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북한의 대외매체 조선중앙통신은 7일 오전 미국의 전략자산전개와 한미연합훈련을 비난·반발하는 2개의 담화를 거의 동 시간대에 게재했다. 6일자로 준비된 외무성 대외보도실장 명의의 담화와 7일자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이다. 외무성 담화로는 부족했는지 김여정의 담화가 추가된 양상이다.
김 부부장이 담화에서 중점적으로 거론한 것은 태평양 등 공해에서 실시되는 전략무기시험에 대한 것이었다.
김여정은 지난달 20일 담화에서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비난하며 태평양을 자신들의 사격장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런 담화에 대해 존 애퀼리노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관은 이후에 "북한이 태평양 지역으로 ICBM을 쏘면 즉각 격추할 것이고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미 인도태평양사령관의 발언은 사실 공식 발언이 아니고 국내의 한 언론이 전한 내용이다.
김여정 스스로 '진위를 알 수 없는 불명확한 보도'라면서도, 정색을 하며 "사실 유무, 이유 여하를 떠나 명백히 사전 경고해두려고 한다"고 한 데는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담화의 요지는 태평양 등 미국과 일본의 관할권에 속하지 않는 공해와 공역에서 실시되는 전략무기시험에 요격과 같은 미국의 군사적 대응이 있을 경우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이고, 그런 상황에 대비한 군사행동 규범이 있다는 것이다.
김여정은 특히 전날 B-52H를 동원한 한미연합공중훈련 등을 거론하며 "반드시 무엇인가를 통하여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부를 지어주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적중하고 신속하며 압도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상시적 준비 태세에 있다"고 밝혔다.
오는 13일부터 11일간 실시되는 한미 '자유의 방패' 연합훈련에 대해 북한이 군사적 대응을 준비 중임을 시사한 대목이다.
태평양 공해에서 실시되는 전략무기시험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김여정의 발언에는 사실 미국이 공세적으로 대응할 경우 발생할 위기 상황에 대한 우려도 엿보인다.
북한 외무성이 대외보도실장 명의로 발표한 담화에도 한미 자유방패 훈련과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 과정에서 위기수준이 선을 넘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드러나 있다.
"조선반도에서의 핵전쟁 발발 위험은 가상적인 단계로부터 현실적인 단계에로 이행하고 있다", "미국의 도발적 군사 행동들은 며칠 후 개시되는 대규모 미국 남조선 합동군사연습의 침략적 성격과 그로부터 초래될 파국적인 정세 격화의 엄중성을 예고해 주고 있다", "미국과 남조선의 위험천만한 군사적 도발 움직임이 지금처럼 계속 방관시된다면 쌍방의 방대한 무력이 첨예하게 밀집 대치되어있는 조선반도 지역에서 격렬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담보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등의 발언은 향후 북한의 군사적 대응을 위해 명분을 쌓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기상황도 관리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 특수부대가 카메라 달린 헬멧을 착용한 모습. 연합뉴스북한은 지난 2월부터 지금까지 모두 9차례의 각종 담화를 발표했는데, 대부분 한반도 긴장 고조와 관련해 유엔 등 국제사회의 역할을 강조하고 이를 압박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제사회는 미국과 남조선에 전쟁 연습을 당장 중단할 데 대한 명백한 신호를 보내야 할 것"이라는 게 대외보도실장 담화의 결론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것은 향후 북한의 도발이 있을 경우 유엔 안보리의 제재논의를 차단하기 위해 미리부터 명분을 쌓고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따라서 김여정과 외무성의 담화는 13일부터 실시되는 한미 자유의 방패 훈련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대응과, 이에 따른 위기 발생 및 제재 논의 견제 등 상황 관리의 양면을 모두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미국의 직접적 대응이나 요격이 있을 수 있는 무기보다는 핵 탑재가 가능한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동해상 동북 방향으로 발사하는 시위 성 개념이 강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3월 한일정상회담, 4월 한미정상회담, 5월 히로시마 G7 회담 등 한미일의 주요 외교일정을 전후로 해 전략무기 시험이 있을 수 있다"고 봤다.
북한이 발사할 가능성이 있는 전략무기로는 군 정찰위성, 고체연료 ICBM, SLBM, 극초음속미사일 등이 거론된다.
김여정이 태평양 공해에서의 전략무기 시험의 정당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이를 위한 계획도 수립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이 위성발사를 명분으로 하는 고체연료 ICBM 발사 가능성이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이 지난해 12월 18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최종 단계의 중요 시험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의 국가우주개발국 박경수 부국장은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우주개발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운반 로케트용 대출력 발동기(엔진) 개발에 성공하여 각종 위성들을 해당한 궤도에 쏘아 올릴 수 있는 확고한 담보가 마련됐다"고 밝힌 바 있다.
박 부국장은 특히 "우주과학 기술성과들을 농업과 수산, 기상관측, 통신, 자원탐사, 국토관리와 재해방지를 비롯한 여러 부문에 도입"하는 방안을 강조한 만큼, 민간 부문을 명분으로 한 다양한 전략 로켓 발사가 시도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다음 달까지 군사정찰위성 1호기 발사 준비를 모두 완료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도 있다.
한편 국정원은 7일 국회 정보위 업무보고에서 "북한이 한미훈련과 정상회담이 예정된 3월과 4월에 핵과 재래식을 결합한 대규모 훈련을 전개하고 신형 고체 ICBM을 발사할 소지가 있다"며 "김정은 지시에 따라 4월 중 정찰위성 발사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국정원은 특히 "기술적 수요와 김여정의 예고 등을 감안할 때 사거리를 축소한 ICBM의 정상 각도 시험발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