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행정안전부. 연합뉴스 경찰청과 행정안전부가 법무부의 수사준칙 개정안에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기로 했다. 경찰의 수사 종결권을 상당히 축소하는 내용이 대거 담겼는데도 굴욕적인 침묵을 선택한 모양새다.
29일 CBS노컷뉴스의 취재를 종합하면,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은 법무부가 지난 달 31일 발표한 '검사의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수사준칙) 개정안에 별도의 의견을 개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법무부는 지난 1일부터 다음 달 11일까지 입법 예고 기간을 통해 관계 기관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 관련 핵심 유관 기관인 행안부와 경찰청에서 당연히 의견을 개진하리라 예상됐지만, 결국 법무부의 개정안을 온전히 수용하기로 '백기투항'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두 기관들이 쟁점 조항들에 대해 "법률적으로 근거가 없다"면서 오목조목 반박했던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지난달 발표된 수사준칙 개정안은 이들이 의견을 내기 전인 지난해 12월 만들어진 수사준칙 초안과 사실상 차이가 거의 없다. 가장 쟁점이었던 경찰의 수사종결권 축소 부분에서 일부 문구가 수정됐지만, 내용과 취지에는 큰 변화가 없다.
초안에는 검찰이 경찰의 사건 송치를 요구할 수 있는 조건으로 '재수사 요청에 대한 수사가 전부 또는 일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라고 돼 있었는데, 최종안에서 '범죄 혐의의 유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재수사 요청한 사항에 관하여 그 이행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다만, 불송치 결정의 유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음이 명백한 경우는 제외한다)'로 수정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박종민 기자 문구가 일부 수정됐으나, 여전히 경찰의 수사종결권을 대폭 축소하는 조항인 셈이다. 지난해 12월 경찰청은 검토의견을 통해 "재수사 후 송치 요구는 법률상 근거가 없어 원칙적으로 삭제가 바람직하며, 예외적으로 규정하는 경우에도 그 요건을 엄격히 규정해야 하므로 재수사 요청의 '일부' 불이행을 요건으로 규정해선 안 된다"고 반발했다.
당시 행안부도 경찰 편에 서서 "중대한 사유에 한하여 활용하기 위해 규정된 송치요구가 검사의 판단에 따라 늘어날 소지가 있어 '예외적 규정'의 한계를 벗어나고 재수사 요청 사안에 대한 재조사 여부 및 방식은 사법경찰관 재량이라고 판시한 판례(대전지법 2021노3842)와도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대공(對共)과 노동, 집단행동 등에 대한 사건은 검찰의 요청이 있을 때, 그리고 공직선거법 관련 사건은 공소시효 3개월 전까지 무조건 검찰에 수사 사항을 넘야 하는 '중요사건 협력절차' 역시 초안 그대로 확정됐다.
경찰은 과거 검토의견에서 "'노동'은 주로 특별사법경찰이 1차적 수사를 맡는 분야로 수사준칙의 대상인 일반 사법경찰관의 수사와 직접적 관련성이 부족해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고, "선거범죄 특칙은 기존 전문가·정책위원회의에서 일체 논의되지 않은 사안으로, 회의 종료 후 미논의 사항을 개정안에 추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행안부도 "사실상 일방에만 의무를 부여하는 것으로, '협력'이 아니라 구법상 '수사개시 통보' 내지 '송치 전 수사지휘'와 다름없어 상위법인 형사소송법의 개정 취지에 위배될 수 있다"고 경찰 손을 들어줬다.
행안부 관계자는 "법무부가 입법예고를 하기 전에 이미 관계 기관 간 견 조율을 다 마쳤다"며 "추가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행안부와 경찰청 모두 별도의 의견을 개진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법무부가 지난달 발표한 수사준칙 개정안은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수사준칙 개정안은 입법예고 기간이 끝난 후 법제처 심사와 차관회의, 국무회의 등을 거쳐 공포·시행된다.