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 국립극장 제공 '무대 위의 시인'으로 불리는 연출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59·그리스)가 '위대한 조련사' 이후 6년 만에 내한한다. 오는 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신작 '잉크'를 공연한다.
'잉크'는 우주의 기원인 물을 소재로 한 비언어 2인극이다. 인간의 신체와 시각예술을 결합해 독창적 무대 미학을 펼쳐낸다. 무대는 한 편의 시를 보듯 사유와 은유로 가득하고, 인체에 대한 조형적 실험으로 초현실적 세계를 구현한다.
파파이오아누는 9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잉크' 기자간담회에서 "이 작품은 연극도 아니고 무용도 아니다. 무용과 연극, 퍼포먼스가 합쳐진 새로운 장르"라며 "작품에 모티프가 된 서사도 없다. 연습하면서 떠오른 생각을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말했다.
작품은 완전한 어둠 속, 물줄기가 보슬비처럼 무대 전체에 흩뿌려지는 가운데 두 남자가 서로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물을 소재로 삼은 이유에 대해 그는 "원초적이고 태곳적 요소인 물은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변형·용해하며 빛을 흡수·반사한다"며 "무대에 물이 존재하면 리얼리티가 생기고 여러 가지 은유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파파이오아누가 펼쳐놓는 무대는 추상화를 보듯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제 역할은 실행하는 것일 뿐 작품을 분석하는 건 다른 사람 몫이다. 관객은 공연을 이해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인'의 어원은 '하다'이다. '무대 위의 시인'이라는 수식어에서 '시인'은 '실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했다.
잉크 중 한 장면. c)Julian Mommert. 국립극장 제공
파파이오아누는 이 작품에서 연출가·안무가·디자이너·배우를 넘나든다. "작품 종류와 규모에 상관 없이 모든 예술적 요소를 직접 컨트롤하는 것이 제 작업 방식이에요." 전방위 예술가의 면모를 발휘하는 건 화가·만화가로 활동하다가 공연예술로 옮겨온 덕분이다.
그는 아테네 미술학교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지만 연출가 로버트 윌슨, 안무가 피나 바우쉬를 만나며 공연예술가의 삶을 개척했다. 1986년 '에다포스 댄스 시어터'를 창단한 후 17년간 피지컬 시어터·무용·퍼포먼스가 결합한 작업으로 명성을 쌓았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을 맡아 유명해졌다.
"공연예술은 시각예술에 밀착된 제가 다른 예술가들과 소통하게 만들어준 장르에요. 계급이나 연령에 상관 없이 동시대 사람들과 자유롭게 접촉한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다만 공연예술을 할 때도 늘 화가의 눈을 견지하죠."
'잉크'는 지난 1월 그리스에서 월드투어를 시작했다. 이탈리아, 캐나다, 헝가리를 거쳐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한국 관객을 처음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