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산: 용의 출현' 김한민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일러 주의 "그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점에 놀랐다. 캡틴 아메리카와 스파이더맨과 다를 것이 없다" _스탠 리 마블코믹스 명예회장의 그래픽노블 '이순신' 추천사 중
스탠 리가 이야기했듯이 이순신 장군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위해 싸운 충신이자 백성 가까이에서 그들이 사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싸웠던 성웅이라는 두 가지 면모를 갖춘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명량'을 시작으로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까지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김한민 감독이 그리고 싶었던 진짜 이순신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 있다.
김 감독은 지금 시대에 필요한 정신을 담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가치가 다시 한번 재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연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시작은 어디에 있었는지, 그가 왜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그토록 스크린에 구현하고자 했는지에 관해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봤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순신 장군의 시대정신이 김한민을 지금까지 이끌었다
▷ 2014년 '명량'을 시작으로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까지 10년 가까이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어떤 점에 끌렸던 건지 궁금하다.
운명적인 거다. 우리나라 역사는 물론 지금 시점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갖는 절묘한 포지션이 있는 거 같다. 강감찬, 을지문덕 장군과는 다른 포지션에 있다. 좀 더 백성에 닿아 있다. 임금과 조정에 올곧게 충직한 장수라는 이미지에 더해 백성과 임금 중간에서 지금 시대에 필요한 정신을 담고 있는 위치에 있지 않나. 그런 지점에서 이순신 장군이 우리 시대에서 좀 더 많이 활약하고 계속 재평가받으면 좋겠다. ▷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이순신 3부작'을 하며 후회한 적은 없었나? 정말 아이러니하게 그럴 때마다 끼고 있는 게 '난중일기'다.(웃음) 희한하게 '난중일기'를 보면 마음에 위안이 된다. '이 양반은 참 어려운 시기, 답답한 시기를 겪었을 텐데' '힘들게 사셨네'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위안을 얻는 게 컸다. '난중일기'를 남의 일기장 훔쳐보듯이 수시로 읽었다. 잠자기 전에 읽어도 불면증에 괜찮다.(웃음) '이순신 3부작'이 사는 게 팍팍한 분들, 현재를 사는 관객들에게 진짜 위로와 용기를 주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최민식, 박해일, 김윤석 등 '명량'부터 '한산' 그리고 '노량'까지 이순신 장군을 연기하는 배우가 모두 다르다. 이번 '한산'의 이순신으로 박해일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3부작 속 이순신의 모든 모습이 총합돼서 '저런 매력을 갖고 있는 분이었구나' '저런 분이 이순신이었구나' 생각해주면 좋겠다. 한산해전에서는 '지장'(智將, 지혜로운 장수), 명량에서는 '용장'(勇將, 용렬한 장수), 노량에서는 '현장'(賢將, 현명한 장수)으로서의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면 된다.
이순신 장군을 보면 정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유동성이 아주 대단하다. 굉장히 과묵하고, 판단이나 안목에서 밸런스가 있는 분이다.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걸 보면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이런 리더십을 갖고 있으면 부하들이 신뢰했겠구나 느끼게 된다. 그런 지점에서 한산해전은 전쟁의 전황을 바꿔야 하는 지점인데, 이 상황에서 이순신은 어느 정도 고민했을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전라 우수사 이억기(공명)가 묻는다. "공성도 수성도 아니면 도대체 뭐요?"라고 했을 때 이순신은 즉답하지 않지만 이후 절묘한 수를 쓰는 게 바다 위의 성을 펼치는 것이다. 공간적으로 봤을 때 직접적인 수성도 아니고 직접적인 공성도 아닌 지점에서 절묘한 해답을 찾는다. 그게 아이러니하게 적장이 이용했던 걸 재이용한 부분이다.
그런 지점에서 봤을 때 지략적인 이순신이어야 하고,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가야 하는 이순신이어야 한다. 이처럼 섬세하고 지략적인 이순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박해일이 필요했다. 거기에 굉장히 잘 어울렸다.영화 '한산: 용의 출현' 김한민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순신 3부작 너머를 생각하다
▷ '이순신 3부작' 말고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지도 궁금하다.
'행주대첩'이다. 그 전투가 또 매우 재밌는 전투이기도 하고 정말 괴물 같은 조선 장수 권율의 활약이 제대로 보이는 전투다. 그 전투가 매우 재밌는 게 일본군이 차례로 들어오며 격파당해서 물러날 수밖에 없는 전투였다. 보여 주기식으로 왜군들이 보복 공격을 통해 제대로 선례를 남기려고 행주산성을 공격했다가 오히려 패퇴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매우 재밌는 기록이 이순신 장군 휘하에 있던 배흥립이 행주산성에 있었다. 이순신과 육군이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됐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 역사적 기록을 어떤 역사가도 건드리지 않지만 나에겐 잘 보였다. 하물며 한산의 이순신 수군과 웅치·이치의 의병들과 같이 협력했던 관군들이 얼마나 긴밀하게 서로의 전투를 바라고 있었을지가 굉장히 선명하게 보였다.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올해가 한산해전이 일어난 지 430년이 되는 해다. 그런 지점에서 이번 '한산: 용의 출현'과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더욱더 특별한 지점에 놓인 거 같다. 역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이순신 장군은 가장 오염되지 않은 실존했던 인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시대에서 매우 중요한 통합, 화합의 아이콘으로서 중요한 지점에 계신 분이라고 본다. 그게 왜 이순신에 집중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또 다른 대답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를 구한 성웅의 이미지만으로도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 기능할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당시의 이순신이 갖고 있었던 정신이다. 당시는 유교 사회였고, 이번 영화에서도 중요하게 이야기하지만 '의'(義)와 '불의'(不義)의 전쟁이라는 명제를 내세운다. 우리는 흔히 임진왜란을 조선과 일본이 싸운 7년 전쟁이라 생각하지만, 당시 조선시대 백성을 비롯한 사람들은 나라와 나라의 싸움이라 인식하지 않고 의와 불의의 싸움으로 인식했다는 게 중요하다.
'의'를 실천하는 매우 핵심적인 인물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항왜(降倭) 장수 준사(김성규)가 나한텐 중요하게 작동한다. 준사가 자기 입으로 이야기하듯이 자신의 주군은 자신들을 방패막이로 삼기에 바빴지만, 당신(이순신)은 당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앞서 나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자신을 받아달라고 한다. 이후 준사는 조선 편에서 싸우는 중요한 장수가 된다. '노량'까지 준사의 역할은 확장될 거다.
그럼으로써 이 전쟁이 갖는 성격이 정확히 규정된다. '의'의 문제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DNA에 각인되어 있다. 격변의 근현대사를 거쳐 민주화를 이루기까지 그 중심에는 '의'의 코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과 그의 해전을 지금 시대 우리가 다시 각인하고 좀 더 글로벌적인 지점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코드가 '의'다. 그리고 '이순신'이다. 그 이순신을 새롭게 재평가하고 세계사적인 인물로 등장시켜야 하지 않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