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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오염수 방류는 '인재(人災)'" 적막에 잠긴 후쿠시마

사건/사고

    [르포]"오염수 방류는 '인재(人災)'" 적막에 잠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개시 다음 날…고요한 후쿠시마 항구
    날 선 어민들…"후쿠시마 시민들 모두 정부 신뢰 않아"
    어시장 상인. 시민들도 "앞으로가 걱정"
    후쿠시마현 이와키 시의원도 "어민들에겐 소문피해 아닌 실해(實害)"

    25일 일본 후쿠시마현 오나하마 항구. 민소운 기자25일 일본 후쿠시마현 오나하마 항구. 민소운 기자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 다음 날, 후쿠시마현 오나하마(小名浜) 항구는 고요했다.
     
    25일 오후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찾은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약 50km 가량 떨어진 이곳에는 오징어잡이 배, 원양어선, 저인망 어선, 선망 어선 등 수십여 척의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조업을 마치고 어선을 정리하는 어민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취재진이 '오염수 방류'에 대한 의견을 물으러 다가가자 이들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일하느라 여유가 없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물으라"며 한사코 손사래를 치느라 바빴다. 취재진이 든 카메라를 보고 화를 내며 반발하는 이도 있었다.
     
    무력감과 함께 복잡한 감정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오염수 방류에 강하게 반발하는 어민도 있었다.
     
    후쿠시마현 신치마치의 어민 오노 하루오씨는 "약속을 어기고 방류를 해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며 "후쿠시마 사람 모두가 다, 100%,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며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오노씨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에 나선 어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중국이 후쿠시마 뿐 아니라 일본 수산물을 전면 금지한데 대해서도 일본 정부가 다른 나라들을 제대로 설득하는 작업 없이 급하게 방류하기로 결정해 결국 일본 어민들도 큰 피해를 입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처음부터 반발할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며 "중국을 납득시키고 나서 방류했으면 (수출을) 전면금지 당하지 않았을 것"며 비판했다.
     
    25일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어시장. 민소운 기자25일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어시장. 민소운 기자이날 이와키시의 가장 큰 어시장에서 만난 시민들도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굴과 석화, 고등어와 어묵류 등 각종 수산물이 수십여 개의 상점 매대를 한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정작 이를 찾는 시민들은 많지 않아 시장은 한산했다.
     
    십수 년째 이곳 어시장을 찾는다는 아키야마(82)씨는 "지금까지는 오염수 방출이 큰 문제 없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걱정"이라며 "(또 다른 사고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오염수를 흘려보내니 풍평피해(소문에 따른 피해)는 당연하다"며 "정부가 시민들을 안심하도록 만들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국가가 정한 일이니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체념 섞인 반응도 있었다.
     
    항구에 낚시를 하러 왔다는 한 시민은 "일단 기준치는 기존의 기준치 이하로 흘리고 있기 때문에 변하는 것은 없을 것 같다"며 "원전 사고가 있기 전에도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보냈던 것 같은데, 그때 기준도 제로(0)은 아니었다고 알고 있다"고 했다.
     
    어시장 상인들은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 다음날이라 아직 피해를 체감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70대의 한 상인은 "어제 막 방류했으니 아직은 잘 모르겠다"면서도 "어업관계자나 어시장 관계자들은 신경쓰이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26년째 일했다는 또 다른 상인은 "불안하지만 정부가 정했으니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 "매출에 영향이 있다면 배상해준다고 했으니 믿고 있다"고 했다.
     
    25일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어시장. 민소운 기자25일 일본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어시장. 민소운 기자오염수 방류 반대 움직임에 앞장 서온 사토 카즈요시 이와키 시의원도 취재진을 만나 참담한 어민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사토 시의원은 어민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정부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15년 일본 정부는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전어련)와 '관계자의 이해 없이는 오염수를 방류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는데, 그 약속이 깨졌다는 것이다.
     
    또 "어민들이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것은 배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며 "바다는 생명의 원천이고, 우리가 생명을 건져서 소비자에게 건네는 행위들이 어민으로서의 보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팔리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 물고기를 잡으면 어민들의 삶에 어떤 보람이 있겠나"고 덧붙였다.
     
    아울러 "소비자들은 건강을 챙기기 위해 수산물을 사지 않을 것이고, 어민들에게는 풍평피해가 아닌 실해(실제 피해)가 닥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2011년 후쿠시마 사고는 어쩔 수 없는 사고였지만, 그런 사고를 막지 못해 분했는데 오염수 방류로 또다시 화가 난다"며 "이번 방류는 일본의 고의적 행위, 즉 인재"라고 강조했다.
     
    후쿠시마현 어민들의 피해는 이미 가시화된 상태다. 가뜩이나 이와키시 어획량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전의 20% 수준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번 오염수 방류로 피해가 증폭됐다.

    일본의 한 언론에 따르면, 후쿠시마 인근 미야기현산 가리비 값은 지난 6월 1kg당 530엔에서 이달 400엔으로 떨어졌다. 출하량도 1.3톤에서 절반 가량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어민들은 다음 달 8일 후쿠시마 지방법원에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 인가 취소와 방류 중단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한편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우려 앞장서고 나섰다. 도쿄전력은 오염수 방류 후 매일 삼중수소 농도의 변화를 측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도 도쿄전력이 측정한 삼중수소 농도가 발표됐다. 한 일본 언론에 따르면 방류 중인 오염수 속 트리튬(삼중수소) 농도는 이날 오후 6시 기준 1리터당 206 베크렐(㏃)로 나타났다.
     
    이는 국가 기준치인 1리터당 1500 베크렐(㏃)보다 낮은 수치이긴 하지만 방류 전 측정치가 1리터당 63 베크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현저히 수치가 급등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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