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세 아이 아빠'는 부산 북구 덕천지구대에 육아용품을 가득 담은 상자를 아이가 있는 가정을 돕고 싶다며 남몰래 두고 갔다. 그가 적은 손편지. 부산 북구 제공▶ 글 싣는 순서 |
①북적이는 집에서 사랑 넘치는 8남매…"서로 가장 좋은 친구" ②평균 출산율 3명인 교회…"아이 함께 키워준다는 믿음 덕분" ③다섯 남자아이 입양한 부부…6형제가 만드는 행복의 모양 ④부모는 슈퍼맨이 아니야…'같이 육아'로 아빠도 배운다 ⑤"내 자식 같아서" 온정 전하는 아버지들…"돌봄친화 사회로 이어져야" (계속) |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으로 지역 아동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전하는 아빠들이 있다. 이들은 자녀와 함께하는 기부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가르침과 동시에 아이들에게 선한 씨앗을 뿌리며 미래 세대에 대한 지역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돌봄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더 힘든 이웃을 위해" 마음 울리는 '세 아이 아빠'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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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이는 장애 3급이고, 저희 가정은 차상위계층입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더 힘든 처지에서 아이를 키우는 가정을 돕고 싶습니다. 둘째 딸 생일에 뜻 깊은 일을 생각하다 소박하지만 어려운 가정에 도움이 되고 싶어 기저귀와 물품 기부를 생각했습니다. 함께 아기 키우는 어려운 가정에 써주세요. 많이 못 해 죄송합니다"
지난해 성탄절, 부산 북부경찰서 덕천지구대에 이름 없는 산타클로스가 남몰래 다녀갔다. 그가 다녀간 자리에는 기저귀와 유아용 마스크와, 손소독제 등 육아용품이 든 상자가 남아있었다. 상자 속 물품들 사이로 발견된 편지에서 산타클로스는 가장 먼저 스스로를 '세 아이 아빠'라고 소개했다.
알고 보니 '세 아이 아빠'는 앞서 7월과 9월에도 육아용품이 가득 담긴 상자를 아기가 있는 가정에 전해달라며 몰래 놓고 간 얼굴 없는 기부천사였다.
북구 덕천2동 행정복지센터 배상범 맞춤형복지사무장은 "사실 편지를 읽고는 혹시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가정은 아닐까 걱정이 가장 먼저 들었다"며 "익명인 데다 우리 덕천2동에선 편지 내용에 맞는 분을 찾을 수가 없어 따로 연락을 드리진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복지대상자의 경우 스스로를 드러내길 원하지 않아 지역사회에 대한 공감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럼에도 아버지의 마음으로 특히 아이를 키우는 가정을 위한 기부를 통해 지역사회의 미래세대와 돌봄에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세 아이 아빠'가 나눈 소중한 마음은 그의 뜻대로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는 지역 내 한부모 가정에게 전달됐다.
지난해 12월 25일 '세 아이 아빠'가 덕천지구대 앞에 두고 간 기부 물품. 부산 북구 제공이름도 성도 밝히지 않은 '세 아이 아빠'는 올해 2월에도 첫째의 초등학교 졸업을 기념해 뜻 깊은 기부를 하기도 했다. 또다시 지구대 앞에 놓인 상자에는 기저귀, 깨끗이 세탁한 아이 옷가지와 함께 동전과 지폐로 가득 찬 돼지 저금통이 들어있었다.
함께 든 편지엔 "물가가 올라 전국민이 힘든 상황 속에서 어려운 가정은 더욱 힘들 것"이라며 "도움이 필요한 아기 키우는 가정에 써 달라. 폐지를 팔아 조금씩 모은 돈인데 적은 금액이지만 어려운 가정에 단비가 되었음 한다"고 진심을 눌러 담은 글이 적혀있었다.
또한 그는 "첫째가 초등학교(장애학교)를 졸업하는데 아들과 뭔가 특별한 게 없을까 고민했다"며 "(아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 기부하게 됐다"고 사연을 설명했다.
배 사무장은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도 이웃을 돕는 아버지의 모습에 자녀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보고 배우며 선하게 자랄 것 같다"며 "자녀들에게 무엇보다 귀한 무형의 자산을 남겨주고, 지역사회 내 아동들에게도 선한 씨앗을 뿌리는 도움에 마음이 따뜻하다"고 거듭 감사를 전했다.
"자녀들이 남 돕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으면" 자녀 생일마다 기부 이어가
자녀들의 이름으로 기부를 이어가고 있는 류동령 씨는 지난해 설날을 맞이해 소고기와 과일 선물세트 등을 자녀들의 이름으로 기부했다. 류동령 씨 제공북구에는 이름 없는 산타 '세 아이 아빠'뿐 아니라 자녀들 생일마다 기부를 하며, 더불어 사는 삶을 자녀에게 강조하는 동시에 지역 내 미래세대에 따뜻하고 섬세한 관심을 이어가는 '키다리 아저씨'도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해 받은 첫 월급으로 어린이 단체 후원을 시작한 류동령 씨는 그 후 아이들을 위한 기부를 이어나간 것이 어느새 올해로 16년째다.
