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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살인 폭우' 덮쳤던 반지하 찾아보니…여전히 위험천만



사건/사고

    [르포]'살인 폭우' 덮쳤던 반지하 찾아보니…여전히 위험천만

    주민들 "차수막이라도 있어야 피해 덜하지 않겠나" 하소연
    서울 관내 침수방지시설 필요 2만 8천 가구 중 20%도 설치 못해
    서울시 반지하 주택 매입? 월세 보조 바우처? '효과 미미'

    지난해 인명사고가 났던 동작구 반지하 주택 인근에 차수막이 설치됐다. 김정록 기자지난해 인명사고가 났던 동작구 반지하 주택 인근에 차수막이 설치됐다. 김정록 기자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전통시장 인근의 한 반지하 주택. 이곳에서 지난해 8월 8일 쏟아지는 비에 집이 잠겨 40대 여성이 사망했다.

    지난 7일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당시 사고가 났던 반지하 주택을 다시 찾았다. 이 곳에는 우기를 대비해 반지하 현관과 창문을 막는 차수막이 설치돼 있었다.
     
    지난해 인명사고가 났던 주택 인근에 거주하는 70대 김모씨의 현관 앞에도 차수막이 설치돼 있었다. 김씨는 "지난해 폭우는 끔찍했다"며 "주변 시장은 물론 마트부터 약국, 편의점도 싹다 잠겨서 길거리가 쓰레기장이었다"며 손사레를 쳤다.

    지난해 폭우 피해를 크게 입었던 주민들은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끔찍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구청은 실제 침수 피해를 입었던 주택과 상점을 중심으로 차수막 등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해주고 있지만, 주민들은 "이렇게 설치해서는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인명사고가 났던 동작구 반지하 주택 인근에 차수막이 설치됐다. 김정록 기자지난해 인명사고가 났던 동작구 반지하 주택 인근에 차수막이 설치됐다. 김정록 기자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반지하 주택에서도 지난해 8월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사망했다. 당시 인명사고가 났던 반지하 주택에는 아직까지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고 비어있었다. 인근 주민들은 당시를 회상하며 '각자도생'으로 여름철 우기를 대비하느라 분주했다.

    지난해까지 신림동 반지하에 살다가 지금은 2층 빌라로 이사했다는 이모(54)씨도 지난해의 악몽을 회상했다. 이씨는 "지난해 8월 옥상에 보강시설이 없으니 계단 쪽으로 물이 떨어져 두려웠다"며 고 말했다. 이어 "공공임대주택인데도 보수를 잘 안해준다"며 "고쳐달라고 얘기를 해도 '비가 많이 와도 얼마나 오겠냐'하는 반응"이라고 토로했다.

    20년간 신림동에 살아온 서순자(82)씨도 지난해 악몽을 떠올리며 직접 장마철을 대비하고 있었다. 서씨는 "(정부에서) 누가 오지는 않고 각자가 보강하고 준비하는 분위기"라며 "차수막은 잘 안쓰고 그냥 모래주머니를 쟁여놓고 있다"고 말했다.

    상도동에서 15년간 세탁소를 운영한 60대 A씨의 가게에도 아직 차수막이 설치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비가 온 직후 구청에서 가게 문 앞에 차수막을 걸 수 있는 고리는 설치해줬는데, 정작 차수막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A씨는 "(지난해) 물난리가 났을 때 안에 물이 들어차서 기계도 갖다 버리고 손님들 옷도 다 변상해줬다"며 "차수막이 있어도 다 막을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막으려면) 있는 것이 낫지 않겠나"고 말했다.

    이어 "어쩌겠나, 하늘이 하는 일이라 당하면 당한대로 살아야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서울시, 침수방지시설 필요 주택 중 20%도 설치 못해

    해당 지역의 구청들은 차수막 등 침수방지시설 설치를 서두르고 있지만, 원하는 주민들이 많아 늦어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지금도 계속 (차수막 등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하고 있다"며 "다만 신청이 많아서 좀 지연되고 있는 곳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차수막 등 침수방지시설 보급율은 약 20% 수준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 서울시에서 파악한 물막이판(차수막) 등 침수방지시설이 필요한 가구가 약 2만 8천 가구인데, 지난달 말까지 약 5500가구에 설치를 완료했다"며 "남아있는 2만 3천 가구도 장마가 시작되기 전 이달 말까지 설치를 서두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관악구에서 침수방지시설 무료 신청을 받고있다. 김정록 기자관악구에서 침수방지시설 무료 신청을 받고있다. 김정록 기자
    이처럼 각 지자체가 차수막·개폐형 방범창·역류방지시설 등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주민들은 '폭우를 막기에는 부족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신림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성기춘(69)씨는 "어차피 물은 다 넘어와서 (차수막은) 무용지물이다. 지난해에 차수막 있었는데도 물이 다 들어왔다"며 "관악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이리로 다 온다.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살인 폭우'에도 다시 반지하 찾는 사람들…지상 이주 대책 사실상 실패

    신림동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윤경화(45)씨는 지난해 폭우로 인명사고 이후 반지하 수요가 반짝 줄었지만, 현재는 다시 회복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노인이나 중국동포들이 저렴한 집을 찾아 이곳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윤씨는 "지난해 8월 물난리가 난 후에는 (반지하 주택)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며 "지금은 저렴한 집을 찾아서 다시 오는 분위기다. 오늘(6일)만 해도 보증금 300만 원에 관리비 포함 월세 35만 원짜리 집을 찾는 분이 왔다 갔다"고 말했다.

    지난해 인명사고가 났던 동작구 반지하 주택. 김정록 기자지난해 인명사고가 났던 동작구 반지하 주택. 김정록 기자
    지난해 폭우로 인명 피해까지 발생하자 정부는 여러 대책을 내놨다. 그 중 반지하 거주자를 지상으로 이주시키겠다는 대책이 가장 눈길을 끌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성과는 초라한 수준이다.

    당시 서울시는 SH(서울주택도시공사)를 통해 서울의 반지하 주택을 매입해 반지하 거주자를 지상층으로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기준 SH는 올해 목표치(3450호) 가운데 98호(2.8%)만 매입을 완료했다. 다세대 주택에서는 지상층 집주인들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다가구 주택에서 집주인은 일반적으로 시세보다 낮은 공시지가로 넘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지상층 전세 계약을 할 때 연 2% 저리로 보증금 최대 1억 3천만 원을 지원하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전세 지원제도도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다. 반지하에 살던 빈곤 거주민이 보증금 지원을 받더라도 지상층 전세금이 평균 2억 원에 달해 부족한 수천만 원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지하 거주자가 지상층으로 옮기면 2년 동안 월세 20만 원을 지급하는 바우처도 발급했다. 하지만 정작 이를 이용하는 주민은 서울 관내 침수 우려 가구(2만 8천 가구) 가운데 불과 970여가구(3.4%)뿐이다.

    윤씨는 "집주인 입장에서 월세 수익을 손해보면서까지 시세보다 아래인 공시지가로 정부에 팔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우처에 대해서도 "2년 동안 20만 원 월세 보조는 좋은데,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반지하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빈곤층인데 단기간 보조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인명사고가 났던 관악구 반지하 주택. 김정록 기자지난해 인명사고가 났던 관악구 반지하 주택. 김정록 기자
    특히 올여름 비가 많이 올 것으로 예측되면서 우천 대비가 시급해 보인다. 기상청은 올여름 강수량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많을 가능성이 80%에 달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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