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석 달 전 대구 10대 소녀에 이어 경기 용인에서도 70대 구모씨가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사망하면서, 환자 이송 요청을 '미수용'한 병원들에 대한 조사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정부와 지자체 조사가 시작된 가운데, 응급의료법 위반 정황이 감지될 경우 경찰 수사가 병행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증 분류·긴급치료' 여부 조사 등 관건
2일 보건복지부와 경기도에 따르면, 보건당국은 차량에 치여 중상을 입고도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진 구씨와 관련해 응급 이송 요청을 수용하지 않은 수도권 일대 병원들을 조사 중이다.
사고가 난 지난달 30일 소방 측에서 환자이송을 요청했다가 '콜(수용)'을 받지 못한 병원이 최소 12곳(경기9, 인천1, 충남1, 강원1)인 만큼, 이들 병원을 상대로 조사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번 조사의 핵심은 응급환자의 '중증도'를 제대로 분류해 환자 수용 여부를 판단했느냐에 대한 검증이다. 정확히 어떤 증상인지, 필요한 치료는 무엇인지 등을 알아야 환자 수용이나 타 의료시설 연계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대구 사건 때 환자 이송을 거부해 행정처분 받은 일부 병원도 정신과적 응급환자 진료가 어렵다는 이유로 의무사항인 중증도 분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응급의료법(제31조의4)은 응급환자의 주요증상, 활력징후, 의식수준, 손상정도 등을 고려해 의료진이 중증도를 분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급 상태에 놓인 환자에 대해 일차적인 '긴급조치'를 했는지도 규정 위반 여부의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 사례 역시 '외상 처치 우선' 요청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한 병원들이 의무 위반으로 적발됐다.
연합뉴스실제 용인 사건에서는 대부분 병원들이 병상과 전담 의사 부족을 이유로 수용불가를 통보했을 뿐, 환자 상태를 확인해 긴급조치를 한 병원은 용인 신갈 강남병원 1곳이 유일했다. 당시 구급대는 복강 내 출혈 증상 등을 각 병원에 알리며 우선적인 외상 처치를 요청한 상태였다.
이 외에도 중증 외상환자를 볼 수 있는 권역응급의료센터와 권역외상센터 의료진들이 서로 소통했는지 등 해당 환자 이송을 위해 적극 노력했는지도 쟁점이 될 수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응급의료법에 의거해 위반 사항을 본격 조사할 부분이 있는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단계"라고 했고, 경기도 관계자는 "지자체 관할인 지역응급센터를 중심으로 조사 중"이라며 "정부 부처 판단에 따라 공동조사단 구성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사 가능성…초동 대응 부실·대책 실효성 논란도
연합뉴스 또한 행정 기관의 조사 결과에 따라 사정당국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대구 사건에 대해서도 복지부 조사와 경찰 수사가 병행된 바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지금은 용인 교통사고 운전자(과실치사)에 대한 수사에 집중하고 있지만 병원들의 응급의료법 위반 사항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관계 기관들의 기초 조사 결과 등에 따라 범죄 요건이 성립되면 정식 수사 여부를 검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3월 대구의 한 10대 소녀는 건물에서 추락 후 '병상과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병원에 이송되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이송 요청을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한 병원 4곳은 과징금 부과와 보조금 지급 중단, 시정명령 등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용인 구씨와 관련해서는 사고 당시 서울지역에도 수술이 가능한 의료진과 병상을 갖춘 일부 병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장 대응 부실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소방당국은 "1~3급 센터 순으로 규정을 준수하고 현장 상황을 적절히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여당인 국민의힘과 정부는 지난달 31일 긴급 당정협의회를 통해 △응급실 과밀 해소 △지역상황실 설치·운영 활성화 △중증환자 수용 의무화 △응급실 병상정보 시스템 개선 등 각종 대책을 발표했다.
다만 대구 사건을 계기로 지난 4월 당정협의회에서 내놓았던 방안들과 비슷한 데다, 병원들에 대한 처분이 내려진 뒤에도 유사 사건이 되풀이돼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