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2022 전국 노동자대회'에 참가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윤창원 기자공공부문 등을 중심으로 민주노총이 이 달 말부터 대(對)정부 파업의 기치를 올린다. 최근 노동계 이슈가 주요 정치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노동계가 본격적인 정부 압박에 나선 것이다.
공공부문부터 화물연대·학비노조까지…잇따르는 파업의 불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민주노총에서 '대정부 공동파업-총력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15일 대정부 공동파업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3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대정부 공동 파업에 돌입한다고 선포했다.
노조는 △안전인력 충원과 작업환경 개선 △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위한 법 제·개정 및 규제 강화 △공공부문 민영화 중단 △공공부문 구조조정 중단·안전 인력 충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파업에는 의료연대본부, 서울교통공사노조, 철도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인천공항지역본부, 건보고객센터지부, 화물연대본부 등 14개 산하 조직이 대거 참여한다.
특히 30일에는 서울교통공사노조가 사측의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안에 반발하며 6년 만의 양대노총 합동 총파업을, 다음 달에는 정부가 '은밀한 민영화'를 추진한다고 반발하던 가운데 오봉역 사고를 계기로 정부의 인력 감축 기조도 함께 문제 삼는 철도노조가 파업을 준비 중이다.
대규모 파업을 예고한 노조는 공공운수노조만이 아니다. 24일에는 화물연대가, 25일에는 학교 비정규직 노조(학비노조)의 급식·돌봄 노동자들이 파업의 줄기를 이어간다.
화물연대의 경우 지난 6월 총파업을 불렀던 안전운임제 일몰기한을 폐지하라고 주장한다. '안전운임제'는 특수고용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고)로 분류되는 화물차 운전기사들의 '최저임금'과 같은 제도다.
2018년 국토교통부가 정한 안전운임보다 낮은 운임을 지급하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안전운임제가 도입됐지만, 화주와 운송사업자들의 반발에 2020년~2022년 3년만 시행하도록 제한이 걸렸다.
일몰기한을 앞두고 지난 6월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벌인 끝에 정부가 안전운임제를 연장 적용하고 이를 지속·확대하기 위한 논의를 이어가기로 약속했다. 또 야당을 중심으로 일몰기한을 폐지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관련 논의가 별다른 진전이 없는 가운데,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여전히 안전운임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화물연대가 다시 파업 카드를 집어든 것이다.
25일 하루 파업을 진행할 학비노조는 기본급이 최저임금보다도 낮고 지역별·직종별로 체계가 다른 점, 이 때문에 임금이 정규직의 70%에 불과한데다 복리후생 수당을 지급하는 기준에도 차별이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무교섭에서 정부가 임금·수당 인상안을 제시했지만, 또 다른 핵심 쟁점 중 하나인 노동 환경 개선 논의는 아예 빠져있다는 것이 학비노조의 지적이다.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폐암 발병률은 일반인의 6배에 달한다. 지난 9월 건강검진에서는 전체 급식 노동자 5979명 중 27.3%인 1634명이 폐암 진단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지난해 12월 안전보건공단 실태조사 결과 조사대상 93개교 모두 환기시설이 불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학비노조는 급식노동자 배치기준을 하향 조정해 인력난을 줄이고, 급식실 환기시설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勞, 노동 이슈 부각 앞두고 선수 치나…'지원 사격' 야권도 정부·여당과 대립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민주노총에서 '대정부 공동파업-총력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이러한 민주노총의 대(對)정부 파업에서 주요한 명분에는 우선 현 정부의 '공공부문 민영화' 기조에 대한 반발에 방점이 찍혀있다.
지난 7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새정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통해 인위적인 인원 감축 기조를 밝혔다. 나아가 이 달 말에 기재부는 인력 감축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공공기관 혁신 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350개 공공기관에서 내년까지 정원 6734.5명(시간제 노동자 포함)을 감축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로 하위직 노동자들이 감축될 것으로 예상될 뿐 아니라, 인력 감축은 고스란히 공공부문 기능의 민간 부문으로의 이전을 의미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더 나아가 연말에 노동 이슈가 주요 쟁점으로 더욱 부각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민주노총이 한 발 앞서 정부 압박 수위를 높이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다음 달 13일이면 윤석열 정부의 핵심 노동 정책인 노동시간·임금 제도 개편안에 관해 전문가 기구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구체적인 권고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주52시간 무력화 및 직무성과급제의 부활 시도라며 비판해왔다.
또 정부가 이 달 안으로 발표할 것이 유력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과, 연내 공개될 것으로 보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개정안 역시 '처벌과 규제'에서 '자율과 예방'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질 것으로 알려져 노동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회로 눈길을 돌리면 양대노총 모두의 최대 주력 과제인,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조법 2, 3조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동력을 부여하려는 목적도 엿보인다.
관건은 이처럼 경색되고 있는 노정 관계를 정부가 어떻게 풀어갈 것이냐는 점이다.
현 정부의 '작은 정부' 기조와 노동시간·임금제도 정책 방향에 손을 대는 것은 정부의 노선을 완전히 바꾼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또 중대재해 관련 이슈나 노란봉투법의 경우에도 경영계의 반대가 극심한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의 입지가 넓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반면 야권은 노동계와 협력해 정부와 여권을 적극 압박하는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14일에는 한국노총을, 15일에는 민주노총을 잇따라 방문해 정부의 민영화 시도와 노란봉투법, 중대재해법 등을 거론하며 노동계를 지원사격했다.
정의당 이정비 대표도 15일 민주노총을 찾아 노란봉투법에 대해 "내일(16일)부터 정의당 의원들이 노란봉투법을 위해 국회 안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면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것을 꼭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밝히고 민주노총과의 협력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