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MBC본사 로비에서 MBC를 항의 방문한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윤석열 대통령 부부 관련 논란을 보도한 MBC를 향해 여당의 집중포화가 한창이다. 급기야 '공영방송' 폐지까지 거론되자 보수 정권의 언론 길들이기가 반복되는 게 아닌지 우려를 낳고 있다.
MBC를 향한 여당 국민의힘의 공세는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보도부터 시작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21일(현지 시간) 뉴욕에서 진행된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48초 간 환담을 가지고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풀(Pool) 기자단 카메라에 잡힌 영상을 근거로 국내외 언론은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최초 보도한 MBC에 '조작 방송' '정언유착'이라는 여당 의원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윤 대통령도 정확한 해명이나 사과 없이 "사실과 다른 보도로서, 동맹을 훼손한다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이 부분에 대한 진상 등을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힘을 실었다.
대통령실과 여당 측은 처음엔 욕설이 우리 국회를 향한 것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었다고 주장을 번복하기도 했다. 결국 '말 바꾸기'만 이어졌을 뿐, 논란의 주체 누구도 사태를 책임지고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에 MBC는 세 차례에 걸쳐 입장을 내고 "어떠한 해석이나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발언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다. '좌표 찍기'를 통한 부당한 언론 탄압이고,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압박"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풀(Pool) 기자단이었던 MBC 기자는 촬영 영상을 전체 방송사에 공유했을 뿐, 이미 보도 전 SNS 상에 문제 장면이 확산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언론현업단체 역시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행태를 '언론 탄압'으로 규정하고 정면 비판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현재 MBC를 정보통신망법 위반,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MBC 'PD수첩' 공식 홈페이지 캡처이렇게 타오른 불씨는 'PD수첩'에 옮겨 붙었다.
MBC 'PD수첩'은 지난 11일 방송된 '논문저자 김건희' 편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논문 표절 논란을 보도했다.
'PD수첩'에 따르면 제작진은 김건희 여사 논문 표절 건을 두고 정반대 결론을 낸 국민대 측과 국민검증단 측의 검증 결과를 모두 입수해, 석사 학위 논문 포함 총 5개 논문 표절 여부에 관해 다각도로 확인을 거쳤고, 비문·오탈자 논란, 박사학위 논문 인준서 필적 등도 전문가 검증을 받았다.
문제가 된 것은 방송 내용보다는 기술적인 부분이었다. 김건희 여사의 이미지가 송출된 일부 장면에서 '재연' 표기가 없었다는 것. MBC는 이를 즉각 사과하고 영상을 수정해 '재연' 표기를 넣었다.
빠른 대처가 이뤄졌지만 국민의힘 측은 연일 MBC 때리기에 나섰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SNS에 'PD수첩' 폐지를 요구하는가 하면,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MBC는 공영방송 간판을 내려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설상가상, 국회 과방위(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MBC가 '(더불어)민주당의 프로파간다를 위한 찌라시 보급부대'라고 비난했고, 방송문화진흥회 국정감사에서는 '동종교배' '좌파 유튜버' 등에 MBC를 비유했다.
이처럼 격화된 비난에 MBC는 14일 입장을 내고 "귀를 의심했을 만큼 모욕적인 발언이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막말로 MBC와 MBC의 보도를 폄훼했다"며 "대통령의 뉴욕 순방 발언 보도 이후 유독 MBC에 대해서만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는 집권 여당의 부당한 정치 공세에 다시 한번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 언론과 국민의 알권리에 대한 모욕을 중단해달라"고 촉구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MBC 편파·조작방송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MBC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무경 의원, 박 위원장, 윤두현·박대수 의원. 윤창원 기자일련의 사태를 지켜본 언론·미디어 전문가들과 관계 단체는 이전 보수 정권 시절의 '악몽'이 반복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심미선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날 CBS노컷뉴스에 "우리 사회의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보도를 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그것에 재갈을 물리는 건 언론 탄압"이라며 "국가를 운영하고 미디어 정책을 수립하는 정치권에서 너무 고민 없이 정파적으로만 말을 한다. 여당은 10년 전과 동일한 방식을 답습해 협박성 낙인을 찍을 것이 아니라 언론이 잘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짚었다.
특히 이번 'PD수첩'의 '재연' 표기 논란에 대해서는 "문제가 될 수는 있지만 보통 '재연' 자막은 방송 내용상 명확하지 않을 때 표시한다. 시청자가 인지할 수 있는 경우엔 '자료화면' 자막만 나가기도 한다. 나 역시 시청을 했지만 흐름상 '재연'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방송사가 문을 닫아야 할만큼 심각한 사안도 아니고 '광우병 파동'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침소봉대'(針小棒大·작은 일을 크게 부풀려 말하는 것)한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보도 내용에 대해 반박, 해명하는 게 아니라 기술적인 부분을 문제 삼고 있는 건데 그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다룰 사안"이라며 "국민 상대로 (방송 내용) 해명은 하지 않고, 정부 여당이 이를 공격 소재로 삼아 방송사 전체를 흠집내고 공영방송 정체성 문제까지 거론하는 건 부적절하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공약은 사라지고 오히려 언론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새누리당부터 국민의힘까지, 보수 정당이 집권 여당이 될 때마다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김 정책위원장은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 기본 역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언론관도 있겠지만 지지율 하락 등 정치적 위기와 실정이 발생하면 이를 언론 탓으로 돌려 빠져나가는 무책임한 특유의 대응 방식"이라며 "비합리적인 주장이 지지율을 만회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실정이 부각되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고소, 고발하면 다른 언론사들에 본보기로 위협 효과를 줄 수 있다. 결국 언론사와 기자가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MBC 같은 경우도 사장 교체 분위기를 조성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이렇게 계속 압박을 하면서 길들이기를 하는 건데 지금 정부는 과거보다 노골적으로, 우격다짐으로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무시하고 있다.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