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부처 업무보고를 한 뒤 업무보고 내용 등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중요한 임무를 담당하는 공직자는 언론으로부터 불편한 질문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6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마친 뒤 브리핑을 진행하면서 한 말이다. 야당에서 검찰의 티타임이 부활한 것을 두고 '수사를 통해 국가를 통치하겠다는 검언유착'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과거 '티타임'으로 불렸던 검찰의 비공개 정례 브리핑은 일반적으로 차장검사가 기자들과 갖는 일종의 '백브리핑'으로, 중요한 수사 상황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하며 구체적인 질문에는 보통 답하지 않는다. 사건 이해를 돕고 과열 취재 경쟁과 오보 양산을 방지하기 위해 운영됐다. 그러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을 계기로 피의사실 공표죄 문제가 공론화되며 중단됐다가 최근 재개됐다.
한 장관은 "알 권리와 인권보장을 조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공개된 장소에서 정해진 방식으로 책임 있는 사람에게 공평하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서로 간에 대화하는 것이 조화로운 길"이라고 티타임 부활 배경을 적극 설명했다.
이어 "지난 정부에 있던 수사에서는 흘리기가 없었나. 티타임이 없었나"라고 강하게 반문하며 "즉답을 하든 답을 안하든 서로 간에 소통이 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은 공식화하고 투명한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불편한 질문을 받아야 한다"는 한 장관의 말에 한 기자는 "불편한 질문 두 가지를 드리겠다"고 말했고, 한 장관은 "그러시죠"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계 부정과 부당 합병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류영주 기자기자는 한 장관이 과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수사했던 사람으로서 현재 이 부회장 사면이 거론되는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대우조선해양 관련 정부가 노조 측의 불법만 문제 삼고 사측의 불법에는 미진하게 대응하는 것은 아닌지를 물었다.
한 장관은 이 부회장 사면 가능성에 대한 입장에 "그건(수사) 검사로서 일했던 것이고, 법무부 장관으로서 대통령의 고유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보좌하는 일은 조금 다른 문제"라며 "사면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대우조선해양 관련해서는 노사의 어떤 쟁의행위에 관해 철저하게 법과 원칙을 지킬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며 "노든 사든 마찬가지다. 어느 한쪽 편들기를 했다고 보였다면 오해인 것 같다"고 일축했다.
한 장관은 브리핑 내내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기자들이 질문에 앞서 소속과 이름을 밝힐 때마다 한 장관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며 질문을 받았다.
또 브리핑 모두 발언 이후 카메라 촬영을 중단한 채로 기자와의 질의응답을 하는 이른바 '백브리핑' 시간에도 "그냥 하시죠. 저는 괜찮다"며 이례적으로 브리핑 끝까지 카메라 촬영에 협조하기도 했다.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도 선명하면서도 차분한 어조를 유지했다. 한 장관은 공위공직자범죄수사처 우선 수사권 문제에 "(공수처를) 1년 정도 운영해 온 과정에서 오히려 사건의 (수사) 지연이라든지 감정싸움 등을 불러일으켜 국가 전체의 범죄 대응 역량을 약화시킨 면이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 "법무부는 행정부를 대표해 그런 식의 문제 인식을 가지고 국회 입법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밖에 검찰총장 인선과 인사검증, 윤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법무행정' 지시, 촉법소년 연령 하향 등 광범위한 현안 질문에도 막힘 없이 답변을 내놓았다. 기자들의 질문은 사전에 조율되지 않기 때문에 간혹 질문에 대한 생각을 고민하며 뜸을 들이는 경우도 있는데, 한 장관은 모든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한 것이다.
한 장관은 검찰총장 후보 인선과 관련해서 "공정과 상식으로 검찰을 이끄실 분이 검찰총장이 되시길 희망한다"고 밝혔고, 윤석열 정부의 약점으로 꼽히는 인사검증 문제에 대해서는 "제 업무는 객관적 1차 검증을 해서 판단 없이 (자료를) 제공하는 것인데, 그 업무에 좀 더 충실히 잘해볼 다짐을 하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또 윤 대통령이 "법무행정의 최우선은 경제 살리기"라고 당부한 부분에 대해서는 "법을 제정하다보면 형벌 규정이 과도하게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법이 선명해지는 효과 때문"이라며 "이런 경우가 쌓이게 되면 경제활동 주체가 위축되기 때문에 개선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관심과 논란이 뜨거운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우려가 있는 것을 안다. (중략) 조금 더 교화의 가능성이 있고 사회가 그 소년들을 일찍 포기하면 안 된다는 그런 철학이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 식의 국가가 가진 철학을 버리겠다는 뜻은 전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인 지금의 처분은 유지되는 것이고, '강'자가 들어가는, 누가 보더라도 흉포하고 처벌받아야 되는 범죄에 한해 처벌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한다"면서 "법무부 내 TF를 운영하고 있다. 결과가 나오면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리핑을 마친 후 한 장관이 브리핑룸을 나가자, 기자들도 일제히 한 장관의 뒤를 따랐다. 기자들은 장관 등 고위급 인사가 이동할 때 종종 뒤를 쫓아 마지막까지 질문을 하곤 한다.
그러나 공식적인 브리핑룸을 떠난 한 장관은 이후의 질문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