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당진항 내항 동부두 전경. 박철웅 PD
정부가 10여년 전 민간개발사업으로 추진한 '평택·당진항 동부두 배후부지 분양사업'이 일부 기업인과 그 가족 등의 부동산 투기 수단으로 악용돼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땅 투기의 단초를 제공한 '분양 지분쪼개기 거래'를 당시 분양사업대행사였던 현대산업개발(이하 HDC)이 계획했다는 주장이 담긴 녹취록이 나와 파장이 예상된다.
"모두 다 현대산업개발이 하라는 대로 했다"
5일 CBS노컷뉴스가 단독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HDC는 2006년 평택·당진항 내항 동부두 분양사업을 대행하기 전 분양부지 가운데 A구역을 낙찰받은 영진공사와 지분쪼개기 거래를 안내했다.
영진공사가 해당 부지를 낙찰받으면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 김선홍 인테스 대표, 신동화 한동건설 이사 등과 영진공사가 지분을 나눠 양도·양수한 뒤 부동산 등기를 하도록 유도했다는 의미다.
이 녹취록은 평택·당진항 동부두 배후부지를 부동산 등기한 이후 영진공사 내부 관계자 두 명이 나눈 대화 내용을 담은 것이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은 영진공사에서 해당 분양사업을 담당했던 A씨다.
녹취록에서 A씨는 "HDC가 하는 사업에 우리(영진공사)가 이름을 빌렸고 대신 혜택을 입었다. HDC는 이해당사자여서 (분양에) 참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며 "우리는 항만업체고 배후단지를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분양을) 받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쪼개기 거래를) 만드는 과정에서 용역과 내용 모두 HDC가 직접 했다. 그렇게 용역을 준 뒤 나중에 (땅을) 나누는 식으로 내용을 짰다. 치밀하게 검토했던 것으로 안다"며 "우리(영진공사)는 당시 이런 일을 할 능력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만약에 다른 응찰자가 들어왔어도 우리 만큼 정보를 몰랐기 때문에 우리가 분양을 받고 정일선도 (땅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며 이 계획에 HDC와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이 함께 관여했다고 암시하는 말도 남겼다.
녹취록대로 이뤄진 '쪼개기' 거래…분양계약 뒤 개인에게 양도
실제 A구역은 2006년 영진공사가 낙찰 받은 이후 영진공사·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 등 5곳이 지분을 나눠가졌다. 당시 지분쪼개기 비밀계약에 참여하고 실제 땅을 나눠 받은 B씨도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분 쪼개기 거래에) 내가 관여한 건 없고 영진공사와 HDC, 정일선 사장이 진행한 일이었다"며 "내가 어떤 사업에 관련된 건지 HDC가 하라는 대로 해서 당시 상황에 대한 자세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먼저 (지분쪼개기 거래를) 하겠다고 해서 한 게 아니라 분양대행사인 HDC에서 어떤 얘기를 했기 때문에 한 것"이라며 "우리 마음대로 한다고 그 일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땅을 분양받은 영진공사와 쪼개기 거래에 참여한 B씨 모두 지분 쪼개기 거래의 배후로 HDC를 지목한 셈이다.
당시 이들의 쪼개기 거래는 HDC가 대행한 항만 배후부지 분양사업 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한다. 이 사업의 '매각 입찰안내서'에는 입찰자격이 '개별법인 또는 2개 이상 법인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으로 명시돼 있다. 특히 항만·물류로 국한된 부지용도에 적합한 업종의 기업이어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었다.
그러나 지침과 달리 비밀계약에 따라 배후부지의 땅이 법인이 아닌 정 사장 등 개인들 손에 넘어가면서 공공성이 강한 항만 배후부지 관련 사업이 시세차익을 노린 부동산 투기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더욱이 해당 배후부지는 A구역뿐만 아니라 B구역과 C구역에서도 지분쪼개기 거래가 이뤄졌다. 특히 C구역은 최초 SKC㈜ 등 기업 3곳이 분양받았지만 토지 등기 때는 박장석 전 SKC 상근고문과 해수부 공무원 출신 인사의 부인, 평택당진항 동부두 운영사 중 하나인 ㈜동방 임원들의 부인이 이름을 올렸다.
실시협약부터 분양까지…평택·당진항 개발사업 총괄한 HDC
실제 HDC는 적어도 평택·당진항 내항 동부두에서 만큼은 '영향력'이 막강했다.
애초 평택·당진항 내항 동부두 건설사업은 2003년경 HDC가 해양수산부에 사업을 건의하면서 물꼬를 텄다. 이후 2005년 HDC와 해양수산부는 해당 건설사업의 방향을 정하는 '실시협약'을 맺었다. 이 사업은 HDC를 비롯해 국민연금관리공단, 산업은행, 동방 등 21개 민간기관·업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했다. 그러나 HDC가 사업과 관련한 대부분의 사항을 결정했다.
이후 2006~2010년 동부두 건설사업도 HDC가 주도적으로 시행했고, 부두 입점업체를 정하는 분양사업도 대행사 자격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평택·당진항 동부두 건설의 시작과 끝을 모두 HDC가 한 셈이다.
2005년 6월 8일 해양수산부와 현대산업개발이 맺은 '평택당진항 내항 동부두 민간투자사업 실시협약'조력자들에게 '보은성 현물'로 땅 분할 지급 추정
HDC가 이같은 분양부지의 쪼개기 거래를 계획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적어도 A구역에서는 항만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도움을 준 업체에게 '보은성 현물'을 지급하는 것에 목적을 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A구역을 낙찰받은 영진공사가 2006년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부 보고서를 보면 영진공사는 평택·당진항 배후부지 매매계약과 인근 시멘트부두 공사 도급계약을 함께 논의했다.
영진공사가 참여한 평택·당진항 시멘트부두 공사는 동부두 배후부지 분양사업 추진 시기와 비슷한 2006년 10월 실시계획승인을 받은 사업이다. 이 보고서는 시멘트부두 공사에 영진공사와 건설사, 인테스㈜가 SPC를 구성할 경우 수익률을 계산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공사는 HDC와 한동건설이 건설사로 참여했다. 이 사업 역시 HDC 혼자서는 승인받기 어려운 사업이었지만, 항만업체인 영진공사와 한동건설이 조력자로 참여하면서 수월하게 사업을 따낸 것으로 분석된다.
이 문서는 동부두 배후부지 매매계약과 관련한 부분에서 "매매대금 완납 전 컨소시엄 구성하여 컨소시엄 구성원별로 등기(소유권 이전)"이라고 적었다. 시멘트부두 공사에 참여했던 영진공사, 한동건설, 인테스는 이후 동부두 배후부지 A구역에서 지분쪼개기 거래를 하기로 비밀계약을 맺었다. 인테스는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이 주주로 있는 회사로 알려졌다.
영진공사가 내부 보고한 '시멘트부두 공사 도급계약 및 동부두 배후부지 매매계약 보고서' 일부
다만 이 문서에는 직접적으로 시멘트부두 공사와 동부두 배후부지 분양사업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별도 언급은 없었다.
이같은 의혹에 대해 HDC 측은 "전혀 몰랐던 일이고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HDC 관계자는 "동부두 배후부지 분양사업은 공개경쟁입찰 조건으로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진행된 사업이고 공고 조건에 맞춰 계약까지 이뤄졌다"며 "우리가 무슨 계획을 세웠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녹취록 발췌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