만 숫자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다. 등록 이주노동자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일부는 강제 노동 조건에 직면해 있다. 농업 부문의 이주 노동자들은 때로는 부실한 주택, 선적 컨테이너 또는 열악한 기숙사에서 살도록 강요 받는다"고 지적합니다.
◇조태임 > 브로커들에게 거액을 지불하고 입국하게 되고, 그 빚을 갚기 위해서 강제로 노동을 하게 되는 악순환이네요.
◆선정수 > 2020년 12월 한파 속에서 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가 숨진 사례가 있었죠.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섯번째는 외국인 선원 착취인데요. 보고서는 "세계 최대의 원거리 어선 중 하나인 한국 어선의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강제 노동을 포함한 학대에 대한 보고가 계속되고 있다. 채용 담당자, 보트 소유자, 선장 및 직업 중개인은 종종 부채에 기반한 강압을 사용하여 이주 어부가 한국 국적의 선박 또는 소유 선박에서 강제로 노동을 착취한다"고 밝힙니다.
◇조태임 > 외국인 선원의 열악한 근로 실태는 굉장히 오래전부터 이슈가 됐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지적이 되는군요.
◆선정수 > 벌써 십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입니다. 여섯번째는 좀 심각한데요. 인신매매 사범과 단속 당국의 유착 가능성입니다. 보고서는 "인신매매범들은 일부 법 집행 당국과의 파트너십을 활용해 피해자들을 추방하거나 처벌받도록 하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다. NGO는 경찰, 성적으로 착취 당한 아이들이나 상업적 성관계를 가진 개인을 포함한 일부 정부 직원을 보고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조태임 > 참 여러가지 부끄러운 사례들이 지적됐네요. 미국 국무부가 권고를 했다면서요.
◆선정수: 네 주요 권고 조치로는 ▲경찰, 이민, 노동 및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피해자 식별 지침을 일관되게 사용 ▲성매매 종사자, 선원, 이주 노동자 등 취약 인구 중 피해자 사전 선별 ▲모든 형태의 인신매매를 범죄로 규정하고 상응하는 처벌 ▲한국 국적 어선에 대한 강제 노동 조사, 기소 및 유죄 판결을 위한 노력 증진 ▲인신매매 피해자에 대한 처벌 중단 ▲인신매매범에게 자유형(징역 또는 금고)을 포함하는 적절한 처벌을 선고 등을 꼽았습니다.
지난 6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환경운동연합에서 공익법센터 어필, 시민환경연구소 등 주최로 열린 세계 해양의 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해양 생태계 보전 및 이주어선원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조태임 > 아까도 솜방망이 처벌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이들 인신매매범에 대한 처벌 수준은 어떤가요?
◆선정수 > 법원은 대부분의 인신매매 가해자에게 1년 이하의 징역형, 벌금형, 또는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보고서는 밝힙니다.
◇조태임 > 생각보다 처벌이 약하네요.
◆선정수 > 한국 정부는 인신매매 범죄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처벌 조항이 형법, 노동법 등 여러가지 법에 흩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외국인 노동자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이를 대신 내준 것처럼, 빚을 지게 만들어 놓고 급여를 제대로 주지 않는다든지,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하도록 강제한다든지 하는 것은 인신매매에 해당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이런 행위에 대해서는 노동관계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처벌한다는 말이죠. 외국인 선원은 선원법으로 처벌을 한다든지, 그래서 관련 통계가 나올 수 없는 구조입니다.
◇조태임 > 인신매매방지법에 처벌조항을 두고 관리한다면 관련 통계도 나오고, 우리 사회에서 인신매매 범죄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다는 실태를 보여주고 그와 관련된 대책도 제대로 나올 수 있으텐데요.
◆선정수 >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들은 인신매매방지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조태임 > 우리나라 정부는 미 국무부의 이런 보고서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요?
◆선정수 > 외교부는 20일 한국의 인신매매 방지 등급이 하락한 것과 관련해 아쉬움을 표하면서 적극적으로 더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외교부는 "보고서는 전년 대비 개선 여부에 중점을 두고 평가하는 것"이라며 "이번 결과가 한국의 인신매매 방지 노력이 약해졌거나 관련 인권 상황이 악화했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는데요.
