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주택가에서 40대 여성을 납치해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이경우 등 3명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강남 납치 살인 사건'의 주요 피의자 3인방 간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주범 이경우는 범행 일체를 부인하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함께 구속된 황대한과 연지호는 이경우가 피해자를 지목하고 범행도구까지 건넨 '몸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획하고 실행한 3인조 일당 사이 진실공방이 벌어지는 가운데 경찰은 이들 간 금품이 오간 내역, 통신 기록 등 객관적 증거물 확보에 주력해 혐의 입증뿐 아니라 추가 공범까지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범행 부인' 이경우…공범 수사 등으로 혐의 입증하나
강남 한복판에서 40대 여성을 납치 살해한 사건에서 이경우는 피해자를 지목해 범행을 주도한 혐의를, 황대한과 연지호는 피해자를 직접 납치하고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이에 대해 황씨와 연씨는 "이경우로부터 500만 원을 착수금으로 받는 등 700만 원 가량을 받았다", "이씨에게서 공범으로부터 4천만 원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이씨의 범행 가담 내용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반면 이씨는 일부 사실 관계를 인정할 뿐, 범행 가담 자체는 부인하고 있다.
이처럼 주요 피의자 간 진술은 엇갈리지만, 3인조 일당은 지난 4일 오후 나란히 신상이 공개됐다.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는 신상 공개 배경을 밝히면서 "피의자 중 일부가 범행 일체를 자백했고, 3명 모두에 대해 구속영장 발부되는 등 충분한 증거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때 만족해야 할 요건 중 하나가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다. 경찰이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는 데 성공한데다 핵심 피의자 3명 모두에 대한 신상공개까지 일사천리로 추진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씨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같은 날 이경우의 '배후'로 지목되는 부부 중 남편인 유모씨가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유씨의 주거지와 차량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유씨를 체포하기 전부터 이미 신상공개를 추진하던 터였다. 유씨의 신병을 확보해 진술을 받기 전에 이미 3인의 혐의사실 입증에 무리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처럼 주요 피의자들의 신상 공개도 이뤄졌을 뿐 아니라 배후로 지목되는 유씨도 체포되면서 주범 이경우에 대한 경찰의 수사에 '파란불'이 켜졌을 것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경찰은 유씨 부부가 범행 이전에도 두 차례에 걸쳐 4천만 원을 이경우에게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경찰이 이경우와 유씨가 범행 직후 두 차례 만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유씨 부부를 시작으로 '배후' 수사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피의자 5명, 출국금지 5명'…공범 더 있을까
왼쪽부터 이경우(35), 황대한(36), 연지호(30). 서울경찰청 제공이처럼 경찰이 주요 피의자들의 주변 인물로 수사망을 넓히는 사이 이번 사건의 배후가 어디까지 뻗어있을지, 수사기관이 그 배후를 얼마만큼 규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경찰은 추가 공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은 이들의 범행 수법 등을 고려할 때 조력자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때 주목되는 인물들이 베일 속에 가려진 출국금지 대상자들이다. 현재까지 경찰에 입건된 피의자는 5명, 출국금지된 인물도 5명이다.
출국금지된 인물 가운데 2명은 현재 이경우의 배후로 지목된 유씨 부부로 알려졌을 뿐, 나머지 3명은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경찰 수사 방향을 살펴볼 때 현재까지 거론된 인물들 이외에도 제3의 인물, 즉 추가 공범이 존재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경찰이 신병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을 출국금지 대상자 중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3명이 이번 사건 배후의 최종 종착지가 될 것인지 주목된다.
다만 경찰은 "공범과 관련해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폭넓게 수사하고 있다"면서도 "(공범 관련 수사에 대해 밝힐 경우 공범들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피처 등을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며 추가 공범이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말을 아끼고 있다.
범행의 불씨된 'P코인'…코인업계로 향하는 칼끝
추가 공범을 밝혀내기 위한 경찰 수사의 칼끝이 향하는 건 결국 코인업계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까지 밝혀진 주요 피의자들과 피해자 사이의 연결고리는 'P코인'이다.
미세먼지 관련 친환경 분야 코인인 P코인은 2020년 11월 13일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원에 상장됐다.
이경우는 P코인에 투자하면서 P코인 홍보·영업 업무를 담당하던 피해자를 알게됐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2020년쯤 P코인에 투자했다가 8천만 원 가량의 손실을 봤고, 피해자에게 이에 대한 금전적 지원을 요청해 2021년 4월과 7월 각각 천만 원씩 총 2천만 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경우와 피해자 사이에는 피의자 유모씨와 황모씨 부부가 존재한다. 유씨 부부 또한 P코인 관련 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지난 2021년 2월, P코인 시세가 하락하자 이경우와 피해자는 유씨 부부가 시세를 조종해 코인 가격이 떨어졌다고 의심했고,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이들 부부를 찾아가 1억 9천만 원 상당의 코인을 빼앗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검찰은 해당 사건(공동공갈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해당 사건 이후 유씨 부부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는 이경우가 이들 부부와 가까워졌고, 피해자와는 되레 사이가 멀어졌다고 알려졌다. 이같은 관계 변화에서 경찰은 유씨 부부가 이경우에게 착수금 4천만 원을 주고 피해자를 살해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수사하고 있다.
P코인을 둘러싸고 유씨 부부가 피해자와 소송을 진행 중이었다는 점도 이번 사건 배후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유씨는 피해자의 권유로 P코인에 1억 원을 투자했다가 손해를 입고 피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의 배우자인 황씨 또한 지난 2021년 10월 피해자를 상대로 'P코인으로 인한 손실을 배상하라'며 9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최근 재판이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P코인을 둘러싼 갈등이 범행의 씨앗이 됐다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으로, 추가 공범이 P코인을 비롯한 코인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