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혐오 논란' 4·3정방폭포 위령공간, 어둠 속에서 빛으로

제주

    '혐오 논란' 4·3정방폭포 위령공간, 어둠 속에서 빛으로

    75년 만에 정방폭포 4·3희생자 위령공간 제막식

    정방폭포 4·3희생자 위령 조형물 앞에서 오열하는 김복순(87) 할머니. 고상현 기자정방폭포 4·3희생자 위령 조형물 앞에서 오열하는 김복순(87) 할머니. 고상현 기자
    "제 가슴에 못이 박혀서 밤새도록 잠을 못 잤어요. 엄마 아빠 이제야 만나네요."
     
    29일 서귀포시 동홍동 서복전시관 내 불로초공원에 마련된 정방폭포 4·3희생자 위령 공간. 75년 만에 만들어진 위령 조형물 앞에서 김복순(87) 할머니는 헌화와 분향을 하며 오열했다. 김 할머니는 4·3 당시 정방폭포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었다. 김 할머니의 나이 12살 때의 일이다.
     
    정방폭포를 형상화한 위령 조형물 앞에서 김 할머니를 비롯해 200여 명의 유가족이 희생자의 안식을 기원했다. 이 조형물은 '정방폭포 학살 터의 아프고 어두웠던 과거의 문을 열어 진실과 화해의 빛을 맞이해 희생자의 넋을 기린다'는 의미를 지닌다. 조형물에는 희생자 이름도 각인됐다.
     
    제주도는 이날 이곳에서 '정방폭포 4·3희생자 위령 공간 제막식'을 열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4·3희생자 유가족과 오순명 정방폭포 4·3희생자 유족회장, 오영훈 제주지사, 김창범 4·3유족회장,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국회의원(서귀포시),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정방폭포 4·3희생자 위령공간 제막식. 고상현 기자정방폭포 4·3희생자 위령공간 제막식. 고상현 기자
    4·3 당시 무고한 255명이 군경의 총칼 앞에 희생당한 서귀포시 최대 학살 터이지만, 여태껏 위령 공간조차 없었다. 이 때문에 이날 희생자 유족은 기뻐하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특히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도 주민 혐오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가슴에 응어리진 기쁨과 한을 쏟아냈다.
     
    그동안 위령 공간 조성을 위해 애쓴 오순명(80) 정방폭포 4·3희생자 유족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제주에서 2번째로 많은 희생자가 나온 곳이지만 여태껏 위령 공간이 없었다.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그 역시 5살의 나이에 정방폭포에서 아버지를 잃고 평생 고아로 살아왔다.
     
    오순명 회장은 "오늘 이 장소에 위령 공간을 만들기까지 4번이나 자리를 옮겼다. 특히 자구리공원 부지의 경우 주민들이 반대 현수막을 내걸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고 강조했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멀리 충남에 사는 한 유가족이 전화 와서 '평생의 소원이 위령비 앞에서 부모님께 절을 드리는 거'라고 했다. 그때 '잘 될 거라'고 얘기했는데, 3년이 지나버렸다. 그 사이 그 유가족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조금만 빨리 됐으면 소원이 풀어졌을 텐데 아쉽다"라고 말했다.
     
    오순명 정방폭포 4·3희생자 유족회장. 고상현 기자오순명 정방폭포 4·3희생자 유족회장. 고상현 기자
    위성곤 국회의원도 "지난 2015년 4월부터 위령 공간 조성사업을 추진했다. 쉽게 되리라 생각했는데 우여곡절을 겪었다. 7번의 추모제가 열리고 대통령이 4·3평화공원을 찾아 사과했는데도 잘 안 된 거다. 오늘 비로소 제막식을 열게 됐다. 늦었지만 감회가 새롭고 매우 기쁘다"라고 설명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정방폭포는 영주 10경 중 하나로 제주에서 손꼽히는 경승지다. 동시에 4·3 산남지역 최대 학살 터다. 4·3 비극에 대해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은 아직도 부족하다. 마음이 아팠다. 제막식을 통해 정방폭포에 서린 슬픔과 아픔이 조금이라도 위로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은 "오늘 막을 연 정방폭포 4·3 위령 공간을 통해 4·3의 비극적인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정방폭포가 4·3의 진실을 증언하는 기억의 장으로, 세대 전승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4·3의 희망과 미래를 얘기할 수 있는 문화의 장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위령공간 조성사업에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 고상현 기자위령공간 조성사업에 반대하는 내용의 현수막. 고상현 기자
    한편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매김한 정방폭포는 4·3 당시 양민 248명이 단기간에 학살당한 서귀포시 최대 학살 터다. 유족에게 폭포의 아름다운 물줄기는 '트라우마의 상징'이다.
     
    당시 인근에 서귀포경찰서와 서북청년단 사무실이 있어 피해가 컸다. 대체로 서귀포시 중문면, 남원면, 안덕면, 대정면 주민들이 정방폭포에서 총칼 또는 죽창에 찔려 억울하게 희생됐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