"보고서상 사실관계에 벗어난 기술이 있으면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미국 측에 해당 문제를 제기하고 관련 근거 자료를 제출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해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조태임 >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뉘앙스가 강한 것 같은데요. 시민사회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선정수 > 이주노동자 인권문제를 꾸준히 깊이 있게 다뤄 온 공익법센터 어필은 "한국 정부의 2등급 강등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인신매매 대응을 실패한 결과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 "우리는 한국 정부가 첫 단계인 피해자 식별을 위한 조치들을 마련하고, 인신매매방지법상 인신매매 가해자에 대한 처벌 조항을 추가하는 등 인신매매 보고서 상의 권고를 적극 검토하고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논평했습니다.
◇조태임> 인신매매, 다시 말하자면 강제노동 또는 성착취로 인해 고통받는 분들, 예를 들어 돈을 벌러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도 있을 테고요. 호기심에 들어갔던 온라인 채팅방에서 성착취범에 걸려 성매매를 하게 된 우리 아이들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인신매매 하면 떠올리는, '납치 해 유흥가에 또는 원양어선에 팔아넘겼다더라' 이런 이야기는 사라졌지만 분명히 인신매매 범죄와 그 피해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네요. 이런 인신매매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요?
◆선정수> 농촌에서, 어촌에서 일손이 모자라다고 아우성입니다. 조선소, 건설현장 등 육체 노동이 동반되는 작업장도 마찬가지죠. 이런 곳은 값싼 노동력을 끌어다 쓰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 수급에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청년들은 농촌, 어촌, 조선소, 건설 현장 이런데 안 갑니다. 수고에 비해 만지게 되는 돈이 적기 때문이죠. 육체노동에 대해 경시하는 사회 풍조도 아직까지 남아있구요.
가장 결정적으로는 현재의 경제 구조가 돌아가기 위해선 값싼 노동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온갖 탈법적인 요소들이 횡행하는 겁니다. 농촌에 일하러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난방이 되지 않는 컨테이너에 재우고, 어선을 타는 외국인들은 통장과 여권을 사용주가 압수하는 거죠. 도시 사람들은 싼값에 농수산물을 먹으려면 어쩔 수 없다며 눈을 감고요. 사실상 우리 모두(어쩌면 대부분)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인신매매의 공범일 수도 있습니다.
◇조태임 > 최근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든지, 지속가능한 경영 이런 것들이 많이 강조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또 그 이면에는 값싼 노동력을 이유로 이런 인신매매 범죄가 지속되고 있네요. 바로잡을 건 바로잡고, 지불할 것은 지불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선정수 > 최근에 신축 아파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서 천정을 뜯어봤더니 인분이 나왔더라 이런 뉴스가 있었는데요. 댓글에 비슷한 경험담을 전하면서 건설 노동자의 소행이라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저도 실질적으로 그게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보고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 건설 노동자 분들이 자기들 하는 일이 보람 있게 느낄 만큼 보수를 받고 사회적으로 고마운 분들이야 라는 시선을 받았다면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하는 뭐 그런 생각입니다. 몇 해 전에 남해안 지역 굴 양식장에서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돼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어요. 노로바이러스는 아시겠지만 감염자의 분변을 통해서 전파되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해결했는지 아십니까?
◇조태임> 어떻게 해결했는데요?
◆ 선정수> 화장실 설치를 통해 간단히 해결됐습니다. 굴 양식장 종사자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화장실을 설치한 겁니다. 물론 분변이 수거가능하게 설계됐죠. 그랬더니 노로바이러스 검출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양식장에서 일하는 분들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거든요. 그전까지는 그냥 바다에다가 용변을 보도록 했던 거죠.
화장실 설치하는 비용이 아까웠을 수도 있고, 설마 했을 수도 있고, 그런데 그동안 외국인 노동자들은 기분이 어땠을까요? 여러분들이 그런 상황이었다면 인간으로 대우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굴양식장 사례처럼 이제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지킬 것은 지키자. 이윤 추구도 좋지만 그 이전에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로 시선을 좀 넓혀보자' 이런 움직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조태임 > 미국 국무부가 정한 인신매매 2류 국가 대한민국, 팩트체크 해봤습니다.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주제네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방법, 내가 먹는 채소를 길러낸 그 사람. 생선을 잡아올린 그 사람들은 과연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일을 했을까요? 지금까지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 뉴스톱 선정수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