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먹은 점심식사. 일이 몰리는 날이면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생활지도교사는 걸어다니며 사발면을 흡입한다. 양형욱 기자 ▶ 글 싣는 순서 |
①[르포]자물쇠로 잠긴 시설…기자는 '장애인의 고려장'을 봤다 ②[르포]'목욕재개' 주혁씨도, '싹싹한 하겸씨'도 시설에 남겨진 이유 (계속) |
시설에 갇혀 아무도 찾지 않는 장애인들에게 '퇴소'는 꿈 같은 얘기다. 최소한의 위생과 욕구만 채울 수 있는 시설에서 삶의 주도권은 잃어가고, 시설 밖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자립할 기회는 점점 요원해진다. 기자는 수도권의 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신분을 숨긴 채 근무하며 시설 속 현장을 취재했다.
"나도 목욕할래요!" 주혁씨가 목욕하고 싶던 이유
거주시설 근무 이틀째. 비바람이 불던 눅눅한 날씨 탓이었을까, 거주인들 표정만 봐도 기분이 축 처졌구나, 싶었다.
오전 9시쯤, 결국 소동이 일어났다. "주혁씨 안돼요!" 유독 덩치가 큰 주혁(가명)씨는 김건호(가명) 생활지도교사가 들고 있던 빨간 목욕 바구니를 달라며 갑자기 떼를 썼다. 말리는 교사와 서로 팔을 붙잡고 옥신각신하며 어느새 '몸싸움'까지 벌이던 주혁씨는 곧 엉덩이부터 바닥에 넘어졌다. 주혁씨를 말리느라 온몸이 땀 범벅이 된 김 교사는 거친 숨을 다스릴 틈도 없이 방바닥에 흘린 물기부터 닦으러 정신없이 뛰었다.
2시간쯤 지났을까. "나도 목욕할래요!" 결국 김 교사는 주혁씨에게 두 손을 들었다. 주혁 씨를 목욕시켜주며 김 교사가 "오후에 커피 2개 줄게"라며 달래자, 주혁씨도 "선생님 좋아! 커피 좋아!"라고 화답했다. 비오는 날 시설에서 벌어진 '난투극'은 나름의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소동이 끝난 뒤, 김 교사에게 자조지종을 들었다. 거주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부 활동을 나가려면 목욕부터 해야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주혁씨는 목욕만 하면 자기도 외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날도 김 교사가 외출할 거주인들의 목욕을 돕자, 주혁씨도 밖에 나가고 싶어 목욕부터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다른 생활지원교사인 고강민(가명)씨가 놀란 기자를 다독였다. 고씨는 "주혁씨는 다른 사람을 때릴 수도 있어서 선생님이 거칠 게 대했다"며 "(제압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주혁씨가) 물어버리니까 선생님 곁으로 다른 사람들이 오지 못하게 막았는데, 선생님(기자)이 놀랐겠다"고 걱정했다.
오전 11시 20분, 대수(가명)씨는 언어활동 교사 소영(가명)씨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문앞으로 달려나갔다. 뒤를 이어 재성(가명)씨도 신발장으로 뛰어나갔다.
소영씨는 멋쩍은 표정으로 대수씨에게 가볍게 인사하곤, 재성씨를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쿵 닫히자 대수씨는 신발장으로 돌아가 힘없이 신발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그의 차례가 아니었다.
시설에 사는 거주인들은 매번 외출을 반긴다. 외출할 때면 기뻐서 박수를 치거나, 환하게 웃다가 침을 흘리기도 한다. 자신의 방도 아닌 복도 끝에서 잠을 청하는 세훈(가명)씨도 외부 문화활동을 나갈 때만은 얼굴이 맑아진다.
일부 거주인은 대화하기 어려워 외부활동이 왜 좋은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명확한 답은 주지 않았다. 다만 외출을 얘기할 때마다 보이는 그들의 환한 웃음과 손짓, 몸짓마다 외출이 이들의 삶에 단비라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하겸씨의 탈출구 '밀어서 잠금해제'…열린 '온라인' VS 닫힌 '오프라인'
기자가 일한 장애인 거주시설 내부. 양형욱 기자10여년째 시설에서 살아온 50대 하겸(가명)씨에게는 휴대전화가 바깥 세상과 만나는 해방구다.
