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맥주 4종. GS25 제공지난해 편의점 맥주 시장을 강타한 '뵈르(BEURRE)'. 버터향을 첨가한 맥주로, 편의점에서는 '버터 맥주'로 통했죠. 소설 해리포터에 등장한 버터맥주 덕분이었을까요, 지난해 9월 출시 이래 카스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
스타덤에 오른 맥주 '뵈르(BEURRE)'가 식약처 처분을 받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버터를 뜻하는 프랑스어 '뵈르(BEURRE)'를 명칭으로 쓰려면 원재료인 버터가 제조나 가공 과정에 사용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거짓·과장 광고를 금지한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식품표시광고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식약처 입장입니다.
제조사 부루구루는 반발합니다. '뵈르(BEURRE)'는 성분 표시가 아닌 상표를 표시한 것이라고 말이죠. 실제로 '뵈르(BEURRE)'는 상표로 출원된 의류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이 의류 브랜드와 제조사는 협업 관계로 맥주는 물론 '뵈르(BEURRE) 아이스크림'도 시중에서 판매 중입니다.
온라인에서는 '불닭맥주에 불닭이 들어가냐', '죠스떡볶이에 죠스가 들어가냐'는 등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식약처는 왜 '뵈르(BEURRE)'에만 처분을 내리려고 하는지, 식품표시광고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두유노 BEURRE?
문제의 식품표시광고법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식품 등의 표시ㆍ광고에 관한 법률 ( 약칭: 식품표시광고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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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조(부당한 표시 또는 광고행위의 금지) ① 누구든지 식품등의 명칭ㆍ제조방법ㆍ성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에 관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표시 또는 광고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개정 2021. 8. 17.>
1. 질병의 예방ㆍ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 또는 광고 2. 식품등을 의약품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 또는 광고 3.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것을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 또는 광고 4. 거짓ㆍ과장된 표시 또는 광고 5. 소비자를 기만하는 표시 또는 광고 6. 다른 업체나 다른 업체의 제품을 비방하는 표시 또는 광고 7. 객관적인 근거 없이 자기 또는 자기의 식품등을 다른 영업자나 다른 영업자의 식품등과 부당하게 비교하는 표시 또는 광고 8. 사행심을 조장하거나 음란한 표현을 사용하여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현저하게 침해하는 표시 또는 광고 9. 총리령으로 정하는 식품등이 아닌 물품의 상호, 상표 또는 용기ㆍ포장 등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을 사용하여 해당 물품으로 오인ㆍ혼동할 수 있는 표시 또는 광고 10. 제10조제1항에 따라 심의를 받지 아니하거나 같은 조 제4항을 위반하여 심의 결과에 따르지 아니한 표시 또는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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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르'는 4호 '거짓·과장된 표시 또는 광고' 규정을 어겼다는 건데, 법조계의 대체적인 반응은 "오인 가능성이 없지 않느냐"였습니다. '뵈르(BEURRE)'를 '버터'로 인식할 한국 소비자가 얼마나 있겠느냐는 거죠.
대법원의 판단도 이와 비슷합니다. "외국어 상표는 일반 수요자의 통상적인 외국어 수준으로 호칭 및 인식되는 것"으로 보고 이 수준 안에서 소비자 기만 여부를 살펴왔거든요. 다만 '뵈르(BEURRE)'를 유통한 판매처에서는 '버터 맥주'로 광고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향후 책임 공방이 벌어질 수 있는 대목이죠.
진저비어는 맥주가 아닙니다만
분다버그 진저비어. 홈플러스 제공대법원 판례 외에도 살펴봐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뵈르(BEURRE)'보다 더 헷갈리기 쉬운데 버젓이 판매되고 있는 음료들이 있거든요.
대표적으로 '진저 비어(ginger beer)'가 그렇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생강 맥주니까 생강과 맥아가 원재료에 들어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진저 비어'는 탄산수와 사탕수수설탕, 구연산 등으로 만든 음료수입니다. 그런데 왜 '진저 비어'는 처분 대상이 아닐까요. 바로 사전에 등재된 고유명사이기 때문입니다.
영미권에서 가장 유명한 사전 중 하나인 메리엄 웹스터에 진저 비어는 "달달한 무알콜 탄산 음료(a sweetened carbonated nonalcoholic beverage heavily flavored with ginger or capsicum or both)"로 등재돼 있습니다. 식약처 설명이 틀리지 않습니다만, 영미권 커뮤니티에서도 '진저 비어는 맥주인가요'라는 식의 질문들이 수두룩할 정도로 오인 가능성이 큽니다.
하물며 서울 시내 편의점이나 식품 코너에서 "진저비어 있나요?"라고 물으면 상당수 점원들은 "맥주 말씀이시죠?"라고 되묻습니다. '비어(beer)'가 맥주인 건 알아도 '진저비어'가 무알콜 음료라는 사실을 아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요? 대법원이 판시한 통상적인 외국어 수준에 비춰본다면 많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는 반응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고유명사는 허위·과장 광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비슷한 예로는 우유 성분이 없는 '소이밀크(soy milk·두유)'가 있다네요.
고유명사가 아니고 오인 가능성이 크지만 처분 대상에 오르지 않은 예는 또 있습니다. 불닭볶음면의 인기에 힘입어 출시된 불닭맥주는 보리맥아, 망고음료베이스 등으로 만들어집니다. 성분 표시에 따르면 불닭과 관련된 성분은 따로 없는 맥주입니다. 불닭볶음면에는 그릴치킨농축액 등 닭과 관련한 재료가 포함된 것과 대조적이죠.
의류브랜드 'BEURRE', 이름일까 성분 표시일까
오인 가능성 여부를 판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류 브랜드 'BEURRE'라는 명칭 표기를 성분 표시로 볼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할 부분입니다. 버터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이지만 MZ 세대 사이에서는 야구모자 브랜드로도 꽤 알려져 있거든요.
두가지 입장이 엇갈립니다. 식약처는 "'뵈르(BEURRE)'를 허용하게 되면 초콜릿이 없는 초콜릿도 상표 출원만 하면 된다는 논리"라며 "쓰지도 않은 원재료를 온갖 식품에 (명칭으로) 쓸 수 있는 부작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법원 관계자는 "겉표지에 큰 글자로 쓰여있는 BEURRE를 식품 표시 성분으로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제조사 부루구루 측은 "'버터'는 소비자가 오인·혼동할 수 있어 상표로 쓸 수 없다고 하더라도 'BEURRE(뵈르)'는 오인·혼동의 염려가 없으니 상표로 쓸 수 있다는 것이 상표등록에 관한 판례"라며 "상표 등록을 받을 수 있는 표장을 식품표시광고법에서 다시 문제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