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항아리 제공 2005년 4월 25일 월요일 아침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 역을 1.4㎞ 앞둔 지점에서 반경 300m의 우측 커브 구간을 달리던 쾌속 전동차 5량이 탈선했다. 선두 2량은 선로 가의 9층 맨션 건물에 충돌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파됐다.
아사노 야사카즈는 바쁜 일로 작은어머니 문병을 갈 수 없자 아내에게 여동생, 딸과 함께 문병을 가달라고 부탁했다. 이 전동차 선두 둘째 칸에 타고 있던 가족 중 아내와 여동생은 숨졌고 딸은 중상을 입었다. 당시 승객과 기관사 모두 107명이 숨지고 562명이 다친 이 사고는 일본 역사상 최악의 철도 사고인 'JR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로 기록된다.
최근 번역돼 오는 15일 출간되는 '궤도 이탈'은 전 고베신문 기자이자 프리랜서 작가인 마쓰모토 하지무가 'JR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를 10여 년간 파헤친 논픽션이다.
이 책의 중심에 선 가족을 잃은 아사노는 유가족으로서의 고통을 견디며 자기감정("화산 분화구에 남겨진 기분이었어" "내 존재를 부정하고 싶다. 이 몸을 없애고 싶다")을 봉인하고 가해 기업에 대한 분노 역시 일단 미뤄둔 채 JR의 전현직 사장들을 직접 만나 진상 규명과 참사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춰 기술자이자 협상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한다.
그는 '지역 환경 계획 연구소'라는 회사의 대표로 1995년 고베 대지진 복구와 도시 재생을 위해 시청과 주민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고 10년에 걸친 프로젝트가 드디어 마무리된 시점이었다.
이 사고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사회적 참사의 전형이다. 사고 발생 직후 '건널목 사고'라는 오보가 났고, 사고 후 유가족들은 한참 동안 '정보의 진공 상태'에 놓였다. 40시간가량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가해 기업인 JR 서일본 사장은 한 달 뒤 열린 추모식에서 조사(弔詞)를 읽었을 뿐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사고 원인을 조직의 문제에서 찾기보다는 운전사(당시 사망) 개인의 실수로 돌렸다.
탈선 사고조사위원이 JR 서일본에 사전에 정보를 유출하는 사건도 터졌다. "보상금 받을 거잖아. 불만 있어?" "심보를 그렇게 쓰니까 자식이 사고를 당하는 거야"와 같은 2차 가해도 발생했다.
이 책은 가해자 JR 서일본, 피해자 아사노 야사카즈, 이 두 궤도가 나란히 길을 달리며 전개되는 10년에 걸친 아사노의 분투를 담담하게 기록해냈다. 아사노는 한국의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과의 연대도 끌어내, 4.16 세월호 참사 유가족 및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과 교류하면서 "유가족으로서 재난 참사를 사회화하는 게 우리의 책무다"라는 공통 인식을 다져왔다.
불과 4개월 여 전 355명의 사상자를 낸 '이태원 참사' 역시 연이은 사회적 참사의 전철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아사노는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 감정적이기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었다. 일반적으로 유가족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이지만 고베 대지진의 여파를 수습하는 경험에서 그의 차분함이 돋보인다. 저자는 그런 아사노의 시선으로 이 사건을 바라본다.
"이건 과학기술 논쟁이다. 감정론이 아니다. 감정론만 얘기하다보면 안전으로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사고의 조직적 구조를 파헤쳐 이를 바로 잡는 여정은 10여 년에 걸쳐 이어졌다. 한국의 사회적 참사의 근본적 원인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영감을 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근본 원인이 있다. 그것을 파헤쳐야만 사고를 사회화할 수 있다. 사고의 사회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유가족으로서의 내 책임은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보고서에는 과학적 관점과 논리가 있고, 윤리가 있다. 이 시도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져야만 우리의 노력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쓰모토 하지무 지음ㅣ김현욱 옮김ㅣ글항아리ㅣ424쪽ㅣ2만 1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