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공동묘지로 쫓겨난 주민들이 직접 손수 집을 지어 마을이 제법 모양새를 갖추자 당시 김제군이 입주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주민들에게는 금산사에서 마련한 밀가루가 가구 당 1포대 씩 전달됐다. 주민 김창수씨 제공 ▶ 글 싣는 순서 |
①왜 우리를 공동묘지로? 무덤과 동거, 짓밟힌 인권 ②땅 준다며 내쫓더니…반세기 가까이 나몰라라 ③'밀어붙이기식 화전정리', 행정도 '우왕좌왕' ④'화전정리사업'의 빛과 그림자, 우려가 현실로 ⑤사과와 치유를 위하여, 정치권·법조계의 시각은? (끝) |
옛 전북 김제군이 화전정리사업 과정에서 마을 주민을 공동 묘지에 내팽개친 채 그대로 철수해 버린 '공동묘지 강제 이주사건'.
이주민에 대한 충분한 보상은 커녕 기본권 침해 논란까지 불거진 이 사건을 법조계와 정치권 등에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먼저, 법조계에서는 "공동묘지로 주민들을 내쫓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석곤 변호사는 "당시 김제군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누리고 살 수 있는 어떤 상황을 만들어주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1976년 당시 전북 김제군 성덕면 화전민 이주단지(공동묘지)의 움막 생활. 주민 김창수씨 제공 또, "이 분들이 그 전 마을에서 생활할 때 누리고 있던 재산권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그런 조치도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헌법에서 보호하는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당시 법이 폐지되는 등 현행 법령상 마땅한 구제 수단이 없기 때문에 헌법소원이 유효한 어떤 구제 수단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법을 위한 방편의 하나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도 거론된다.
1969년 당시 전북 김제 금동마을 일대 가옥 위치 (빨강색), 금산사 뒷 계곡(파랑색), 현재 금산사 '닭지붕 코스 순례길'(노랑색). 국토정보지리원 항공 사진을 재구성했다. 국토정보지리원 제공'권위주의 통치시기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간주되면 진실규명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사정리법'에 근거한 진실규명 대상 사건 접수 신청이 지난 연말께 마감돼 현재로선 방법이 없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20년 12월 19일부터 2022년 12월 20일까지 2년 간 사건을 접수하고 마감했다.
정치권에서는 지역구 국회의원인 더불어민주당 이원택 의원(전북 김제·부안)이 현장에서 주민간담회를 갖는 등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원택 의원은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한시적인 특별법을 제정해서 문제를 풀어야 할 것 같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공동묘지로 강제 이주당한 전북 김제 금동마을 주민들이 정착한 개미마을. 이곳도 주민들이 세상을 뜨거나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빈집이 늘어간다. 김용완 기자 "화전정리법 시행 과정에서 동일한 문제가 다른 지역에서도 일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특별법 제정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에서는 공동묘지 강제 이주 사건을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 이창엽 사무처장은 "사람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공동묘지에 주민들을 강제 이주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전형적인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이라고 지적했다.
또, "인권 침해와 이로 인한 장기간의 고통을 감안할 때 보상을 위한 특별법이 조속히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의 공식 문제 제기는 지난해 12월 김제시의회 오승경 의원의 5분 자유발언.
전북 김제시의회 오승경 의원이 5분 자유발언을 통해 김제시의 정당한 보상을 촉구했다. 김제시의회 의정방송 캡처 오승경 의원은 "대부분 세상을 뜨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마을 '村老'들에게 이제라도 김제군이 정당한 보상을 실시해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화전정리에 관한 법률' 시행 과정에서 인권이 짓밟히고 존엄마저 빼앗긴 주민들.
47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관련 법이 폐지되고 현재는 법으로부터 보호도,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러니 한 상황이다.
마을 주민을 대표해 백방으로 뛰고 있는 김창수(78)씨, 요즘 산림녹화사업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을 지켜보면서 착잡한 심경이다.
산림녹화에 주안점을 두고 실시된 '화전정리법' 시행으로 자신들의 삶이 격랑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전북 김제시 성덕면 개미마을에서 열린 주민 간담회. 더불어민주당 이원택 의원 등이 참석했다. 김용완 기자
국가시책에 순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동묘지'에 버려진 사람들.
지난 13일 오후 이원택 국회의원과의 주민 간담회 자리에서 한 주민이 눈시울을 붉혔다.
"국회의원이 마을을 직접 찾아와 자신들의 한 맺힌 사연을 귀담아 들어준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1976년 당시 공동묘지에 버려진 주민들은 24가구, 상당수가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거나 세상을 떠난 경우도 있어 지금은 절반인 12가구 만 남았다.
47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 이들도 대부분 '村老'로 변했다. 국가가 사과할 수 있는 시간도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