류 씨는 "어릴 때 못 먹고 힘들게 살았던 기억이 40대가 된 아직까지도 마음속에 계속 남아있다"며 "누가 어릴 때 가난한 건 죄가 아니라고 말하더라. 이렇다 할 계기나 거창한 이유는 없고, 그냥 아이들이 굶지 않고 잘 컸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고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조금씩 오르는 월급에 따라 정기후원하는 어린이단체도 함께 여럿 늘려온 류 씨의 기부 생활에 지난 2017년 큰 전환점이 찾아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첫째 딸이 태어난 것이다.
류 씨는 "딸 돌잔치를 하고 나니까 돈이 조금 남았다. 기쁜 날을 기념하고 싶은데 일 때문에 외국을 나가야하는 상황이어서 급하게 뭘 할까 하다가 쌀을 기부했다"며 "딸 생일인 8월 8일에 맞춰 88㎏를 기부하려다가 1㎏ 단위는 안 된다고 해서 딸 이름으로 100㎏를 기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류 씨는 매년 딸의 생일마다 딸의 이름으로 기부를 이어나가고 있다. 또한 재작년 태어난 둘째는 돌잔치를 하지 않고, 지역아동센터에 샌드위치 422인분을 준비해 첫 돌의 기쁨을 지역 내 아이들과 함께 나눴다. 지난해 막내가 태어났을 땐 출생신고를 하면서 구청을 통해 장애인 협회에 선물세트 100개를 기부하기도 했다.
2021년에는 둘째가 태어난 기념으로 주민센터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한부모 가정 5군데에 세제와 화장지 등 생필품을 전달하며 기쁨을 나눴다. 류동령씨 제공그는 "올해 8월 말에 또 막내가 첫돌인데 어떤 걸 할까 고민하고 있다"며 "아이들 생일이 8, 9월에 몰려있어서 아내는 한 방에 같이 하는 건 어떠냐고 하는데 일단 한 번에 하면 의미가 없지 않냐고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또한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기부한 내용을 정리해 인터넷 카페에 올리는 등 자료를 남기고 있다. 잦은 출장과 바쁜 업무에도 시간을 들여 꼼꼼히 기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이다.
그는 "아직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첫째도 (기부 기념) 사진 찍으러 가자고 하면 그냥 따라가는 거지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른다"며 "나중에 아이들이 컸을 때 볼 수 있게 미리 정리를 해두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중에 아이들이 조금 크면 자신들의 이름으로 기부한 내역들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어렸을 때도 좋은 일을 했는데 계속 착하게 살아야 되지 않겠냐고 이야기할 것"이라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이들이 기부를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생활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그는 "아이들이 정의로운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바라는 것 그뿐"이라며 "주변을 살필 줄 알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내 자식 같아…우리 미래인 아이들 한 번만 살펴봤으면"
류동령 씨는 자신이 사는 북구 지역 내 소규모 보육시설인 '그룹홈'에 거주하는 아이들을 위해 세탁기 등 전자제품 뿐 아니라 옷과 화장품까지 섬세하게 직접 챙겨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류동령씨 제공그는 세 아이의 아빠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소규모 보호가정인 '그룹홈'에 수년 째 지속적으로 후원하며 미래세대에 대한 관심과 돌봄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그룹홈은 가정 내 학대나 방치를 당했거나 오갈 곳이 없는 미성년자를 보호해주는 보육가정이다.
에어컨과 세탁기 등 전자제품부터 신학기를 맞아 새 가방과 아이들 사이즈에 맞춘 봄옷, 매달 한 번 고기파티를 위한 고기 등 그때그때 필요한 물품들을 세심하게 챙기고 있다.
류 씨는 "일반 보육원보다 덜 알려져 지원이 열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룹홈에 중점적으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며 "전화로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만 하고 있을 뿐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주변에서는 함께 돕고 싶다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등 지역사회에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류 씨는 "인터넷에서 기부 글을 보고 '자신도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연락이 오기도 했고, 주변 지인들도 '그룹홈' 아이들에 간식이나 전자제품 후원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며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류동령 씨가 후원을 이어가고 있는 소규모 보육원에서 보내온 감사 인사. 류동령 씨 제공돈과 시간, 노력을 들여 지역 내 아이들을 챙기는 이유를 묻자 그는 "다 내 자식 같다"며 "아이들이 지금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잘 커서 평범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는 이어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 참 귀하고 소중한데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많다"며 "우리의 미래가 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주위를 한 번씩 살피고, 한 번만 눈길을 옆으로 돌리면 조금 더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지역사회에서는 이들의 진심이 귀감이 돼 기부 문화가 더욱 퍼져나가는 것은 물론, 저출생 시대를 맞이한 우리 사회가 미래 세대에 대한 애정을 가지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북구청 김나경 복지교육국장은 이에 대해 "아버지들이 자신의 아이를 돌보는 것과 같은 사랑의 마음을 이웃 아이들에게 베푸는 모습이 많은 귀감이 되는 것 같다"며 "저출생 시대에 이런 귀한 나눔들로 공동체 전체가 미래세대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돌봄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에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녀를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으로 지역 아동들을 챙기고, 사랑을 전파하는 모습을 통해 자녀 양육의 큰 행복과 기쁨이 사회에 더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