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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폭력과 열망의 80년대를 복기하는 첩보 액션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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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 리뷰]폭력과 열망의 80년대를 복기하는 첩보 액션 '헌트'

    영화 '헌트'(감독 이정재)

    영화 '헌트'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영화 '헌트'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스포일러 주의
     
    1980년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이를 짓누르려는 폭력적인 독재 정권을 배경으로 하는 '헌트'는 익숙한 세대에게는 익숙하고 낯선 세대에게는 생소한, 멀지 않은 현대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또한 국내외,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무더운 여름에 잘 어울리는 첩보 액션을 선사한다. 이와 함께 박평호와 김정도의 행보를 되짚으며 폭력의 시대를 돌아보게 만든다.
     
    망명을 신청한 북한 고위 관리를 통해 정보를 입수한 안기부 해외팀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김정도(정우성)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 남파 간첩 '동림' 색출 작전을 시작한다. 스파이를 통해 일급 기밀 사항들이 유출되어 위기를 맞게 되자 날 선 대립과 경쟁 속, 해외팀과 국내팀은 상대를 용의선상에 올려두고 조사에 박차를 가한다.
     
    먼저 찾아내지 못하면 자신이 스파이로 지목이 될 위기의 상황 속 서로를 향해 맹렬한 추적을 펼치던 박평호와 김정도는 감춰진 실체에 다가서게 되고, 마침내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게 된다.
     
    영화 '헌트'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영화 '헌트'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영화 '헌트'는 제75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인 배우가 된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그리고 '태양은 없다'(1999) 이후 23년 만에 이정재와 정우성이 한 스크린에서 조우한 작품으로 일찌감치 국내외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액션'이라는 장르에 걸맞게 영화는 쉴 틈 없이 총격과 폭발 등 다양한 액션 신이 등장한다. 귓가를 울리는 생생한 총기 소리 등 사운드 구현도 잘 되어 있어 여러 감각을 통해 액션을 즐길 수 있다. 198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이 가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세트와 소품은 물론 엄혹한 시대를 둘러싸고 있던 공기를 고스란히 재현해 낸 점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헌트'는 우리가 알았거나, 들어봤거나 혹은 몰랐던 현대사를 관통한 사건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거나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영화에 무게감과 긴장감, 사실성을 부여한다. 전두환의 '광주 학살'이 벌어진 5.18 광주민주화운동,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대규모 친인척 비리 장영자 사건, 북한 대위 이웅평의 미그기 귀순 사건 등 다양한 역사적 사실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가깝지만 잘 몰랐던 1980년대를 궁금해하게 만든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1980년대는 폭력과 비리, 혼돈으로 가득한 현대사의 과도기적 시기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열망과 구시대 속에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욕망이 치열하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때다. 이러한 시기, 의심에 의심을 거듭하는 두 존재가 박평호과 김정도다. 조직 내 스파이 '동림'으로 지목된 채 의심하고, 어느새 서로를 '동림'으로 만들려고 한다.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간첩'으로 모는 것 역시 독재가 힘을 유지하는 방식이자 역사적 사실 중 하나다.
     
    영화 '헌트'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영화 '헌트'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둘은 조직 내에 있으면서도 조직 내에서 솎아내야 하는 존재로 의심받으며 경계선에 선 인물이다. 또한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는 두 존재라는 점에서 박평호가 김정도는 경계선에 놓인 존재다. 동시에 박평호와 김정도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중첩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동림 색출과 서로를 동림으로 만들려는 목표, 그리고 영화의 반전 요소이자 영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중요한 지점에 놓인 목표다.
     
    기본적으로 '헌트'는 첩보 액션 장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의심'이라는 코드가 녹아있다. 김정도가 박평호에게 "난 네가 '반드시' 동림이라고 생각해"라는 대사 속 '반드시'라는 부사처럼 단어, 말, 행동, 표정 등에서 미묘하게 무언가 어긋나고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는 요소들이 곳곳에 있다. 이러한 것들은 결말에 가서야 선명해진다. 완결에 이르러 다시 영화를 거슬러 올라가며 이러한 요소들을 되짚어가다 보면 영화가 처음과는 다가오게 된다.
     
    지근거리에서 독재와 폭력을 목격하고 그 민낯을 경험한 박평호와 김정도가 이루고자 하는 하나의 목표 끝에 있는 진짜 그들이 원하는 바는 '평화'다. 김정도는 전두환의 지시 하에 벌어진 광주 학살이라는 참극의 현장에서 무고한 생명이 스러지는 걸 보며 민주주의라는 평화를 가져오고자 한다. 박평호가 김정도의 목표 달성을 막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박평호의 목적이 단순히 독재자의 제거가 아니라 '평화'에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헌트'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영화 '헌트'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박평호와 김정도의 선택과 서로를 향한 의심은 폭력을 저지하기 위한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고 이는 엄혹한 시대를 관통했던 모두의 비극이기도 하다. 박평호와 김정도는 그 비극에서도 폭력에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인물이었던 만큼 그들의 마지막 역시 폭력적인 방식으로 정리된다. 여전히 어디선가 폭력이 일어나고 있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항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무엇이 우리를 의심하게 만들고, 저항하게 만들고, 또 비극을 만드는지 과거 그리고 박평호와 김정도라는 두 인물을 통해 다시금 되짚어 보게 된다.
     
    박평호와 김정도가 서로 의심하고 서로를 동림으로 몰아가는 과정은 비슷한 내용의 반복으로 보이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기에 박평호와 김정도가 어떠한 이유에서 폭력을 멈추고자 하는지가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은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첩보 액션 장르라고 하지만 사실 의심과 의심을 오가는 '첩보'보다는 몰아치는 '액션'에 무게 중심이 쏠렸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이정재는 감독 데뷔작으로서 만만치 않은 주제와 내용을 갖고 목표 지점까지 열심히 달려갔다. 여기에 베테랑 배우답게 연기도 잃지 않고 해냈다. 이정재, 정우성뿐 아니라 영화 속 황정민, 조우진 등 특별출연한 배우들과 그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기에 어느 장면에서 어떤 배우가 어떤 모습으로 나오는지 눈여겨보는 것 역시 '헌트'를 즐기는 방법이다.
     
    125분 상영, 8월 10일 개봉, 15세 관람가.

    영화 '헌트' 공식 포스터.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영화 '헌트' 공식 포스터.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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