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안철수 당대표 후보 캠프 이종철 수석대변인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통령실 관계자들의 정치중립 위반 및 불법행위관련 제보사항 발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국민의힘 3·8 전당대회 기간 내내 논란이 됐던 대통령실의 선거 개입 논란이 결국 단체 채팅방과 통화 녹취록 공개 등 폭로전으로 비화됐다.
6일 새롭게 공개된 대통령실 행정관과 국민의힘 한 당원 사이 통화 내용은 김기현 후보를 지원하는 게시물에 대한 홍보를 부탁하는 내용이다. 그간 대통령실이 철저한 중립을 주장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정황이라 "앞에선 중립을 주장하고, 뒤에선 개입해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통령실은 재차 '대통령실을 끌어들이지 말라'는 입장을 내놨지만, 연일 대통령실의 '불공정 선거 개입'을 비판하고 있는 안철수 후보는 이날을 시한으로 공식 해명을 요구하며,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안 후보 측 지지자의 고발이 이뤄졌다.
대통령실의 이번 정치 개입 이슈는 2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재판 당시 징역 2년의 유죄 판결과도 비교되고 있다. 이를 이번 사건에도 적용할 수 있는 지에 대한 판단은 엇갈리지만, 여기서 불거진 시비가 고발에 따른 향후 수사, 법리 다툼으로 이어질 경우 당내 정치적 불협화음이란 후유증을 낳을 가능성도 있다.
"김기현 방이 하나 있는데 콘텐츠 좀 전파해달라" 대통령실 관계자 녹취 드러나
국민의힘 안철수 당대표 후보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통령실 행정관의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공개된 통화음성 녹취에 따르면 올해 초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A 행정관은 올해 초 한 당원에게 "저희 뭐, 전당대회도 별로 안 남고 그래서"라며 "김기현 대표 뭐 이런 방이 하나 있는데, 거기 뭐 콘텐츠 올라가 있으면 뭐 그런 것도 좀 봐주시고, 좀 전파하실 (채팅)방 있으면 전파도 좀 해달라"고 요청했다.
녹취 내용에 따르면 A 행정관은 "(채팅방) 초청을 좀 드려도 되겠나"라고 제안하며 "방 이름은 '김이 이김'"이라고 설명했다. '김기현이 이긴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채팅방 이름이다.
또, "그쪽(채팅방)에서 뭐 콘텐츠 올라오고 이러면 좀 (공유)해주시고 이러시면 될 것 같다"고 했고, 이에 상대가 "그걸(콘텐츠를) 받아서 이제 저희 OO(활동 지역) 쪽에 공유하고 그것만 해드리면 되느냐"고 묻자 "맞다"고 답하기도 했다.
앞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관계자들이 포함된 단체 채팅방에 초대된 사람들이 김 후보를 지지하고 안 후보를 비방하는 홍보물을 지속적으로 올렸는데, 심지어 현직 행정관이 직접 홍보 활동을 요청하기까지 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대통령실은 구체적인 답을 아끼며 "전당대회에 더 이상 대통령실을 개입시키려 하지 말라"고 선을 그었지만, 불씨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날 오후 취재진에게 "채팅방에 초대돼 (시민사회수석실 소속) 직원들이 있기는 했지만 예의상 나오지 못한 것"이라며 "(해당 채팅방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국정 홍보와 관련된 언급을 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안철수 "대통령실의 경선 개입, 중대한 범법"…결국 고발로 비화
국민의힘 안철수 당대표 후보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통령실 행정관의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안철수 후보 측은 연일 강력히 반발했다. 안 후보는 이날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대통령실이 당 대표 경선에 개입한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며 "헌법 제7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한 중대한 범법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은 행정관이 전당대회에 개입한 사실과 관련해 누구의 지시였는지, 누가 몇 명이나 어떻게 가담했는지 등을 즉각 확인해 오늘 중으로 입장을 밝혀야만 한다"며 "분명한 답변을 내놓지 않는다면 법적인 조치가 뒤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행정관들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실 소속인 만큼, 대통령실의 책임을 강도 높게 주문한 것이다. 안철수캠프의 김영호 청년대변인도 논평에서 이번 사건이 국가공무원법 제65조 공무원의 정치 운동 금지 규정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그간 전당대회 진행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직·간접적인 개입에 안 후보 측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앞서 나경원 전 의원이 불출마 압력을 받고, 선거 운동 과정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이력 등을 거론하며 '윤안연대'를 언급한 안 후보가 대통령실 관계자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일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결국 대통령실은 안 의원의 구체적인 확인 요구에 침묵했다. 결국 안 의원 측 지지자가 이번 사건과 관련된 대통령실 관계자 5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이날 경찰에 고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문제는 수사 사안으로까지 확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불법 개입' 판단은?…행정관 윗선 주목
안철수캠프 측은 이같은 녹취 내용이 국가공무원법에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국가공무원법 제65조(정치 운동의 금지) 2는 "공무원은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한 다음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정하고 있는데, 그 행위로 △투표를 하거나 하지 아니하도록 권유 운동을 하는 것 △문서나 도서를 공공시설 등에 게시하거나 게시하게 하는 것 등이 적시돼 있다. 공무원인 행정관들이 특정인을 지지하기 위한 투표 권유 등을 한 것이 이같은 조항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조계의 해석은 엇갈린다.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쪽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징역 2년의 실형을 확정받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선거는 '공직선거후보자를 추천하기 위한 경선'이었다"는 입장으로 "공직 후보자가 아닌 당 대표 등을 뽑는 이번 전당대회는 경우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국가공무원법상 선거 역시 이같은 기준에서 적용될 수 없다고 본다.
반면 국가공무원법상 선거를 좀 더 폭넓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박세준 변호사는 "국가공무원법상 선거의 범위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는 않은 만큼, 공직 선거로 귀결되지 않는 당 대표 선거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는지는 법원의 판단을 직접 받아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 의원이 언급한 헌법 제7조 2에서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는 점도 논쟁 지점이다.
법조인 출신의 한 당내 의원은 "행정관이 독자적 판단으로 이같은 개입에 나섰다고 주장을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이번 일이 만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비서관과도 연결된다면, 해당 행정관, 즉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지 못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대 선거에 도대체 뭐 하러 이런 재를 뿌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더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돼 만일 위계(거짓)에 의한 선거관리위원회 업무방해나 허위사실 유포와 관련해 문제 제기가 이뤄지면 어떡할 건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고발 사건은 자동 입건되기 때문에 경찰 수사는 불가피하다.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검찰 기소로 이어진다면 당내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가 법정 다툼으로 비화되면서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대통령실 개입'이란 전대미문의 오명을 남긴 채 만만찮은 후유증을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