유튜브 채널에서 관심 영상을 찾아보고, 노래를 틀고 따라 부른다. 말투가 어눌해 알아듣기는 어렵지만 교사들에게도 끊임없이 대화도 시도한다. 교사를 도와 다른 거주인들의 돌발행동을 함께 막거나 이불을 대신 정리해주며 남을 돕는 사회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예의 바르고 싹싹해 칭찬이 자자한 하겸씨는 기자가 근무를 마치던 날, 생활지도교사에게 카카오톡 서비스에 어떻게 가입하냐고 묻기도 했다.
누구보다도 시설을 떠나 자립하고 싶은 하겸씨지만, 누구도 시설을 떠나겠냐고 묻지 않았다.
하겸씨가 어디에 사느냐는 친형이 결정권을 쥐고 있다. 언젠가는 시설과 협의해 시설 밖으로 데려가겠다지만, 복잡한 가정사와 어려운 경제적 사정에 밀려 하겸씨는 10여년째 시설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시설을 떠나고 싶고, 자립을 시도할 능력이 있어도 그 부담은 오롯이 그의 가정이 짊어져야 할 짐이니 시설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충분한 지원이 있었다면, 하겸씨의 삶도 달라졌을까.
'현실의 벽' 부딪힌 교사들…'소신 고집하면 지쳐요'
바쁜 오전 일과를 끝나고 찾아온 점심시간, 한 생활지도교사는 기자에게 '믹스커피' 한잔을 건넸다. 양형욱 기자기자는 일주일 간 총 5명의 생활지도교사들과 함께 일했다. 이들은 '사회복지사 지망생'으로 위장한 기자 앞에서 종종 사명감을 품고 각종 사회복지 이론으로 무장했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노인, 청소년, 여성 등 다양한 사회복지분야 중에서 중증장애인을 위해 일하는 '생활지도교사'를 선택했지만,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너무 높았다. 이들은 열악한 현실과 부족한 인력, 잦은 야근 등에 치여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김건호(가명) 교사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있다. 제가 글로 배운 것과 현장에서 본 것(은 다르다)"며 "사회복지 쪽은 (체력, 감정) 소진도 심한데, '나는 이게 맞는데'라고 자꾸 고집하면 금방 지친다"고 말했다.
이어 "그만큼 많이 실망하고 좌절한다"며 "사회복지가 평생 사업이라, 이분들을 죽을 때까지 돌봐야하니까 '하루에 100% 성과를 내겠다'고 생각하면 힘들다"고 기자에게 충고했다.
턱없이 부족한 외부활동에 거주인들은 시설에서 나가는 날만 기다리지만, 교사들을 탓하기는 어려웠다. 바깥 세상에서 거주인들을 위한 문화활동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일손도 부족한데 거주 장애인들에게 '맞춤형 활동'을 제공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일부 교사들은 탈시설 주장을 반대했다. 그나마 비용이 적게 드는 시설조차 예산난과 인력난을 겪는데, 열악한 정부 지원과 부족한 사회복지 인력을 감안하면 차라리 시설부터 적극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생활지도교사는 "(시설에서) 인권 문제가 취약한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여기가 (중증장애인을 돌보는) 최일선인데, 먼저 (시설에) 많이 투자해서 구조적으로 개선해본 다음에 (탈시설을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시설을 떠나 사회 속에서 장애인들이 지낼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생활지도교사도 있었다. '인권'을 비용으로만 계산하기 전에, 사회에서 장애인을 격리하지 않고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립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생활지도교사는 "이들의 삶을 위해서 (탈시설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며 "우리의 목표는 시설을 새로운 곳으로 바꾸고, 장애인들은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기자가 근무한 시설에서는 지난해 1년 동안 거주인 2명만이 시설 밖으로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