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미궁의 설계자' 중 한 장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건축가 김수근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과오를 어떻게 반성하고 책임질 것인가 묻고 싶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2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연극 '미궁의 설계자'가 오는 17일부터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안경모 연출은 8일 서울 대학로 예술의집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수근은 한국 현대건축 1세대로 권위와 명예를 누렸던 인물이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했다. 이 작품은 '인간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건축가가 어떻게 인간을 해악하는 공간을 만들게 됐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작품에서는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엮인 세 인물, 세 개의 시간이 중첩된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하던 신호의 1975년, 이 곳에 끌려가 고문당한 경수의 1986년, 민주인권기념관이 된 이 곳에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나은의 2020년 이야기가 교차한다.
안 연출은 "김수근이 남영동 대공분실에 사용된 검은 벽돌을 직접 골랐다는 기록 정도만 남아 있을 뿐 그외 부분은 기록으로 남겨진 게 없다. 그렇다보니 작품 안에서도 가공의 인물인 '신호'를 통해 (독재정권 시절 국가 프로젝트에 동원된) 지식인들의 혼돈감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1980년대 중반 이 곳에서 김근태는 고문, 박종철은 고문치사를 당했다. 당시 고문 피해를 겪은 인물에 관해서는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실태보고서에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 이를 극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고 말했다.
2020년 나은의 시선은 극본을 쓴 김민정 작가가 그해 11월 남영동 대공분실을 방문한 후 경험한 감각과 느낌을 담았다. 김민정 작가는 "남영동 대공분실 설계자가 평소 존경했던 김수근 건축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충격이 컸다"며 "아픈 역사이지만 제대로 기록하고 싶어 극본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국가폭력의 공간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2005년부터 2018년까지 경찰청 인권센터로 쓰였고, 리모델링을 마치는 오는 6월에는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안경모 연출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2023년에 왜 우리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되돌아봐야 할까. 안 연출은 "김수근이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불과 얼마 전이다. 지금도 공간 종합건축사무소(김수근 설립) 측에서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건축가 김수근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과오를 어떻게 반성하고 책임질 것인지 묻고 싶었다. 나아가 동시대 지식인이 지적 생산물을 만드는 과정이 어떻게 폭력의 행위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길 바랐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연극을 올리는 아르코예술극장도 김수근이 직접 설계했다. 안 연출은 "1970년대 군사독재 정권 시절, 김수근은 대형 국가 프로젝트를 도맡다시피 했다. 그런데 자유센터(현 한국자유총연맹)나 중앙정보부 정동분실과 달리 남영동 대공분실은 자신이 설계했다고 공표하지 않았다"며 "다만 아르코예술극장의 벽돌 질감을 보면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과 똑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관객 입장에서는 더 섬짓함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